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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05. 2024

제일 재미없었던 놀이공원

"미친 거 아냐?"

둘째가 격앙된 목소리로 흥분해서 말했다.

"6시 45분에 만나재!!!"

응?


둘째네 학교는 현장체험학습을 놀이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둘째는 원래 절친과 같이 못 가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반에 있는 절친에게 먼저 같이 가자고 말한 아이가 있어서 그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가기로 했는데 그중 한 명이 아침 6시 45분에 만나서 출발하자고 했다고. 7시 반에도 겨우 눈을 뜨는 아이가 6시 45분에 아이들을 만나려면 아무리 못해도 6시에는 일어나야 할 텐데 그건 내가 봐도 불가능해 보였다. 둘째는 다른 친구랑 가야 하나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둘째랑 같이 가고 싶어 한 친구가 있었는데 거절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화를 걸었다. "시아야. 사정이 생겼는데, 나 너랑 같이 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할래?"

시아는 우리 딸과 같이 가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장 내일이 놀이공원에 가는 날이다. 이대로 같이 가는 친구들을 변경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걱정이 되었으나 하도 흥분을 하는 둘째에게 그렇다면 잘 설득해 보라고 했다. 둘째는 그 모임에서 제일 친한 친구 한솔이에게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는 카톡을 보냈다.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시아가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둘째가 낯설어서 싫다고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다시 한솔이에게 톡을 보냈다. 여전히 읽지 않는다. 걱정걱정하던 둘째는 결국 전화를 걸었다.


솔아...... 솔이는 배시시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그래. 너는 조금 늦게 나와. 우리가 기다릴게." 솔이의 말에 둘째의 마음도 사르르 풀렸다. "솔아, 내가 보낸 톡은 그냥 없었던 것으로 해 줘." 우리 둘째는 낯을 많이 가리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걱정이 많이 되었다. 친구라고는 절친인 가연이 밖에 없을 까봐 정말 걱정을 했다. 그렇게 놀랍게도 같이 가자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 둘이나 더 있었다. 거기다 본인이 꽉 막힌 상황이 되었을 때 또 적절하게 조정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용기도 있었다. 나라면 그냥 혼자 갔을지도 모른다. 


내일을 위해서 특별히 쇼핑몰에서 예쁜 옷도 주문을 했다. 아침에는 슬쩍 화장도 했다. 코 쉐이딩을 잘해 보고 싶다고 밤에 연습도 해 보고 잠도 일찍 자러 갔다. 아침에는 알아서 알람을 맞추고 일찍 일어났다. 즐거운 마음으로 나갔는데 4시 정도에 전화가 왔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담임 선생님을 찾으려다가 못 찾고 친구들이랑 헤어져서 혼자서 오고 있는 중이란다. 하나도 재미가 없었고 최악이라고. 타고 싶은 것은 타지도 못했다고 한다. 짐작컨대, 원래 아주 친하던 그룹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중에 한 두 명만 친한 아이들이었고 나머지는 그냥 그런 관계였을 것인데 같이 놀려니 쉽지 않았겠지. 


나는 어제부터 둘째 때문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왕따까지는 아니겠지만 은따라도 되는 것을 아닐까, 아니면 그냥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어색 어색하게 학교 생활을 겨우겨우 하는 것일까, 친구들이랑 그래도 잘 간다니 안심이 되어서 기분 좋게 아침에 보내주었는데, 오후에 제일 재미없었다고 하니 또 스멀스멀 걱정의 기운이 마음을 잠식한다. 이것이 남일 같지 않은 것이 나도 중학교 소풍 때마다 이 부분이 늘 난감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는 다른 반이고, 같은 반 아이들은 어색하고 그러니 둘째의 고민되는 마음이 조금 더 들어온다. 그래도 나보다는 지혜롭게 용기있게 헤쳐가는 것 같아서 기특하게 생각했는데 여전히 갈 길은 많이 남아 보인다. 거듭거듭 생각해 봐도 중학교 시절이 제일 험난했다. 개성과 성격이 조금은 덜 다듬어지고 사회를 조금 더 배워야 하는 시기. 초등과 고등 사이 그 애매한 시점에서 깎여야 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리저리 조금 덜 상처 받으면서 성장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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