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헌정 Widmung은 그가 작곡한 가곡 중 정말 유명한 곡이다. 클라라 슈만에게 결혼 선물로 준 연가곡 중 한 곡인데,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로 원곡인 가곡뿐 아니라 다양한 편곡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멜로디도 아름답지만 반주 부분도 너무 아름다운데 이는 슈베르트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도 한다. 그전에는 피아노는 그저 노래를 받쳐 주는 역할만 할 뿐이었는데 슈베르트는 피아노 부분을 함께 주고받는 위치로 격상시켰다.
이 곡을 리스트가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했다. 리스트는 본인의 곡을 많이 작곡하기도 했지만 다른 작곡가의 수많은 오페라나 관현악곡을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을 많이 했다. 덕분에 많은 곡을 그 특유의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피아노의 매력을 가득 느끼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그대 나의 환희, 나의 고통
그대 내가 살아가는 세상
그대 나의 천국, 나 그 안에서 날으리
그대 나의 무덤, 나 그 안에 내 근심을
영원히 잠재우리
그대 나의 안식, 나의 평화
그대 하늘이 내게 주신 사람
그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고귀하게 하네
그대 시선이 나를 맑게 하고
그대의 사랑이 나를 끌어올리네
그대는 나의 선한 영혼이며,
보다 나은 나 자신이네
슈베르트 판타지를 끝내고 원래는 정말 오랜만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7번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헌정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이 곡을 쳐보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감히'라는 마음으로 한쪽에 밀어 두고 있던 곡이었다. 한 번 악보나 살짝 익혀 보자는 마음으로 슬슬 쳐 보고 있었는데, 마침 선생님이 딱 보시더니 헌정도 공부할 것이 많은 좋은 곡이라면서 한 번 해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한 달간 정말로 피아노에 살고 피아노에 살았다. 손가락 힘을 빼고 손목 힘을 빼는 것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되었는데 4번 5번 손가락으로 주 선율을 살리면서 나머지 부분을 있는 듯 없는 듯 풀어가는 것이 정말로 극강의 난이도였다. 조금 되나 싶으면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고 레가토로 어떻게 이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마음으로 계속 처음 멜로디 부분을 수없이 반복해 보기도 했다.
다음 달 미니 연주회 때 헌정을 하기로 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피아노 특훈을 받았다. 원래 한 시간짜리 레슨을 선생님이 30분으로 쪼개서 잡아 주고 나는 연습하고 다시 숙제 검사를 받는 형식인데 말이 30분이지 실제로 하다 보면 40분이 훌쩍 넘는 경우가 왕왕이 었다. 곧 출산에 들어가시는 지라 그전에 어떻게든 기본 형태를 잡아 주고 가겠다는 의지 앞에서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는 없어서 이번 여름은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것과 두어 가지 목표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시간을 피아노에 올인했다.
4분 남짓 되는 이 짧은 곡을 치면서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비크의 절절했던 사랑을 생각해 본다. 나의 영혼이며 나의 심장이고 나의 환희이자 고통이다. 사랑하기에 그만큼 가슴을 에이는 듯하다. 그대가 바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일 정도로 나의 전부라는 그런 마음을 나는 알았던가. 법정 공방까지 벌여가면서 끝까지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나는 할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사랑을 해 보지 못했기에, 어쩌면 나는 이 곡에 이토록 매혹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클라라 슈만은 그래서 더 끝까지 남편을 지켰고, 그래서 브람스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승의 부인을 연모가 아닌 경애했을 브람스 역시 그 마음을 음악으로만 표현했을 뿐.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올해도 클라라 슈만이 관련된 곡을 한 곡씩 치고 있다. 작년에 친 브람스의 간주곡 Op.118 No.2 역시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된 곡이다. 슈만의 가곡이 격정적이고 보다 젊음의 간절함이 녹아있다면 브람스의 간주곡은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온 노인이 된 거장의 존경과 감사의 깊이가 느껴져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난다.
이쯤 되면 클라라 슈만이 도대체 얼마나 깊이가 있는 여인이었길래 당대 음악계의 두 거장의 사랑을 이토록 받았는지, 그녀의 내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어려운 시절에도 남에게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콘서트와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아이들까지 책임감 있게 양육한 명 피아니스트. 그녀를 생각하다가 밤이 늦었다. 감동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담기에는 이 음악들이 주는 울림이 참으로 커서 흘러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