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으면 책상 정리를 하다가 공부할 시간이 다 지나가고 에너지도 소진되었다는 이야기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모처럼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으니 어수선한 책상 위가 신경이 쓰인다.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 먼지를 닦고 나니 이번에는 어질러진 방도 눈에 들어온다. 열심히 정리를 하니 너무 피곤하다. 시험공부는 내일 해야지.
나의 경우는 물론 책상 위를 간단히 치우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어지러움은 감수하고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정리를 하려고 하면 다른 급한 일들이나 해야 함을 가장한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올라서 정리를 뒤로 미루었다. 그래서 정리를 하려면 정말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정리를 할 때면 마스크를 꼈다. 먼지가 너무 많이 나서 그냥 하면 재채기와 콧물은 물론이고 눈물까지 날 때도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쌓일 만큼 쌓아 둔 다음 도저히 못 견딜 때 한 번 대대적인 정리를 하고 몸살을 앓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정말 오랫동안 결심을 굳혀야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일단 이리저리 뒤섞인 것들을 꺼내어야 한다.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계속 쓸 것과 앞으로 사용하게 될 것, 그리고 남에게 주어도 괜찮을 만한 것, 그리고 버려야 할 것들 중에서도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로 구분해야 한다. 먼지를 닦아낸 다음 다시 사용할 것들은 다시 정리를 해서 넣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두뇌와 체력을 동시에 사용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일인 것이다. 나의 에너지와 시간은 한계가 있으니 정리를 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을 포기해야 하니 또 다른 결심이 요구된다.
어제 현관 옆 오픈 수납선반을 정리를 한 다음 오늘은 현관을 바라보았다. 우리 집에서 정리해야 할 우선순위로 둔 곳들이 몇 군데 있다. 하나씩 차례로 진행하려고 며칠 씩 마음을 다잡았다. 어떤 구역은 바로 시작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현관을 정리해야지. 신발장 문을 열어 봐야지. 작아지거나 너무 낡은 신발은 버려야지. 이 간단해 보이는 과정이 나에게는 큰 심호흡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신발장 문을 열었다. 아이가 넷이니 신발의 수가 많기도 하지만 막상 신는 신발은 적었다. 막둥이가 신을 만한 신발 세 켤레를 남기고 거침없이 솎아내었다. 작년에 신던 샌들 가운데는 오래 신어서 더 이상 신을 수 없는 것들인데도 아까운 마음에 계속 가지고 있던 것들이 세 켤레는 되었다. 20년 전 댄스 스포츠를 배울 때 신었던 댄스화도 여전히 가지고 있었는데 버리기로 했다. 여전히 왈츠를 우아하게 추고 싶고 차차에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현실 상 아직까지는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속 버킷 리스트로 두고 있는 댄스 스포츠를 정식으로 시작할 때 어울리는 신발을 사면 되겠지. 여분으로 두었던 셋째의 낡은 야구화들도 버렸다. 새로 선물로 받은 야구화가 있어서 신발 밑창이 다 떨어지고 작아진 야구화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는데 존재도 모른 채 가지고 있었다. 비싼 가격 때문에 당근에 팔까 싶어 계속 모시고 있었던 아이들 방한 부츠들도 다 담았다. 필요한 사람에게 갈 것이다. 쇼핑백만 세 개가 필요했고 큰 일반 쓰레기 봉투가 두 개가 필요했다. 가끔 좋은 것들을 재활용품 함에 거침없이 담으시는 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누군가에게 줄만한지 살펴보고 깨끗하게 담아서 주거나 중고 판매를 위해 올리는 것도 에너지가 소진되기 때문이다.
현관은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데 한 켠에는 간이 신발장까지 있었다. 여섯 식구가 신는 신발이 너무 많고 신발장 안에 공간이 없으니 신발 정리 용으로 사서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로 먼지가 쌓이고 쓰레기가 들어가는 데다가 지지력이 약해서 선반용인 막대기가 자꾸 빠져서 신발이 자꾸 떨어졌다. 결국 제 구실을 못하고 오히려 좁은 현관을 더 좁게 만드는 역할만 했다.
신발들을 대부분 꺼냈다...사진마저 흔들려 어지러운 것은 무생물체도 아는 것일까.
신발장 안에서 1년 이상 안 신었던 신발들을 모두 꺼내고 나니 현관에 쌓여 있던 신발들이 들어갈 자리가 생겼다. 오히려 남았다. 세상에.... 나는 마스크를 신발들과 같이 보관하고 있었다. 아무리 밀봉된 마스크라지만 먼지가 많은 신발 곁에 마스크를 상자 째 두는 것은 맞지 않다고 여겨졌다. (사실은 신발장 문을 열어 보기 전까지 마스크 상자를 거기에 넣어 두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분명히 택배 박스가 왔을 때 대충 빈자리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을 것이다.) 신발들을 다 분리하고 나니 이제는 순수하게 수납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깨끗이 닦아 내고 거기에 마스크만 따로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에 샀던 간이 신발장은 버리기로 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결 여유가 생긴 현관을 물티슈로 깨끗하게 닦아 내고 한쪽 구석에서 굴러다니던 쓰레기들을 모두 치웠다.
마지막으로 현관에는 신발 여덟 켤레만을 놓아두었다. 여섯 켤레가 아닌 여덟 켤레인 이유는 둘째와 셋째가 신발 두 종류를 번갈아 가면서 자주 신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다 빼내니 이제 짧은 우산을 긴 우산 넣는 곳 가까이 놓을 수 있었다. 그전에는 공간이 마땅치 않아 현관 주변을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문을 열면 제일 처음 만나는 공간인 현관. 누군가 갑자기 우리 집을 방문하면 현관을 보여주기 부끄러워 문을 빠르게 열고 내가 밖으로 나가곤 했다. 음식 배달이 올 때도 늘 민망한 기분이었다. 물론 현관을 정리했으니 다음 단계가 차례차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 단계를 클리어했으니 그다음 단계는 쉬울 것 같지만 여전히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다. 아직도 현관 앞에 쌓여있는 책 박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올 때 동선에 걸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당면한 목표이다. 그리고 마스크를 끼지 않고 마음 편하게 청소와 추가 정리를 할 수 있는 것까지 슬쩍 더해 본다. 큰 용기를 내지 않아도 쉽게 청소할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하여 지금 용기를 내어 공간을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