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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13. 2024

선생님은 잠 못 이루고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정말 나는 집에 가면 왜 이렇게 아이들 생각이 자꾸 나는지 모르겠다. 


그제 국어 마무리를 하는데 시간은 6교시. 1분 후면 종이 친다. 빨리 마무리를 하고 자리 정리를 해서 집에 갈 수 있도록 챙겨야 하는데 마지막 발표로 ㅇㅅ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시켰는데... 시켰는데..... 흥이 넘치는 우리 ㅇㅅ이가 말을 장난스럽게 느리게 천천히 끌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음. 거기까지."라고 한 다음 ㅈㅅ이를 시켰다. 그러자 "아니이이이, 선생니임...왜 제 발표를 멈추세요오오오."라고 말을 또 길게 늘이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너가아아아, 이렇게에에에 말으으을 기일게에에에 하잖아아아아."라고 대답했더니 자기도 깔깔깔 웃고, 우리 반 모두가 빵 터지면서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집에 왔는데 내가 또 ㅇㅅ이에게 상처를 주었나 싶어 너무 걱정이 되면서 자기 전에도 생각이 나더니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학교에 가면 ㅇㅅ이를 불러서 꼭 다독다독해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아침에 딱 학교를 왔는 데에! 아침 독서 그 5분 동안 ㅇㅅ이가 정말 계속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ㅇㅅ아! 우리 책을 읽어야지, 자리에 앉아 주세요."라고 했더니 "아니이, 선생니임. 제가 자리에 앉으면 책 안 펴고 있다고 뭐라고 하시고, 조용히 우유를 마시려고 했을 뿐인데 저는 어떻게 하냐고요오!" ㅇㅅ이는 말을 애교스럽게 귀엽게 웃기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우유만 마시면 괜찮았을 텐데, ㅅㅁ이한테 가서 제티를 받아오고 그러면서 계속 교실을 돌아다니니까 선생님도 몇 번 보다가 하는 이야기야."라고 말하면서 "참. 선생님이 어제 ㅇㅅ이 발표를 중간에 멈추게 해서 미안한 마음 전하려고 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네?" "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 생각 하나도 안 나요."라면서 씨익 웃는데 나 혼자 속을 끓였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딱히 큰 흔적 없이 지나가서 다행이구나 싶었다.


그러고 나서 5교시에 또 다른 일이 생겼다. 오늘따라 배가 아프고 속이 안 좋은 아이들이 많아서 우유가 좀 많이 남았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남을 수가 없는지라 이상하다 싶어 확인을 하려는데 그 많던 우유가 싹 없어진 것이다. 그냥 없어진 것이 아니라 빈 통만 가득했다. 어찌 된 일인가 싶어 알아보니 ㅅㅁ이가 우유를 무려 9개를 다 먹었다고 한다.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분명히 우유를 못 마신 아이도 있을 텐데) 언제 마셨나 확인해 보니 영어 교과 시간에 다 마셔버렸단다. 나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는 했으나 마침 나는 눈앞에 없고 우유가 잔뜩 있는 것 같으니 그냥 다 먹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큰 소리로 계속 절제 못하고 떠들다가 지적받고 아이들에게 원성을 사는 일이 허다한 것은 기본이고, 유독 식탐을 감추지 못하거나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상황을 살피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겨 버려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되면 개인 면담을 해야 한다. 간단한 주의로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굳이 개인 면담을 진지하게 한 것은 이미 다른 일들로 여러 번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이 간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둘이서 이야기를 했다. 본인도 알고 있으며 노력은 하는데 순간적으로 제어가 안 될 때가 있고 지나고 나서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되는 때가 많다고. 충동성이 ADHD 특성 중 하나인데 나는 정말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야단치는 것은 절대 아니며 너를 위하는 마음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었다. 너의 좋은 장점들이 이런 부분에 가려져서 너무 속상하다고. 작년에도 이렇게 비슷했나 물어보니 아니라고 한다. 6학년 되어서 이러는데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럼 사춘기인가. 우선 부모님께 말씀은 드리지 않고 본인이 노력하는 것을 조금 더 지켜보자고 이야기를 했다. 노력하는데 안 된다면 이건 교사의 노력으로도 본인의 의지로도 감당이 안 되는 부분이니 사실 부모님이 아셔야 하고 부모님의 지도로도 한계가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물론 떠들고 산만한 아이들이 모두 ADHD는 아니다. 반 분위기가 한 번 형성이 되면 그럴 수도 있고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과 함께 분위기에 휩쓸려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잘 보아야 한다.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를 살펴야 하고. 부디 이와 같은 일로 아이 어머님과 상담하는 일이 없이 아이 스스로 잘 조절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어 일단 하루를 지켜보기로 했는데 아.... 여전히 행동이 커서 아이들의 원성이 순간순간 들려온다. 본인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을 텐데 나는 정말 고민이다. 이전 학년 반을 찾아보니 작년 담임 선생님은 전근을 가셨고 재작년 담임 선생님은 남아계신다. 내일은 여쭤 보아야겠다. 올해만 이런 것이면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가 스스로 혼란스러운 시기라서 이렇게 표출이 수도 있지만 이전에도 그랬다면 원래의 성향이 그렇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상담에 개입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 막내가 상담치료를 받고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과정을 보니 아이의 자연스러운 사회화 과정과 성장 과정을 위해서는 단순한 부모와 교사와 본인의 노력을 넘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부분인데 주변 사람들도 너무 힘들고 무엇보다도 본인이 가장 힘들다. 그런 고통을 무릅쓰면서 이렇게까지 소득 없이 가야 하는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다른 아이 하나는 관찰기록지를 써서 위클래스에서 상담 수업을 몇 번 받도록 권고를 했었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와 함께 여름 방학 때 전문 기관의 검사를 다시 받아보기로 했다. 어릴 때 처방받았던 ADHD 약을 어머니가 임의로 중단했던 것이다. 반 아이들도 이 친구와 대화를 해 보면 뭔가 서로 화나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러니 본인의 생각과 아이들의 생각 기준과 행동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서로서로 그 합의점을 배워가는 것이 한 반 학급살이의 목적인 것이다. 


오늘은 ㅊㅇ이가 "아이들이 ㅈㅅ이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라고 대 놓고 말해 버렸기에 나는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서둘러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ㅈㅅ이의 어떤 행동이 싫을 수는 있다. 솔직히 누구나 그렇지 않냐고. 내가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지만 너희도 선생님의 모든 부분을 좋아하지 않고 어떤 것은 별로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어떤 행동이 싫은 것과 사람에 대한 호불호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고맙게도 바로 수긍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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