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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20. 2024

19금 영어소설 읽기 After

나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영상도 잘 보지 않는다. 유투브 알고리즘에 뜨는 것은 필라테스 관련된 영상과 영어 공부 관련된 영상들 뿐이다. 그것도 정말 어쩌다 보는 정도이다. 영상 보다 문자로 된 텍스트를 선호하는 탓이다. 강제로 영화관에 들어가 2시간 정도 머무르지 않는다면 영상을 끝까지 보는 일은 별로 없다. 책이 훨씬 생생하게 즐거운 것도 있지만 늘 나를 바쁘게 쪼개서 시간을 보내는 탓도 있다.


그러다 우연하게도 모든 프로젝트가 2주간의 휴식을 취하는 시기가 왔다. 슬로우 리딩으로 원서를 천천히 읽는 영원한읽기 프로젝트도 파친코를 석 달 만에 마치고 휴식. 하루에 한 문장씩 영어를 공부하는 모임도 장기간 프로젝트를 마치고 휴식. 심지어 글쓰기까지 휴식에 들어갔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매주 월요일에 진행하는 글로성장연구소의 영어책 읽는 밤인데 열심히 준비를 한다고 해도 사흘이면 되니까 남는 시간이 모호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하나 보면서 영어를 공부해 볼까 하는 마음에 그냥 앞에 뜨는 영화를 하나 클릭했다. 애프터. 흔한 로맨스 같은데 은근 인기가 높은 듯 보였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리즈 같기도 한데 그냥 한 번 클릭했다. 헐. 수위가 높다. 보다가 몇 번을 멈췄는지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끝까지 보고 나니까 다음 편 안내가 뜬다. 보통 이런 영화는 책이 있던데. 하는 마음에 검색을 했더니 역시. 책이 뜬다.


무려 다섯 권?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라고? 사실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타이틀을 붙이고 있어서 베스트 셀러라고 해도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다 괜찮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책은 흡입력이 있어서 휘리릭 빠르게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어휘가 매우 생생하고 노골적이다. 지난 번 콜린 후버의 책도 그랬다. 원서를 검색해 보는데 왓????? 가격이 다른 책들보다 월등하게 비쌌다. 한 번 보고 말 책인데 2만원도 넘는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는 않았다. 중고를 검색해 보니 알라딘에 두 권 있다. 지난 번에 보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둔 씨크릿 원서와 함께 주문을 했다.


그리고 딱 나흘간 6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다 독파했다. 파친코와 두께는 비슷한 것 같은데 내용이 자극적이고 쉬우니 그냥 술술 읽혔다. 너무 야한 내용도 많아서 영어라 다행이지 싶었다. 우리 딸들은 절대 읽으면 안된다. 하하하. 영화와 다르게 중요한 클라이맥스는 아예 제일 뒷장에 있었다. 도대체 그 하이라이트가 언제 나오는 지를 몰라서 책을 손에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I can't stand to hear any more. I can't take it. I'm sick to my stomach, and the pain of Hardin's betrayal is cutting at me, making me weaker and weaker by the moment.


이런 책은 원서로 읽어야 한다. 보통 현재시제로 쓰는 경우가 많다. 쇼퍼홀릭도 그랬다. 번역하면 좀 어색해지는데 영어로 읽으면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이 되어서 더 빠져들게 된다. 이 책 덕분에 완전 생활 영어로 가득찬 생생한 표현들을 날 것 그대로 접했다. 그런데 이렇게 분노와 경악과 불안에 차서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제는 좀 좋은 책, 건강한 책을 읽고 싶다.


일주일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잠시의 일탈을 즐겼으니 이제 다시 안전한 책으로 돌아갈 차례이다. 다음 주부터 마틸다가 시작되니 만세! (물론 마틸다도 호불호가 갈리고 찬반이 갈리지만 그래도 19금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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