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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an 02. 2025

한 해의 끝과 시작에서 그리스를 생각하다

새해의 결심, New Year's Resolution 대신 생각

한 해의 끝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듯 몹시 아팠다. 처음에는 단순한 근육통으로 생각했는데 온몸이 춥고 떨림이 멈추지 않는 오한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무시했다. 하루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선생님들이라면 으레 학년말에 겪는 그런 몸살로만 생각했다. 다음 날이 되자 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면도칼로 에이는 듯한 이 고통은 꼭 코로나에 다시 감염된 것 같았다.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과 같다'는 한강 작가의 말이 글자 그대로 나에게 적용되는 것 같았다. 이 고통을 제대로 감지한 것은 불행하게도 일요일 오후. 병원은 문을 닫았고 나는 그저 감기몸살약과 진해거담제로 버텨냈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몸을 일으켜 세울 힘이 없어서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정오 즈음 조금 기운이 차려지는 것 같았다. 청소를 했다. 이리저리 흩어진 택배 비닐들과 포장을 한 곳에 담고 사방에 놓여 있는 책들을 한 곳에 모으고 곳곳에 놓인 자잘한 과자 껍질과 흔적들을 모은 다음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쓰러졌다. 하루 이틀 더 놔둔다고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임계점이라는 것이 있다.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마음도 어지럽고 안정이 되지 않아서 미뤄둔 숙제가 나를 누르는 것 같았다.


청소를 겨우겨우 마치고 나니 일찍 온 둘째와 방학을 한 셋째가 배가 고프다고 했다. 대충 라면이라도 먹으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모처럼 집에 있으니 집밥을 대강이라도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일어나서 토마토소스 리조또를 만들어 주고 다시 누웠다. 평소에는 다이어트한다고 잘 먹지 않는 아이스크림이 눈에 띄어서 몇 숟가락 먹었더니 나름 힘이 났다. '단 것'의 힘으로 이제는 병원에 갈 수 있겠다 싶어 4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보통 7시까지 하니까 지금 가면 그래도 사람이 없겠지 싶었는데, 이게 웬 걸. 나를 환영한 것은 '마감'이라는 표지판이었다. 이미 대기 환자가 50명이 넘어서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다른 병원으로 갔는데 거기도 마감. 결국에는 아이들이 가끔씩 가는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기로 했다.                


열은 없었다. 독감일까 의심했는데 열이 없으면 검사를 하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은 독감이 왔는데 지나갔거나 아니면 오다가 사그라든 것 같다고 했다. 나흘 분 약을 받아왔다.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던 목의 통증은 밤이 되자 다시 치솟아 올랐다. 밤새 잠을 설치고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에 신랑이 출근하는 소리에 이어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세 아이를 연달아 깨워야 했다. 7시, 7시 반, 8시 반에 아이들을 차례로 학교에 보내고 나서 겨우 쓰러져 눈을 감았다 뜨니 또 11시가 넘어 있었다. 연말에 있던 약속은 모두 취소를 했다.        

        

그렇게 누워 있는데 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이번 주부터 아이들과 도서관에 일주일에 두 번씩 가기로 약속했는데 오늘이 그날이다. 약속은 약속이니 가야지.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누워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원래 가던 중앙도서관은 차로 20분을 가야 하는데 거기로 갈 힘은 없어서 집 앞에 있는 작은 도서관으로 갔다. 책이 참 없다. 요새 '핫'한 신간들은 보이지 않고 그나마 있는 몇 권은 다 대출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데 다른 좋은 책도 많겠지만 뭔가 의미로운 책을 읽고 싶었다. 문득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관한 책이 읽고 싶어졌다.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과 송동훈의 그랜드투어를 꺼내 들었다. 출판사에서 글 써 달라고 여행도 보내주다니, 너무 부러웠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영국문학기행과 이탈리아도시기행을 가는 것이 꿈이다. '멋지게 나이 들지 못한 미소년'이라는 말이 쿡 찔렀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리스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가리키는 표현처럼 느껴졌다.               


