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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예술작품처럼 대하라

by 여울

그저 막연하게 깔끔하게 정돈된 집이면 좋다고 생각했다. 첫째가 생기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근사한 주택이나 최신식 아파트는 아니지만 깔끔하게 정리가 된 집은 햇빛이 잘 들었고 매주 스팀청소기로 돌리는 바닥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언제든지 손님을 초대하기에 부담이 없고 그래서 친구들과 지인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었다.


아이가 하나일 때도, 둘일 때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이들이 있는 집의 특성상 유아용품과 각종 자잘한 것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딸 둘이니까. 셋째와 넷째가 2년 간격으로 계속해서 태어나면서 어느 사이엔가 물건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책만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아이들 책까지 욕심이 간 것이 화근이었다. 첫째와 막내는 여섯 살의 터울이 있다. 어른책과 아기 책과 어린이 책과 청소년 책들이 모두 가득 채운 곳은 도서관이 아니라 우리 집이었다.


"어머나, 책이 참 많네요!"

"집이 꼭 도서관 같아요!"

처음에는 칭찬으로 여겼는데 지금은 말씀하시는 분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끄럽다. 몇 천권이나 되는 책들이 범람하는 홍수 속에서 이제는 나도 정리하기를 반은 포기했고 그에 따라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꽂히고 쌓인 책들의 풍경은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2년 여 전. 내팽개쳐 둔 몸의 건강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부지런히 빼내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있는 미련으로 미처 솎아내지 못한 책들이 이제는 보인다. 사실 50평대의 넓은 집에 서재라고 둘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있다면 이 많은 책들은 정말로 작은 도서관처럼 그 기능을 충실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림책과 영어 동화책을 동네의 작은 도서관 수준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직업의 특성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막상 꺼냈다가도 '이 책 내용 참 좋은데...' 하면서 다시 집어넣기를 몇 번이 아닌 수십 번이었다. 문제는 책들이 공간을 잠식하면서 여섯 식구가 살기에도 빠듯한 공간이 점점 비좁아졌다는 데에 있다. 있어야 할 곳은 책들에게 빼앗긴 물건들은 빈 틈이 있으면 그곳에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아 대강 아무렇게나 쌓여갔다. 이건 아니다 싶어 정리 소모임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도 하고 이리저리 해 보았지만 잠깐 반짝이는 시즌상품처럼 잠깐 정리가 되었다가 말았다.


마음이 조금씩 복잡해져 갔다. 내가 집을 아껴주고 있는가? 비록 빌려서 사용하는 집이지만 지금 거주하는 이 공간을 제대로 보살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다 한들 달라질까?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머무르는 공간을 소중하게 다룰 때 나에게 다른 곳도 또 소중하게 다룰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단순하게 정리만 하는 것으로는 집을 귀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았다.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국내 정리 전문가의 책은 외국의 정리와는 다른 우리나라의 정리 문화를 파악하고 한국에 맞게 바꾸신 분이었다. 그리고 책에서 저자는 부자들은 집을 예술작품처럼 대한다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처음 보았을 때 비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작품 전시회를 가면 좁은 공간에 많은 그림을 다닥다닥 붙여 놓는 경우는 없다. 때로는 작품이 하나만 걸려 있기도 하다. 그 거대한 공간 속에서 핵심이 되는 가치 하나만 제시하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면서 그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집을 예술작품처럼. 그리고 예술작품을 놓는 공간처럼. 작품과 공간의 유기적 연결은 결국 그 공간마저 예술로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그 책 속에는 다른 좋은 내용이 정말로 가득했지만 이 부분만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가는 오늘. 나는 현관 앞 4단 선반을 정리해 내었다. 위아래로 사용하지 않는 마스크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시절부터이다. 이제는 그렇게까지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는데 과하게 많이 놓았다. 세 번째 칸에는 에코백이 즐비했다. 핫팩과 겨울장갑, 겨울용 슬리퍼 같은 방한 용품이 제일 마지막 칸을 채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혔지만 어떻게 치워야 좋을지 엄두가 나지 않아 몇 년째 그냥 두었었다. 마스크는 한 칸에 놓고 쓰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천마스크용 필터 같은 것들은 뭔가를 버리려 들면 울컥 들곤 하는 아까운 마음에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눈 질끈 감고 버렸다. 아예 75L 대용량으로 사서 언젠가 아이들이랑 다시 한번 날려야지 싶은 마음에 간직하던 가오린 연과 방패연도 그 안에 담았다.


그렇게 치우고 나자 빈 선반이 두 곳이나 나와서 수경화분과 디퓨저를 하나씩 놓을 수 있었다. 수경화분들도 자리 자리를 잡지 못해 몇 개가 그늘진 곳에 처박혀 있다가 비로소 여유롭게 자리를 잡았다. 현관의 공간 하나를 바꾸었다고 집이 바로 달라진다고 믿지도 않거니와 오늘 했다고 날마다 매일매일 바꿔갈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단 했다. 바뀐 모습에 자꾸 시선이 간다. 시선이 갈 수 있는 공간을 조금씩 더 늘려가자고 또 한 번 생각해 본다. 생각을 하는 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지만 반복해서 자주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결국 실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너무너무 안 하고 싶을 때에도 생각은 한다. '언젠간 해야지.'라고. 언젠가는 우리 집도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그런 공간이 되고 그래서 예술의 감동이 느껴질 공간으로 만들어가겠다고. 그렇게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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