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Mar 31. 2023

결핍이 있어서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결핍이 결핍되어 있다고 여긴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은 항상 가난했다. 서너 살 무렵 같은데 자다가 보면 머리가 앉은뱅이책상 속으로 들어가서 꽝 부딪히기 일쑤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리고 어린 마음에도 이 방이 참 작다고 여길 정도였으니. 조금씩 넓은 방으로 넓은 집으로 이사 가서 나중에는 나와 동생이 방 한 칸씩은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되었지만 봉천동 산 꼭대기 달동네였다.


지금도 나는 가난이란 주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묻는다면 아니오.

만약 나 혼자였다면 교사니까 그럭저럭 어느 정도로는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경제적인 곤궁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이를 넷 키우는데 신랑의 수입이 아주 불안정하다는 것은 결국은 홀로서기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들 영어 교재나 받아 보려는 마음이었다. 영어 교재를 받아서 후기를 블로그에 꼭 써야 한다기에 일기처럼 사용하던 블로그에 영어 교육 일지와 자료를 올리기 시작했고 조금씩 이웃들이 늘어났고 나중에는 그냥 일상처럼 영어 교육 이야기, 학습 자료, 피아노 이야기, 그림 이야기, 책 이야기 등등을 썼다. 짬짬이 맛집이나 여행도 쓰고 같이 영어를 공부하는 프로젝트도 블로그 이웃님들과 진행하면서 재미있게 지냈는데, 아이들이 커가는데 신랑에게서 안정된 수입의 지지를 바라기는 어려웠다. 내게 더 달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그래도 어떻게 버텼는데 작년에 이율이 두 배 이상 오르면서 2백 가까이 되는 이자를 부담하기가 너무나 버거웠다. 아무리 해도 답은 안 보이고 눈을 딱 감고..... 자존심을 바닥에 버리고.... 블로그에 광고글을 올리겠다고 글을 올리던 날....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나를 믿고 와 주신 4천 명 가까운 이웃님들께 죄송하다고 했고 광고를 올리면서 한없이 비참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이 집에 살 수 있었고 아이들 학원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런 나를 보면서 선배님 한 분이 괜찮다고 토닥여주셨다. 진짜..... 이 광고글에서 벗어나서 본질로 갈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항상 어미를 높이는 문체를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적고 싶었다.


주위에 완벽한 엄친딸인 내 베프를 보면서 그냥 더 노력했다. 친구처럼 눈이 예쁘고 크진 않아도 밝게 웃을 수 있는 미소를 가지려고 했고 친구처럼 선천적으로 날씬하지 않아도 운동으로 가꾸려고 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미술과 독서와 외국어를 향유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려고 했다. 그냥 그렇게 노력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런 완벽하지 않음이 지금도 내게는 동력이 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경제적인 결핍마저도 절실하게 느끼진 않아서 몰랐나 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부'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럼 이제 여기서 어떻게 한 발짝 나가야 할지는 올해 초부터 계속 생각하는 과제이다.


경제적인 결핍 외에 글세. 나는 사실 풍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네 명의 아이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보물이고, 교사라는 직업을 좋아하고 즐겁게 열과 성을 다하고 있으며 예술을 어설프겠지만 향유할 수 있기도 하고 주변에 소중한 이들도 있으니..... 이 결핍은 어쩌면 또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한 요소인지도.


결핍이 있어서 나는 또 나아간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매거진의 이전글 가스불 잘 잠갔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