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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22. 2024

파친코 1부 원서로 읽기

Why did Yoseb have to pay for everything? Why did he control all the money? The last time they'd argued was when she'd wanted to get a factory job.

왜 요셉이 모든 것을 갚아야했겠는가? 왜 그가 모든 돈을 관리했겠는가? 그들이 마지막으로 다툰 것은 그녀가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했을 때였다.


Stupid women! Every time I walk down the street, how am I supposed to face these men again, knowing that some foolish women paid my debts? My nuts are shriveling.

바보 같은 여자들! 내가 길을 걸어갈 때마다 내 빚을 어떤 바보 같은 여자들이 갚아주었다는 것을 아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보란 말이야! 뇌가 쪼그라든다고.


The moneylender would see him like all the other men who sponged off their wives toiling in factories or working as domestics.

그 사채업자는 자신을 하인처럼 일하거나 공장에서 노역하는 아내들에게 붙어 먹고 사는 다른 남자들처럼 볼 것이다.


You' re the head of our house here-.

It shouldn't be me.

It must be you.

형이 여기서는 우리집 가장이야.

내가 될 수는 없지.

형이어야 해.


Noa - because he obeyed and did what the Lord asked. Noa - because he believed when it was impossible to do so.

노아 - 왜냐면 주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순종하고 실행했으니까. 노아 - 왜냐하면 그는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했을 때 믿었으니까.


파친코를 원서로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부분은 기독교와 그 교인들의 삶과 가치관을 굉장히 세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여자들에게 결혼 후에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가정을 세우는 것이 바르다고 가르쳤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서 힘들게 대학에 가고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물론 교회의 가르침이 향하는 바와 이유는 이해했다. 가정에 아내가 있고 엄마가 있어야 안정이 되고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한다. 나도 엄마가 집에 없으면 외롭고 허전했으니까. 이것은 비단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던 아니던 집에 누군가가 있어서 지켜줄 때의 그 안정감을 생각하면 당연한 바람과 기대일 것이다. 다만 현대사회, 그리고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덴마크 같은 국가가 아닌 이상에는 그러한 이상적인 현실이 어렵다는 것에 있다.


파친코에서 요셉은 그의 아내 경희가 직업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가 집에서 저녁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 가정의 모습을 꿈꾼다. 동생 부부를 오사카로 오도록 하기 위해서 사채업자에게 빚을 내었지만 갚을 수 없었고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선자는 자신이 받은 시계를 전당포에 팔아서 돈을 갚는다. 요셉은 이에 분노한다.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짓밟힌 그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빚을 갚을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한 현실에 대한 분노. 여인들의 돈으로 빚을 갚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볼 시선에 대한 수치심.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자신의 가족과 아내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가정을 성실하게 부양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을 냉대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사랑한다. 동생의 결정을 존중하고 신앙으로서 살아가고자 애쓴다. 그것만으로도 경희는 남편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동시에 답답해 한다. 요셉은 시대의 가치관에,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의 가치관에 갇혀 있다. 가부장제와 유교적 사회관의 가치가 여전한 이 세대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은 그 때와는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며느라기와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고 영상화되었을 때 이슈가 된 것이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당연해서 뭐가 문제인지도 몰랐다. 왜 논란이 되는 지도 몰랐다. 당연하지 않음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당연이 편리한 사람들이 불편을 느낀 것이다.


요셉의 동생 이삭이 선자와의 결혼을 결심했을 때 그는 호세아서를 읽었고 그에 자신의 소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부남의 아이를 가진 선자와 결혼하여 부정한 자식을 자신의 자식으로 키우며 사랑해서 하나님의 품으로 이끄는 것. 선자는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여자의 힘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당시의 시대상.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는 또 다른 가부장제에 대한 관념적 배경과 기독교라는 종교적 배경이 있다. 이제 3분의 1에 해당하는 1부를 읽었기 때문에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남은 부분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You may think you're using him, but is that who we are? Shall we exploit because we have been exploited, my dear child?

우리가 이용 당했으니까 우리가 그들을 이용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은 또 날카롭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어렵고 이리저리 갈 곳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삶은 결국 수없이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 다른 것들이 밀려오는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지면서 배워가는 것이다. 어느 삶이든 시대적 배경은 다를지라도 결국 헤쳐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와 '어디로',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왜'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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