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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15. 2024

삶에 진심인 사람들을 만나면

물론 그 누가 진심이 아니랴마는. 때로는 정말로 온몸을 다해 진심으로 삶을 헤쳐나가시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스쳐가는 사람은 많고 알고 지내는 사람도 많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로 그 살아온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알게 되는 것은 얼마나 될까.


작년 초 글로성장연구소와 함께하게 된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다. 왜 우리는 이토록 글을 쓰려고 하는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글을 쓰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닌데, 각자의 본업은 따로 두고 있으면서 가끔은 본업에 대한 것보다 더한 열정으로 때로는 필사적이기까지 한 심정으로 글을 쓴다. 혼자서 글을 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글을 또 열심히 찾아서 읽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연을 맺어간다. 나는 작가이지만 다른 작가의 애독자이기도 하다. 


하나하나 출간작들이 나온다. 서로를 작가라고 칭하며 가까워졌지만, 그리고 서로의 글들을 이미 오랜 시간 읽어왔기에 어느 정도는 낯설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온 글은 새로운 시선을 던지고 색다른 시각을 갖게 한다.


오늘은 글로성장연구소의 오프모임이 있는 날. 나는 대전에 내려가는 길 브런치 작가명 잔잔한 손수레, 백지하 작가님의 '누가 선생님이 편하대'를 읽었다. 또 다른 작가님의 책과 묶어서 주문을 하려니 성유나 작가님은 예약판매 중인지라 기다려야 해서 먼저 받았다. 백지하 작가님은 영어원서읽기 모임으로 조금 더 각별한 애정으로 만난 인연이다. 그전에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나 싶었는데, 저서를 읽으니 그 바쁜 와중에서 어떻게 이렇게 시간을 빼내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리고 대전으로 내려가는 기차 속 1시간 40분 동안 나는 잔잔한 필체 속에서 전개되는 격렬한 삶의 의지와 노력과 방향을 보았고 그 감동을 채 추스르지 못한 채 그녀를 만났다. 책을 읽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래서 막상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책 속의 수많은 명문 중에서 몹시 강렬하게 남는 것이 하나 있다. '겸손하지 말자. 건방 떨지 말자.' 우리는 늘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워왔다. 그리고 마음이야 어찌되었 건 실제로 겸손한 '척'하지 않으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게 되는 것은 아마 자동으로 학습된 결과일 것이다. 어느 한 직업을 십 년 이상 갖고 일했으면 사실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부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일에 있어서, 지식에 있어서, 삶에 있어서 완성이란 것은 없음을 잘 아니까.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어쩌면 이토록 많고 그러면서도 정말 엄친아 엄친딸처럼 다 가졌는데 인성까지 겸비한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저절로 주눅이 든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렇게 오늘도 내 자존감을 높이려고 애를 쓰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굳이 '체'하는 겸양을 떨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교만할 필요 또한 없는 것이다. 과하게 겸손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되지도 않는 건방진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부러웠다. 백지하 작가님에게 배워가는 아이들이. 그리고 그렇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그 아이들의 학부모님들이. 나는 진심으로 우리 딸의 수학을 백지하 작가님께 맡기고 싶었다. 전에 반 농담처럼 물어본 '줌으로 수업은 안 하시나요?'는 사실 진심이었다. 오늘도 둘째는 공부가 힘들다며 엉엉 울었다. 영어는 선생님이 기분에 따라서 너무 달라진다며 선생님에게 맞추기 어렵다고 속상해했고 수학은 외울 것이 너무 많아 힘들다며 울었다. 모든 학문은 어려워도 즐거움이 있는 것들인데 아이에게는 그저 하나의 짐 덩어리가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난생처음 다닌 이 학원에서 배우는 과정이 아이와 맞지 않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담임 선생님은 잘해야 일 년, 어쩌다 이어진다면 2년까지도 가능하긴 하다. 아이를 좀 알게 될만하면 헤어져야 한다. 한 해 더 잘 가고 싶은 마음이 나라고 왜 없겠는가. 연말이 되면 교장실에 찾아간 적이 몇 번 있다. 내년에 연임으로 한 반을 그대로 데리고 올라가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맞지 않는다면서 거절을 당했다. 20년 전에도 그랬지만 요새도 달라지진 않았다. 아이들도 나도 서로서로를 알게 되고 함께 적응하면서 익숙해질 만하면 이별이다. 그러니 사실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몇 년을 함께 하는 사교육 선생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선생님의 고군분투 운영일지라는 말은 그냥 가볍게 나오는 날이 아님을 느낀다. 사교육 선생님의 이야기지만 공교육 선생님도 같이 읽으면 좋겠다. 학부모님들도 같이 읽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를 키워내는 방향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에 대한 또 다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제는 김필영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그녀의 삶이 주는 그 쓸쓸한 담담함이 주는 감동에 마음이 아릿아릿 저려왔다. 그전에는 김규미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같은 학교 그러나 다른 공간, 내가 제일 좋아했던 도서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눈을 번쩍 뜨기도 했다. 이제 곧 나올 성유나 작가님의 또 다른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계속 이어질 다른 작가님들의 책들까지. 삶에 대해 이토록 진심으로 노력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로 일생일대의 행운이다. 나는 운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정말 예기치 않은 감사를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데 이것을 운이라는 말 말고 대체할 다른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운은 우연성의 요소가 너무 강하니 그 대신 '복'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만난 이들은 아무리 가까워져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그 끈끈한 우정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인연이 그랬다. 하지만 생각한다. 이렇게 글로 만난 인연들. 삶과 글에 진심인 이 인연들은 그냥 그렇게 스러지고 흩어져 버리진 않을 것이라고. 이미 내 마음 안에 이토록 강렬한 울림으로 살아 숨 쉬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울림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 한 켠에 슬쩍 밀어 넣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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