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평범한 열 살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I know I'm not an ordinary ten-year-old kid. 나는 물론, 평범한 일들을 한다. I mean, sure, I do ordinary things.
I eat ice cream. I ride my bike. I play ball. I have an XBox. Stuff like that makes me ordinary. I guess. And I feel ordinay. Inside.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공놀이를 하고 엑스박스를 가지고 있다. 나를 평범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범하다고 느낀다. 속으로는 말이다.
But I know ordinary kids don't make other ordinary kids run away screaming in playgrounds. I know ordinary kids don't get stared at wherever they go.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평범한 아이라면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소리 지르며 달아나도록 하지 않을 거라는 것. 평범한 아이라면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뚫어지게 쳐다보지도 않는다.
If I found a magic lamp and I could have one wish, I would wish that I had a normal face that no one ever noticed at all.
만약 요술램프를 발견해서 소원을 하나 빌 수 있다면 나는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정상적인 얼굴을 갖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9월 2일부터 읽을 아름다운 아이, Wonder의 첫 부분이다. 다른 이들이 하는 똑같이 평범한 일들을 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아이, 어기. 안면기형으로 어기가 얼마나 간절하게 평범함을 바라는지는 ordinary라는 단어의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문단 안에 평범함을 뜻하는 단어 ordinary는 무려 7번이나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어기가 간절히 바라는 평범함. 정말로 이 평범함을 바라는가?
They see me as extraordinary. I think the only person in the world who realizes how ordinary I am is me. 그들은 나를 아주 특별하게 바라본다. 내가 얼마나 평범한지 이 세상에 깨닫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라고 생각한다.
살아보니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평범한 4인 가족에, 평범한 아파트에 평범한 차에 평범한 외형에 평범하게 친구들과 웃고 울면서 즐기는 평범한 일상. 이 평범함이라는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정말로 고군분투한다. 웃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을 때가 있다. 하고 싶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잣대를 요구하니 그 기준에 맞춰서 내 의지를 접기도 한다. 제일 힘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두 쉬워 보이는 평범한 일상이 왜 내게는 이토록 어려운가 하는 문제이다.
나는 어릴 때 평범하고 싶었다. 그런데 스스로 알았다.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여기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비범하다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선망받는 그런 학생회장 같은 그런 평범하지 않음이라면 너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내 세계가 확고했다. 그 확고한 세계에 만족하며 사는 아이라면 딱히 문제가 없었을 텐데 다른 세계에 편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가진 것과 어떻게 타협을 해야 하는지 몰랐으니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쟤 왜 저래?' 하는 시선을 받은 것은 당연하게도 여러 번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하루는 박완서의 책을 읽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읽었는데 책을 읽었어도 그 책에 대해서 나눌 만한 그런 친구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옆 자리에서 그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내 짝에게 다른 아이가 와서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좀 더 사회적으로 성숙했더라면 자연스럽게 대화 속으로 스며들 수 있었겠지만 나는 다짜고짜 반가운 마음에 "나도 읽었는데!" 하면서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친하지도 않은 아이들이었다.
중학교 때 혹독하게 훈련을 받고 나니 고등학교는 정말 천국 같았다. 다양한 친구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도 큰 행복이라는 사실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때라고 해서 중학교 때와 엄청나게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부드럽고 유연해진 것과 더불어 친구들이 나의 독특함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었다는 부분 덕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반은 아니어도 늘 집에 같이 가는 '절친'의 존재는 마음을 든든하게 지켜주기도 했다.
아이들도 늘 긴장한다. 새 학년이 되어 새로운 반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탐색하는 것이 아는 친구가 있는가, 그리고 내가 마음 맞는 친구를 잘 사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 고민과 적용은 학년이 끝날 때까지 치열하게 이루어진다. 어른이라고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남과 다르고 싶어 하지만 또 많이 다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다름은 중요하지만 비슷함 역시 중요하게 적용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오면 기분이 안 좋지만 비슷한 옷은 괜찮다.
생각해 본다. 지금 나는 평범해졌는가? 잘 모르겠다. 일단 아이가 넷이라는 것만으로도 조금 다른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냥 넘겼는데 커 갈수록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으니 어쩐지 더 허덕이는 것 같다. 그러면서 계속 눌러왔던 나의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지고 있으니 두 배로 바쁠 수밖에 없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치열한 갈등을 했다. 피아노 연습을 하러 갈 것인가, 못 다 읽은 책을 마저 펼칠 것인가, 아니면 집중해서 글을 후다닥 쓰고 다른 일을 하러 갈 것인가. 사십 대가 되면 남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아파트도 한 채 없이 여전히 대출에 허덕이며 전세를 구해야 할 판이다. 아. 매달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 텅장이 된다는 것은 남들과 비슷할까. 아니. 분명 한 달의 살림살이를 잘하시는 분들은 나와 같은 비용으로도 정말 알차게 꾸려가시겠지. 어쨌거나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집 한 채를 나도 소유하고 싶은 그 평범함에 편승하고자 오늘도 노력해 본다. 가장 손쉬운 실천의 일환은 집밥이라고 생각하며 "치킨!"을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밥을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