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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02. 2024

둘째의 여드름 치료기 (시작)

우리 둘째딸은 아주 예쁘다. 어릴 때 같이 다니면 내 미니미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물론 나보다 훨씬 예쁘고 귀여웠다. 지금도 보면 나를 닮기는 했으나 내가 둘째 나이 때는 저만큼 예쁘지 않았다. 이렇게 예쁘게 생긴 둘째에게 고민이 하나 있으니, 아니 둘이 있는데 어쨌거나 가장 큰 고민은 여드름이다. 얼마 전에 한의원에 다녀와서는 튀긴 음식과 밀가루와 단 것을 안 먹으면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빵과 단 것을 너무나 사랑하는 둘째에게 그 처방은 가혹한 것이었다. 한동안 절제하니 괜찮았다가 요새 이것저것 (본인 말에 의하면) 주워 먹었더니 급기야 이마에만 있던 여드름이 볼에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둘째에게는 내가 못 입어서 준 예쁜 옷들이 많은데 못 입는다. 목선이 조금만 파여도 등에 난 여드름 흉터 자국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여드름이 많이 올라오는 시절이 있으니 좀 지나면 괜찮겠지 싶어서 기다린 것이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피부과 의사인 친구 동생에게 물어보았고 당장 병원에 데려가서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는 수 밖에 없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오늘 병원에 갔다. 이마 여드름 치료와 등 흉터 치료까지 비용은 백만원에 육박하였으나 의사선생님의 선처로 90만원에 합의를 보았다. 내 얼굴에 심각한 기미와 이리저리 산재한 점들도 돈이 아까워 없애질 못했다. 그런데 둘째를 위해서는 기꺼이 추석 보너스를 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이것은 진정한 모성애가 아닐 수 없다. 하아.      


그런데 피부과 예약이 그렇게 밀려 있는 줄 몰랐다. 치료 가능한 시간은 오전 9시라는데 학교에 있을 시간이니 안 된다. 오후 시간이 가능한 때는 한 달 뒤였다! 그렇게 일단 무이자 4개월로 결재를 하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왔다. 처방전을 받아든 약사 언니가 반색을 하면서 음료수를 두 병 내어준다. 내가 이 약국에 막둥이랑 소아과 약을 받으러 몇 번을 왔어도 음료수를 준 적이 없는데 뭔가 찜찜하다 싶었다. 약을 꺼내 오시는 주약사님도 슬쩍 보시더니 “음료수는 받으셨나요?”하고 물어보신다. 왜지......왜 두 분 다 이러시는 거지....결제를 하는데 3만원 가까이 나왔다. 음료수 줄 만 하다.      


일주일치 약이 이랬으니 다음 주에도 가서 간단한 진료는 보고 약을 처방 받아야 하는데 서너 달 걸린다는 이 치료 기간 동안 약값도 장난은 아니겠다 싶었다. 퇴근하고 바로 갔는데 한참을 기다리고 무슨 치료까지 받고 오느라 집에 오니 7시 반이 되었다. 둘째는 이제 밀가루, 설탕, 유제품, 튀긴 음식은 모두 금지이다. 한식만 된다고 하셨다. 다이어트를 하는 나도 덩달아 먹을 것이 없다. 그런데 집에 왔더니 신랑이 피자를 시켜 놓았다. 이런. 그런데 도우가 까만 것을 보니 흑미 도우이다. 에라 모르겠다 둘이서 작은 것으로 두 조각 정도 먹고 나머지는 샐러드와 연어를 구워서 먹었다.      


갑자기 올려 놓은 장남감을 구입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앗 9시 수업인데. 8시 50분까지 가지러 오겠다고 해서 부리나케 판매하고 와서 영어책읽는밤 수업을 하고 다시 아이들 귀도 파주고 – 막둥이 귀지가 엄청 났다, 둘째 옷도 골라주고 – 현장체험학습 나가는 날 꼭 멜빵 바지를 입고 싶은데 집에 없으니 사고 싶단다 – 네 용돈으로 사라고 했다, 나는 오늘 너 피부과 결제해서 돈이 없다, 수긍했다, 아이들이 아파서 고생인데 얼마 전 다섯째까지 임신한 동생과 톡을 주고 받고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아이들이랑 실랑이를 벌인다. 월요일이다. 월요일이 지나갔으니 이제 휙휙휙 조금 수월하게 가겠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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