열세 살. 친구네 집에 숙제를 하러 가서 본 브리태니커 대백과 사전에는 그리스에 대한 설명이 빼곡하게 담겨있었다. 그리스라는 나라의 과거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줄 그때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생소한 아크로폴리스, 아고라 이런 지명을 읽고 페리클레스, 솔론,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물에 대한 설명을 옮겨 적으면서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역사에 매료되었다. 아마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로 시작된 서양 문화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이탈리아에 대해서, 르네상스에 대해서 조금씩 빠져들었다.

           

유럽의 귀족 자제들이 했다는 그랜드투어가 미치도록 부러웠다. 비록 지금은 그 찬란한 과거가 오로지 유물로만 남아있다는 그리스지만 그럼에도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스를 다녀온 기행작가들은 말한다. 그때의 그 영광스러운 역사가 지금 그리스에 남아있지 않다고. 송동훈 작가는 그리스는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낙인찍혀 있음에 안타까워한다. 유시민 작가는 아테네는 냉정하게 말하면 초라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경로의존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연히 어떤 길에 들어서면 더 좋은 길을 알아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쩌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들인 습관이 안 좋은 것은 알지만 바꾸기 참 어려운 것 말이다. 영어로 비슷한 속담은 'Old habits die hard.'가 있는데 오래된 버릇은 죽기 힘들다, 그러니까 없애기 어렵다는 말이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쳐내리는 도서관의 창가에 앉아서 몇 천 년 전 지중해의 패권을 잡았던 도시국가의 흘러감을 생각하며 지나가는 한 해와 다가오는 한 해를 생각해 보았다. 아직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모두가 밀레니엄이 되는 그 해의 시작인 일출을 보겠다고 다들 동쪽으로 갈 때, 친구의 삼촌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새로운 천 년의 시작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지나가는 천 년의 마지막을 보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니."라고. 그래서 친구는 서해안으로 가서 그 천 년의 마지막 지는 해를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마지막 시간 날의 오후를 아이들과 도서관에 보내고 집으로 와서 다시 쓰러져 누웠다. 자고 일어나니 아직은 많이 낯선 2025년의 첫날이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그래도 새해니까 새해의 결심을 세워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뉴욕타임스 뉴스레터를 보게 되었다. It’s been a year, hasn’t it? There was a lot to cover.  (정말로 굉장한 한 해였습니다. 그렇죠? 다룰 것이 참 많았어요.)

그다음은 미국과 세계에서 일어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간단하게 언급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나라의 계엄령 사건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잔잔하다.


With a new year upon us, we hope you’re able to take a moment to reflect not only on the big and difficult moments of this year, but also on small pockets of joy. However you chose to celebrate last night, we hope you closed out the year on a high note — or, at least, a calm one. (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해에, 올 해에 크고 험난했던 순간들 뿐만 아니라 소소한 기쁨의 순간들 역시 반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밤을 어떤 방식으로 축하했던 지간에 그것이 한 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기를 바랍니다. 혹은 최소한 고요하게라도요.)


아파서 끙끙거리면서 마지막 날을 보내는 것이 과연 성공적인 마무리인가에는 굉장한 의구심이 들지만 어찌 되었건 조용하게는 보냈다. 우리나라는 도저히 축하할 수 있는 연말의 분위기가 아니기도 했다. 계엄령으로 인한 탄핵 움직임도 그러하거니와 제주항공사고로 인한 그 수많은 분들의 사망 소식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여, 올해는 뭔가 거창한, grand 한 그런 결심은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아픈 몸과는 별개로 힘찬 의지로 불타오르지는 않았다. 새해의 결심은 영어로 New Year's Resolution이라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인 solution(솔루션, 해결)과 맞닿아 있다. 동사형태인 solve는 보통 '문제를 해결하다, 분해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시'의 의미가 있는 접두사 're'가 붙은 resolution은 해결, 결단력, 결의안, 해상도의 뜻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resolution'이라는 단어 안에 '다시 느슨하게 만들다'라는 의미의 '해결'과 '느슨해진 것을 다시 단단하게 만들다'라는 반대되는 뜻인 '결심'이 한 단어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새해의 결심이라는 영어식 표현에는 안 된 것들의 해결과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결단까지 포함되어 있다.                


