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Sep 17. 2024

분위기만 고급스러웠다

이번 명절은 친정도 시댁도 모두 밖에서 먹기로 했다. 추석 당일은 문을 여는 곳이 많지 않아서 몇 곳을 찾아 보다가 괜찮을 것 같은 중식당을 골랐다. 우리집과 시가, 시동생의 동선까지 고려한 위치였다. 외부도 괜찮았고 내부도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고급 중식당으로 보였다. 그리고 딤섬도 샤오롱바오 같은 다양한 종류를 갖추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식당에서 샤오롱바오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만 원에 네 개로 가격은 좀 있지만 일단 시키고 다른 메뉴들도 조금 더 시켰다. 평소라면 먹지 않을 해물누룽지탕과 꿔바로우까지 시키니 제법 호사스러운 메뉴가 되었다. 우리 테이블에서만 가격인 13만원 가까이 나왔으니 적은 가격은 아니다.


그런데 일단 샤오롱 바오는 크기가 작았고, 국물은 짰으며, 피는 덜 익은 듯 축축했다. 직원에게 이야기하자 7분만 찌도록 되어 있다면서 원래 국물을 먼저 먹고 등등의 설명을 하는데 내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몇 번을 먹어 보았지만 이렇게 별로인 샤오롱바오는 처음이었다. 다음으로 누룽지탕이 나왔는데 국물은 달고 짜고 해물은 싱거웠다. 누룽지는 따로 서빙이 되어서 뜨거운 국물을 부을 때 바사삭 소리가 나야 하는데 이미 담겨서 나온 상태로 벌써 눅눅해졌다. 하아. 크림짬뽕 역시 해물과 야채에는 간이 안 되어 있고 면과 소스와 건더기가 모두 따로 놀았다. 그나마 꿔바로우가 괜찮았는데 역시 소스는 너무 달고 짰다. 막내가 먹는 짜장을 슬쩍 맛 보았더니 면은 너무 기름이 졌다. 게살 볶음밥은 그냥 무난했다. 다섯 명이 먹는 테이블에서 이 정도로 비용을 지불했는데 솔직히 별로였다. 둘째는 내내 나에게 "누룽지 탕 빼자고 내가 몇 번을 말 했죠!"라면서 구박을 했다. 


우리는 근처 문을 연 카페를 찾아서 가 보기로 했다. 멋진 야외 정원을 가진 역시 '나 비싸요'하는 분위기를 팍팍 내는 고급 베이커리 카페였다. 음료수 가격도 상당했다. 라떼 한 잔에 기본은 7.5천원. 밀푀유 2개를 시키니 17천원이었다. 10명이 가서 하나씩 시키고 적당히 케익도 시키니 10만원은 기본이었다. 아아....그런데 그 비싼 밀푀유 케이크는 정말 별로였다. 아이들이 왜 한약맛이 나냐고 하는데 내가 봐도 이 한 조각이 9천원이나 할 말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클 만큼 커서 가격의 의미를 대강 안다. 나오는 길 모두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식당도 카페도 비싸고 분위기는 좋은데 정작 맛이 없었으니 다들 떨떠름한 기분으로 나왔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우리끼리 숙덕이는데 셋째가 불쑥 말한다. "분위기만 고급스러웠어요." 그렇다. 비싼 만큼 맛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래도 만족스러웠을 텐데, 이도 저도 아닌 돈은 돈대로 쓰고 (심지어 카페 앞 주차는 발레파킹 비용까지 받았다.) 맛은 평균치만큼도 못했으니 영 개운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게도 그럴진데, 사람은 어떠할까. 겉으로만 그럴싸 해 보이고 막상 알게 되면 정말 별로인 경우가 없진 않을텐데. 나라는 사람은 과연? 겉으로라도 그럴싸 해 보이기는 하는 것인지, 최소한 겉은 별로라도 내면을 알게 되었을 때 속은 기분이 안 들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에서 보낸, 그러나 유의미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