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완전 인싸 친구들이랑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싶거든요?"
둘째가 가끔씩 톡톡 던지던 말이었다. 중학교 2학년인 둘째는 늘 친구들을 갈망했다. 그렇다고 친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이면 집 근처에서 만나 같이 등교하는 친구도 있고 토요일마다 같이 미술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반에서 딱히 어떤 그룹에 속해 있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뭔가 조금씩 자신과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나는 늘 둘째가 걱정이 되었다.
이런 둘째의 모습에서 나의 중학교 시절을 본다. 친구를 사귀는데 미숙했던 나는 또래 문화에도 미숙했다. 그냥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좀 달랐다. 책과 클래식 음악만 파고드는 반응이 다소 엉뚱한 아이. 중학교에 다니던 그 3년 동안 나는 정말로 혹독한 사회생활을 겪으며 사회가 원하는 틀과 적당한 반응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배워갔던 것 같다. 그 중학생 시절을 거쳐서 고등학교에서는 정말 행복하게 보냈으니, 힘들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이들은 날카롭다. 누가 나와 다른지, 그 다름이 내가 인정하는 긍정적인 방향인지 아니면 재빠르게 멀리해야 할 다름인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실천에 옮긴다. 아름다운 아이 Wonder에는 인기 있던 아이 Jack이 어떻게 그룹에서 소외되는지를 보여준다. 잭은 줄리안의 얼굴을 때리고 정학 처분을 받는다. 줄리안이 어기의 험담을 했다고 때린 사유를 말하기엔 자신 역시 어기에 대한 험담에 동조한 적이 있기에 부끄럽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정학 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며칠 만에 등교한 학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인기가 많던 잭은 친구들이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최소한 점심시간에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다른 그룹의 친구들이었으니까. 그러니 최고 인기 그룹에는 속하지 않아도 중간 정도 되는 운동 좋아하는 아이들 모임이니 안전하다고 여긴 것이다. (I guess I thought since they weren't in the super-popular group but were kind of middle-of-the-road jock kids that I'd safe with them.) 하지만 그 아이들은 점심을 받으러 가서는 잭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줄리안이 앉은 테이블 근처로 가 버렸다. 꼭 유명세, 인기의 가장자리처럼 말이다. (They weren't at Julian's table, but they were near him, like on the fringe of popularity.)
그리고 샬럿은 잭에게 말해 준다. 아이들이 너를 소외시키는 것은 너로 하여금 어기와 어울리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고. 왜냐면 그게 잭을 위하는 길이라고 가장 인기 많은 아이 줄리안이 말했기 때문이란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고 황당한 논리란 말인가. 그런데 그것이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는 먹히는 모양이다. 우스운 것은 어기와 함께 점심을 먹는 서머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서머는 여자아이니까 줄리안의 영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줄리안의 친구의 여자친구 (아이고 복잡하다)인 슈퍼 인기걸 사바나가 서머에게 말한다. 어기와 그만 어울리라고. 줄리안이 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서머와 잭은 과정은 다르지만 둘 다 어기와 뗄 수 없는 친구가 된다. 어기의 외모와 어기의 식사 모습이 비록 근사하지 않을지라도 - 사실은 거북함을 불러일으킬지라도, 그것을 넘어서 어기의 재치 있는 말과 행동, 그리고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서 함께 있는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모임에 속하면 모두에게서 선망과 동경의 시선을 받을 수 있고 나 역시 가치가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정말로 나와 잘 맞는 친구들이라면 그 모임에 속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겉만 화려하고 속이 빈 쭉정이 같은 그런 인기그룹이라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나의 중요한 가치라면 거기에 시간을 쏟는 것이 맞다. 다만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는 정말로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어설프게 시도해 보니 알겠다. 갈린다가 하는 노래 파퓰러의 가사가 틀린 말이 하나 없는 것이다. 외모만 꾸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교대 3대 미인 중 하나였던 내 또 다른 친구는 예뻤던 만큼 들리는 말이 많았다. C의 옷 스타일부터 남자친구는 뭐 하는 누구인지 등등 같은 과도 아닌 나도 C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있는데 본인은 얼마나 피곤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러니 어느 정도 주어진 것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내게는 좀 더 편했다. 예쁘고 인기 많은 친구는 그대로 예쁘고 인기 많게 두고 나는 그냥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지냈다. 내가 그래도 괜찮았던 데에는 '화장 안 해도 예쁘다'라고 외치는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이런 쪽지를 거울에 붙여놓으셨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은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똑같은 엄마 아빠 밑에서 자라났어도 동생은 고데기로 머리도 말고 화장도 예쁘게 잘하고 옷도 맵시 있게 입고 다녔으니 전적으로 부모님 탓을 할 것은 아니긴 하다. 그냥 나는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이 더 편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마흔이 되어 버렸다. 친구들은 여전히 예쁘고 똑똑하다. 출근할 때는 대충 가도 친구를 만날 때는 조금 더 신경을 쓰는데도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확 죽어 버린다. 내 친구들은 별로 꾸민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반짝이는지. 가끔은 그녀들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며 감탄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처럼은 아니지만 나름으로 나만의 조건을 만족시키려 애는 써 보고 있다. 모두가 엘파바가 다른 사람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 때 갈린다는 말한다.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안 쓰이는 척하는 것뿐이라고. (She doesn't care what anyone thinks. Of course she does. She just pretends not to.) 신경 안 쓰는 척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는 것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신경을 쓰면서 세워가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귀찮아도 운동을 꼭 지켜서 하고 성가셔도 머리는 하루에 한 번 꼭 감고 무엇보다 날마다 세수를 한다!!! 기본은 해 보려는 것이다. 기본만 할 뿐, 그 이상으로는 에너지를 못 쏟겠다.
인기 그룹에 속하지 않아도, 인기가 많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은 수십 년 간 살아오면서 제대로 느꼈다. 학교에서 좀 외로워도 괜찮은 것은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자존감을 외부의 요소가 아닌 내면의 요소로 단단히 채웠기 때문이다. 저런 popular의 인기 조건을 꼭 갖추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설 수 있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기 때문이랄까. 그러니 나는 둘째가 하는 저 말이 가끔은 가슴이 아파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정말로 핵인싸그룹에 속하고 싶다면 나름의 노력을 할 테니까. 본인을 객관적으로 봐서 모나는 부분은 적당히 두드리고 튀어도 괜찮은 부분은 놔두겠지. 다만 흐느껴 울 때 함께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엄마가 있으면 아이는 결국 설 수 있다고 믿는다. 학년 초 친구가 하나도 없을까 고민했던 둘째는 여전히 인기 그룹에 속해 있진 않다. 하지만 반에 자신과 맞는 친한 친구들을 만들었고 잘 어울리면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나 보다 화장을 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