다시, 그리스로 가 본다. 도시의 발전에 '경로 의존성'이 영향을 미치고 국가의 존망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결국 사라진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경로 의존성은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내가 새해에 이것만은 꼭 하겠다고 굳은 결심을 해도 기존에 하던 것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제 마흔 중반이 되었으니 모든 것이 심드렁해진 그런 권태기 같은 그런 것은 또 아니다. 다만 나를 조금 더 차분하게 살펴보았을 뿐이다.


뭔가 완전히 새롭게 나를 확 바꿀 필요는 없다고 느껴졌다. 나의 장점과 단점도 어느 정도는 파악을 해서 객관적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도 대강은 보인다. 마흔이 되면서 조금씩 나를 바꾸어갔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서서히 잡아갔던 생활 패턴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그래서 올해는 내가 잘하는 것들을 조금 더 잘하게 만들고, 못하는 것들은 조금 덜 못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소소한 목표들을 세웠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어공부를 하며 피아노를 치는 생활 습관은 어느 정도 잡혀있다. 늘 하던 것에서 +1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집에 넘쳐나는 책들과 장난감들에는 -1을 하기로 했다. 과하지 않게 조금씩 그렇게 방향을 잡아간다.                


그렇게 그리스를 생각하면서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 앞부분에서 실망을 가득 표현하던 작가들은 뒤에서는 또 다른 의견을 덧붙인다. 과거 지중해를 주름잡던 그 황홀하리만치 찬란하고 강력했던 도시국가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살아있다고, 여전히 그 안에 자리 잡은 잠재력을 이야기한다. 비록 서두에 그 영광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고 잔인할 만큼 냉정하게 말을 했더라도 그리스를 떠나는 그 말미에는 그 유산을 품고 있는 문화에 대한 기대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삶이 그리스와 같지 않기를 바란다. 융성했을 때의 그리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태양은 신이 아니라 불타는 돌덩이'라고 주장하는 천문학을 신성모독의 학문으로 정의하여 아낙사고라스를 떠나게 만들었으며 신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한 프로타고라스의 책을 불태우고 도시에서 추방했다. 분서갱유와 사상탄압은 민주주의 국가에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들어는 보았으나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 그들의 가치관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면 진리의 여부와 상관없이 쫓아내고 거부했다. 그 문화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으며 후에 다시 르네상스 운동으로 돌아왔고 현재에도 그리스로마 신화라는 이름으로, 또한 철학과 문학과 역사학 등 수많은 학문과 예술의 기원으로 어디에서나 회자되고 끊임없이 가르침과 영감을 주는 그 문화를 감히 나는 낮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취할 것은 무엇이고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왜 그 흥하던 문화가 쇠하였는지 시사하는 바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뿐이다.

        

어느 문화에나 흥망성쇠가 있다. 흥이 있으면 망이 있고 융성함이 있으면 쇠퇴함이 있다. 나의 한 해가 엄청나게 흥하고 성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쇠락해 버리고 싶지 않다. 견고한 벽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이만하면 잘하고 있으니 되었다고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분명히 신호가 있었다. 탄탄하던 도시 국가들은 초반에는 융성하기 쉬웠으나 후반에는 오히려 어려웠다. 비단 그리스의 도시국가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가야가 그러하였고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공국이 그러하였다. 그럼에도 그 신호가 주는 경고를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러니 나의 한 해 역시 나의 책임이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어느 때에서 신호가 왔을 것이고 올 것이다. 그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된다. 경로를 확 틀어버리는 것은 어려워도 옆에 있는 길로 조금 바꾸어서 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조금씩 바꾸어 나가고, 잘하고 있는 것들은 조금씩 더해가면서 방향을 잡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여 일상 속에서 그렇게 소소한 성취가 이루어지고 그로 인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생각을 적어본다. 올해는 '결심'이라는 말보다는 '생각'이라는 단어를 써 보고 싶었다. 몸이 아파서 오히려 나를 더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니 아픈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무겁지 않게. 하지만 가볍지도 않게. 그렇게 적당한 무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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