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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07. 2024

길에서 보낸, 그러나 유의미한 하루

“정말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뭐가 처음이야. 매번 처음이래.”     


사촌 오빠의 큰 딸이 결혼하는 날이다. 나는 사촌이 많았다. 친가 쪽으로는 16명, 외가 쪽으로는 13명이니 진짜 많긴 많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친한 사촌들이 아무래도 있기 마련이다. 둘째 고모네 막내아들인 오빠는 어려서부터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만들었고 커서도 우리 아이들을 정말 예뻐해 주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예 고모네 집으로 가서 자고 와도 편할 정도로 늘 잘 챙겨 준 고마운 일이 많은 지라 결혼식 날짜가 나왔을 때부터 달력에 콕 저장을 해 두었다.     


보통 토요일이라고 해도 청주는 2시간 반 정도면 너끈하게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다. 그래서 이왕 가는 김에 광명에 들려서 친정 부모님도 같이 모시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야 뭐 30분 정도 추가되는 정도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집에서 9시에 출발하면 넉넉하게 12시 반 결혼식까지는 잘 가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차가 막혀도 너무 막히는데 문제는 시간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이대로는 결혼식 참석은커녕 결혼식 다 끝나고도 아니고 친척들 다 집에 간 다음에 도착하게 생겼다.     


차가 하도 막히니 엄마가 이렇게 막히는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계속 한탄을 하셨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음 주가 추석이었다. 다들 미리 벌초 내지는 방문을 하러 가나 보다. 내 친구네도 내일 미리 산소를 간다고 하던데. 아. 더 일찍 출발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그리고 왜 자꾸 국도로 보내지. 하다가 고속도로를 겨우 탔는데 세상에, 고속도로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저쪽 버스전용차선을 쌩쌩 잘 달린다. 조금 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맞다. 나 카니발이지. 그리고 지금 차에는 아이들과 친정부모님이 타고 계시니 이미 꽉 차 있는 상태이다. 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을 달릴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바보같이 그걸 잊고 천천히 가고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진짜 거침없이 질주했다. 다만 너무 늦게 깨달은 탓에 도착하니 12시 45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차장이 문제였다. 만차니까 저쪽 멀리 가라는 것이다. 안 돼애. 일단 부모님과 아이들만이라도 먼저 내려 드려야 하겠다. 그렇게 사정을 말하고 들어갔는데 바로 빈자리가 딱 보였다. 럭키.     


그리고 결혼식장에 들어서자 양가 친지 가족사진을 찍으라고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나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아.... 이게 뭐야. 그래도 사진이라도 찍었으니 다행인가 하하하.     


오랜만에 만난 다른 사존들과 수다를 떠는 것은 역시 즐거웠다. 이제는 다들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고 조카들이 십 대와 이십 대의 푸릇푸릇한 모습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하긴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낯선 아이들이다. 육촌 관계이긴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이 아닌 어쩌다 한 번 볼까 말까 하니 친척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타인에 가까운 언니 오빠들일뿐이다. 나에게는 양가 풍성한 사촌들과의 재미난 시간을 아이들이 즐길 수 없는 것이 좀 안타깝다. 내 동생도 나처럼 네 아이의 엄마지만 나이 터울이 많이 나서 사촌과의 즐거운 시간을 즐기는 것은 막둥이뿐이다. 시동생은 아이가 하나이고 역시 나이 차이가 한참 나서 같이 놀기는 애매하다. 친척 결혼식에는 가능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편인데 이제는 각자의 일정으로 바빠지기 시작해서 오늘도 겨우겨우 설득했다. 어릴 때 그리고 커서도 부모님의 지인들 경조사에는 가급적 힘껏 따라다녔다. 기쁘고 슬픈 일에 함께 하는 것이 단순하게 얼굴을 비추는 것 이상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는 의미가 있으며 동시에 부모님의 면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이었다. 부모를 따라서 오는 아이들의 존재감은 별로 없는 것 같아도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면서 의례의 규범이라는 것을 배우고 의식이라는 것이 어떻게 치러지는지 배우게 된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도 반복되는 친척들 간의 모임에서 그렇게 한 겹 두 겹 쌓인 유대감은 나중에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뭐, 또 다른 내 사촌동생처럼 안 가고 안 와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겹겹이 쌓여가는 정이 의미롭다고 여긴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소 지루하다. 또래 친구도 마땅치 않거니와 예식장 식당의 특성상 시끄럽기만 하다. 

“엄마, 여자들만 이야기를 많이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남자들도 정말 말을 많이 하네요.”

집에 가고 싶은 막둥이는 고모부 할아버지들과 외할아버지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기다리다 그만 지쳐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집을 향한다. 여전히 국도로 안내를 해서 결국 고속도로를 타는 것에 실패했지만 올라오는 길은 그래도 조금 빠르게 왔다. 부모님을 모셔다 드리고 다시 외곽순환도로를 타는 순간 어디선가 카톡 알림이 크게 울린다. 아앗. 엄마가 핸드폰을 차에 놓고 내리셨던 것이다. 1분만 빨랐어도 그냥 차 돌리기 너무 좋았는데 이미 큰 도로에 들어선 지라 다시 돌아가는데 20분이 걸렸다. 그래서 30분이면 도착했을 시간이 갑자기 1시간을 늘어났다. 결국 집에 오는 길도 4시간 넘게 운전을 한 셈이다. 하하핫.     


하루를 온전히 다 쏟았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달 후에 있는 또 다른 조카의 결혼식에는 못 갈 것 같다. 그날은 아들 시합 때문에 횡성으로 간다. 신랑에게라도 부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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