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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2시간전

외로운 아이, 책에서 세상을 만나고 이기다

Matilda

마틸다를 원서로 읽고 있다. 로알드 달의 독특하면서도 재치 있는 문장과 표현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이 책은 호불호가 갈린다. 그의 유머는 어두운 면이 있어서 가끔은 좀 지나치지 않은가 싶은 부분이 있는 것이다.


너무도 총명해서 3살에 스스로 글을 깨우친 아이, 마틸다는 아빠에게 책을 사달라는 부탁을 한다. 아빠의 대답은?


"A book?" he said. "What d'you want a flaming book for?"

"To read, Daddy."

"What's wrong with the telly, for heaven's sake? We've got a lovely telly with a twelve-inch screen and now you come asking for a book? You're getting spoiled, my girl!"


사랑스러운 테레비(텔레비전을 텔리라고 말하길래 나도 테레비라고 말해 본다)를 두고 왜 괘씸하기 짝이 없는 책 따위를 요구하냐며 책이 너를 망치고 있다는 아빠의 말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엄마는 매일 오후면 빙고 게임을 하러 시내로 나가고 오빠는 학교에, 아빠는 일을 하러 나가니 마틸다는 혼자 있다. 방치된 아이는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선다. 다행스럽게도 십 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어린이 코너의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사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수준 높은 책들을 읽기 시작한다. 그 책의 목록에는 나도 안 읽어 본 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영국이 사랑한 위대한 작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시작으로 올리버 트위스트, 니콜라스 니클비를 읽고 제인 에어나 오만과 편견, 투명 인간, 노인과 바다, 분노의 포도, 동물 농장과 같은 책들을 읽는다. 마틸다는 말한다. 


"Mr Hemingway says a lot of things I don't understand, " Matilda said to her. "Especially about men and women. But I loved it all the same. The way he tells it I feel I am right there on the spot watching it all happen." (헤밍웨이 작가님은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쓰고 있어요. 특히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요.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좋아요. 헤밍웨이 작가님이 말하는 방식은 제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지켜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헤밍웨이가 읽기 힘들었는데 마틸다는 그 부분이 좋다고 하니... 어른도 못 읽는 헤밍웨이를 읽는 어린 마틸다의 천재성이 여기서 보이는 것이다!!


"A fine writer will always make you feelt that, " Mrs Phelps said. "And don't worry about the bits you can't understand. Sit back and allow the words to wash around you, like music."


사서 선생님은 훌륭한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한다면서 이해 못 하는 부분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저 음악처럼 앉아서 단어들이 그렇게 너를 흘러내리게 하라고. 이 얼마나 멋진 조언인가 말이다! 그렇게 마틸다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방 한쪽에서 책과 함께 멋진 여행을 떠난다.


The books transported her into new worlds and introduced her to amazing people who lived exciting lives. She went to Africa with Ernest Hemingway and to India with Rudyard Kipling. She travelled all over the world while sitting in her little room in an English village. 


이 부분은 내게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를 떠올렸다. 고아원에서 자란 주디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문학의 세계를 처음으로 제대로 맛보게 된다. 처음으로 접하는 문학의 세계 속에서 그녀는 한 없이 행복하다. C.S. 루이스는 책이 천장 끝까지 쌓인 다락방에서 읽으면 좋을 책, 읽으면 좋지 않은 책, 어린이가 읽어서는 안 되는 책, 어린이는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을 보면서 자랐다고 했다. 마틸다의 이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게 했다. 집에는 책이 많지 않았다. 그랬기에 어쩌다 새로운 책이 들어오면 나이에 상관없이 읽고 또 읽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원본은 난잡한 용어로 가득 차 있었고 다락방의 연인들은 초등학생에게는 적합하지 않았고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중학생이 읽기엔 매우 충격적이었으며 고도를 기다리면은 고등학생이 되어서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냥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었고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시야를 확보해 주었다.


우리는 늘 현실 속에서 비슷한 일들을 겪고 한정된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지만 책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가들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담아내고 풀어내고 전달하고자 전력을 다하고 나는 그저 읽으며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내 평생의 삶에서 절대 겪어 보지 못하고 만나 보지 못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나의 삶은 보다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그렇게 풍요로워진다. 하루키의 팬은 아니지만 그가 한 말에는 공감한다.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 사람은 사람과 삶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논지의 말로 기억한다. 


마틸다는 외롭다. 누구도 그녀를 제대로 봐주지 않고 이해해 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외롭게 분투해야 하는 아이는 이렇게 책으로 세상을 만나고 부당한 현실에 대처해 나간다.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멍청하다는 모욕을 끊임없이 듣고 위협을 들으며 혼자서 분노를 삭히고 가야 한다. 그러니 방법은 서투르고 때로는 과하다. 눈물의 홍수를 만들어내는 대신 어떻게 하면 이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서 나름의 복수를 한다. 이 복수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아이의 슬픔은 이해를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고 유교적인 문화권에서 자란 우리는 깔깔깔 웃으며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조금 이해가 된다. 


이전에는 몰랐던 현실의 한계와 벽이 책을 수없이 읽는 동안 눈에 들어와 인지가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이제는 마틸다의 아빠도 안다. 그러니 마틸다의 책을 찢어 버리는 것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다. The father kept going. There seemed little doubt that the man felt some kind of jealousy. How dare she, he seemed to be saying with each rip of a page, how dare she enjoy reading books when he couldn't? How dare she?


Matilda longed for her parents to be good and loving and understanding and honourable and intelligent. The fact that they were none of these things was something she had to put up with. 선하고 사랑이 있고 이해심이 있으며 명예롭고 지혜로운 부모님이기를 바랐는데 그중 하나도 해당이 안 된다는 사실은 마틸다가 견뎌야 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었어도 마틸다가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기에 이 부분이 참 안타깝다. 모든 부모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우리도 사람이라 다 결핍이 있다. 때로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때로는 지혜롭기는커녕 바보 같은 실수를 한두 번도 아닌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이런 부족을 견디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수익에 대해서 마틸다가 정확하게 계산해 내자 그 아버지는 아이에게 모욕을 퍼붓는다. 자신도 하기 힘든 계산을 어린아이가 이토록 빠르고 정확하게 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You must have looked! No one in the wrold could give the right answer just like that, especially a girl! You're a little cheat, madam, that's what you are! A cheat and liar!" 딸이 몰래 종이를 훔쳐봤다는 말도 안 되는 억측을 하면서 사기꾼에 거짓말쟁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아버지 본인이 사실은 사기꾼에 거짓말쟁이이다. 그러니 마틸다는 외롭다. 그녀에게는 책만 있을 뿐. 이 외로운 아이가 복수로만 견디기에는 세상은 너무 팍팍하고 어렵다.


원서 읽기 모임의 한 분이 이렇게 나누어 주셨다. 해리 포터와 달리 친부모자식관계인 것을 고려할 때 과연 마지막 결말이 어떻게 끝맺어질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한 촌만 건너서 이모와 삼촌 정도만 되어도 아이에 대한 이러한 분노는 이해가 되지만 내 자식에 대한 이러한 졸렬한 질투와 방임을 넘어선 아동학대가 고스란히 펼쳐지는 장면은 견디기 쉽지 않다. 의외로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가 많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막상 우리 눈앞에 펼쳐지면 어려운 것이다. 과연, 로알드 달은 이 괴로움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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