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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06. 2024

요새 아이들이 노는 방법

물론 다는 아니고 일부.....

일기를 쓰게 한다. 일주일에 두 편씩 아이들은 일기를 써 온다. 13살이니까 13줄은 기본으로 써 오라고 했고 가능하면 채워서 써 온다. 일기 면제권도 있다. 그동안 모은 학급화폐를 이용해서 일기 면제권이나 숙제 면제권 같은 것을 사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허용되는 범위'라는 단서가 붙은 것은 어느 경우 꼭 해야 하는 필수 숙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기 면제권의 경우는 연속해서 2주는 쓸 수 없다. 그래도 2주에 한 번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서로 연결되는 끈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체로는 자주 쓰지 않지만 정말 글 쓰기 너무 싫었던 작년의 ㅈㅇ는 2주에 한 번은 꼭 일기면제권을 썼다. 평소 나에게 말도 잘 안 걸고 표정 변화도 크지 않은 아이가 점심시간이면 조용히 다가와 일기면제권을 사가고는 선생님은 알아볼 수 있는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도 귀엽다.


아이들의 일기를 보면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고민과 어려움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선생님에게 직접 이야기하기 어려운 고민들이 글 속에 녹아내리면서 스스로의 상황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풀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일기를 읽고 나서 글에 하나하나 댓글을 달아주는 것도 사실은 큰 일이다. 어떤 말을 써야 할지 생각을 해야 하고 악필인데 나름 글씨를 신경 써서 쓰다 보면 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굳이 아이들에게 글을 써 오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하면서 아이들과 유대관계를 쌓아가고 서로에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 내면의 성장이 글에 담기기도 하고. 우리 셋째 담임 선생님들은 모두 너무 좋으신 분들이지만 2년째 일기 과제를 내주시지 않은 것은 그래서 조금 아쉽다. 


일기를 보다 보니 주말에는 아이들끼리 어떻게 노는 지도 알 수 있었다. 보통 우리 학교 아이들의 코스는 마라탕 - 인생네컷 - 탕후루 - 노래방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동네에는 도서관이 하나 있는데 거기가 은근 사랑방이다.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만나서 같이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러다 음료수도 하나 사 먹으면서 놀고 다시 공부를 한다. 우리 반 커플도 그렇게 데이트를 한다. 둘이서 시험공부를 하고 (주로 똑순이 ㅈㅇ이가 ㅇㅅ이에게 족집게 선생처럼 과외를 해 준다고) 그리고 같이 밥을 먹고 다시 공부를 좀 더 하다가 헤어진다니 이 얼마나 건전한 데이트인가 싶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심지어 같이 공부를 할수록 더 잘 된다니 신기하다. 나라면 남자 친구가 곁에 있으면 공부가 잘 안 될 것 같은데... 음....


어제 둘째는 친구네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러 갔다. 그런데 아이가 공부할 것들을 주섬주섬 챙기는 것이다. 아니 왜??? 파자마 파티를 하려면 놀러 가는 거니까 보드게임이나 간식을 가져가야 하는 것 아닌가? 물어보니 가서 공부를 어느 정도 해 놔야 나중에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숙제도 그렇고 인강도 그렇고. 이 또한 놀랍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참 착한 것 같다. 학교에서도 보면 짬짬이 단어를 외우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고 남는 시간에 단어를 외우는 아이들도 꽤 있다. 가끔은 교실에 남아서 숙제를 부지런히 하고 가기도 한다. 우리 딸은 놓고 간 숙제를 가지러 한 번 더 왔다가 갔다. 놀다가 공부하다가 놀다가 공부하는 것이 파자마 파티라니. 다녀와서 낮잠을 자고 나서는 많이 잤다고 엉엉 울었다. 나는 저렇게까지 열심히 안 했던 것 같은데... 물론 큰 딸과는 방법이 환연히 차이가 나니 모든 아이들이 저렇게 공부하며 노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마음껏 놀 수 없이 이렇게 공부를 손에 놓지 못해야 하는 것 같아 좀 안쓰럽고 짠하다. 기특한 건지 안쓰러운 건지...아마도 둘 다이겠지.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그래도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책임감을 다하려는 자세 한 가지는 정말 멋지고, 이렇게 노력하는 아이들은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이라도 성실하게 해 낼 것이라는 믿음이 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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