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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Dec 26. 2024

파퓰러 Popular 유명해지고 싶은 이유는 1

Wiked/Wonder

거울 속을 들여다 보면서 곰곰히 생각한다. 나는 예쁜가? 예뻐질 수 있는가? 예쁘면 좋은 거겠지? 어떻게 해야 예뻐지는 것일까? '미'와 '추'에 대한 이야기는 하도 넘쳐나고 넘쳐나기에 소재 자체는 딱히 새롭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항상 흥미롭다.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되풀이 되는 이 주제는 결국 나의 내면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외모가 아름답다고 내면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 속담만 해도 바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영어에도 있다. 'Fine feathers make fine birds.' 예쁜 깃털이 좋은 새를 만든다. 왜 우리는 그토록 예뻐지고 싶은 것일까. 


영화 위키드를 보는 동안 마음을 찌르는 수많은 명대사들과 장면들이 있었지만 한 가지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노래 파퓰러 Popular를 듣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을 가진 엄친딸. (아마도 마법에 대한 재능과 명석한 두뇌만 빼고.) 갈린다는 부와 미모로 마법학교를 평정한다. 예기치 않게 모두가 기피하는 초록피부의 소녀 엘파바와 한 방을 쓰게 되면서 결국 친구가 된다. 갈린다는 인기가 많아지는 것이 엘파바를 위한 자신의 호의라고 생각하고 노래를 부른다.


It's all about popular! 인기가 많아진다는 것은 말야

It's not about aptitude 재능이 아니야

It's the way you're viewed 네가 어떻게 비춰지는가야.

So it's very shrewd to be 그러니까 아주 교묘해야 해.

Very very popular like me! 나처럼 아주아주 인기가 많으려면 말이지!


여기서 shrewd는 '기민한, 영리한, 약삭빠른, 상황 판단이 빠른 등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캠브리지 사전에는 'having or based on a clear understanding and good judgement of a situation, resulting in an advantage'라고 적혀있다. 즉, 단순하게 머리가 좋거나 지적인 정도를 넘어서 상황을 잘 파악하고 판단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매우 날카롭고 민첩해야 하는 것이다. 'shrewd blade'는 날카로운 칼날을 의미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나같이 둔하고 게으른 사람은 popular 해지기 너무 어렵겠다. 


갈린다가 말하는 인기가 많아지려면 해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정말 많기 때문이다.

You're gonna be popular!

I'll teach you the proper ploys when you talk to boys

Little ways to flirt and flounce, ooh!

I'll show you what shoes to wear

How to fix your hair

Everything that really counts to be popular!

I'll help you be popular!

You'll hang with the right cohorts

You'll be good at sports

Know the slang you've got to know

So let's start, 'cause you've got an awfully long way to go:


https://youtu.be/5VjTswqyHdA?si=UJfl7JD4WOG-Y_uH

단지 외모를 가꾸고 옷만 잘 입는 수준을 넘어서서 추파도 당당하게 던질 수 있어야 하고 운동도 잘해야 하고 다양한 속어, 슬랭들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갈린다는 자신이 아는 최선의 방법을 다해서 엘파바를 꾸며 보는데 막상 해 보니 결과는 신통치 않다. 하지만 엘파바는 나름으로 이해한다. 갈린다가 악의로 한 것이 아니라 호의로 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문득 대학시절의 한 순간이 스쳐지나갔다. 대학교 1학년. 화장도 할 줄 모르고 옷도 예쁘게 입을 줄 모르는 교복만 줄기차게 입던 정말로 순진한, naive한 나는 어설프게 동아리 방에 앉아 있었다. 우리 과에는 교대 3대 미인 중 하나로 꼽히는 H가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둘은 같은 동아리에서 나름 친하게 되었다. H는 블러셔인지 섀도우인지를 하나 들고 와서 수다를 떨었다. 얼마 전에 화장법을 새로 배웠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날 따라 H는 유난히 더 반짝반짝 거렸다.  "이거 하나면 화장이 다 끝나!"라고 말하면서 신나는 어투로 나에게 화장을 해 주겠다고 했다. 진짜 화장에 대해서는 1도 몰랐던 나는 H가 해 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는데, 음......진짜 갈린다가 엘파바를 꾸며 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딱 내 느낌이었다면 이해가 가실지. 


눈썹은 너무 진하고 입술은 지나치게 강조되어 보였다. 그녀의 다소 어두운 듯한 피부 톤에는 새로 배운 화장법이 잘 어울렸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던 것이다. 입술은 내가 그녀보다 좀 더 두꺼운 편이었는데 자신의 화장법을 그대로 적용했으니 더 이상했다. 그러니 진짜로 조금 더 과장하면 서커스 광대 같았다. 거울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화장실로 가는 길, 다른 과 친구를 만났다. 몇 안 되는 남자 동기였는데 나를 보더니 "분장한 것 같다."라고 솔직한 평을 들려 주었다. 순간 진짜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운 마음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선연하다. 아마 그 동기는 그 순간도, 자신이 한 말 조차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어설프게 보였던 그 수치심은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미모와 두뇌와 몸매와 교양과 성격까지 다 가진 그녀는 진정 엄친딸이긴 했다. 아니.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엔 왜 이렇게 엄친딸 친구들이 많은 거지? 다 예쁘고 다 똑똑하고 다 성격도 좋고....그 예쁘고 인기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껴있는 나는.... 그러고 보니 나름 괴로웠던 것 같다. 그녀들은 원래부터 날씬했는데 나는 적당히 포동포동했다. 몸매는 그냥 그렇고 외모는 눈에 띄게 예쁘지도 않은데 키는 크니 소위 말해서 떡대가 있어 보이는 한국인의 기준에는 조금 맞지 않는 그런 체형으로 컴플렉스도 많았다. 심지어 제일 가까이 있는 내 동생도 예쁘고 사랑스러워 인기가 많았다. 그럼 인기가 많아지려면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정도의 의지와 동기가 내게 있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갈린다처럼 저렇게 지극정성으로 popular하기 위해 노력하기엔 솔직히 내안의 귀차니즘이 상당히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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