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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Dec 10. 2024

헬기가 날아가던 그 밤. 갈색 밤. 갈색 아침.

잊고 싶은 책이 있다. 기억나지 않으면 좋은 책이 있다. 하지만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던 그날 밤, 이 책이 떠올랐다. 갈색 아침. Brown Morning.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헬기를 아이들과 함께 보던 그 밤이었다. 


매년 봄,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꺼내는 책이 몇 권 있다. 그중 두 권이 갈색 아침, Brown Morning과 아무도 지나가지 마! Don't Cross the Line이다.      


평화로웠다. 햇살 속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Time was drifting by pleasantly as we sipped at our coffees and watched the world pass by. 친구와 만나 커피를 마시며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구경하는 동안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간다. 친구가 나에게 키우던 개 이야기를 하고 주사 이야기도 하는데 딱히 관심은 없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개를 죽이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무심결에 물어본다.


“Anyway, what was wrong with him? (그래서, 뭐가 문제였어?)”

“Nothing. He just wasn’t a brown dog, that’s all. (아무것도. 단지 갈색 개가 아니었을 뿐이지.)” 


그렇다. 이 나라는 갈색이 아닌 고양이는 모두 없애야 한다는 법이 생겼고 그다음으로 개로 넘어간 것이다. 뭐,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숫자가 지나치게 많았고 또 갈색이 현대 도시 스타일에 잘 어울린다는 뭐 그런 이유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키우던 고양이를 죽였다. 정부를 비난하던 신문은 폐간당했다. 도서관의 책들과 출판사들은 금지당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정부의 명령을 듣는다.


“The law’s the law.” 법은 법이니까.      

그런데 이상하다. 어린 소년은 울고 있고 나 역시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슬픔과 고통을 감수하고 정부의 말을 듣는다. 군대와 경찰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일이 발생한다. 


“But he had a brown dog! We’ve all seen it!” 하지만 저 사람은 갈색 개를 키웠다고요! 우리 모두 봤어요!

“Well, yes, but what they’re saying is that previously he had a black one.” 뭐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예전에는 검정개를 키웠다고 하더라고요.

“Previously?” 예전에요?

“Yes, previously. It’s now an offence to have had one that wasn’t brown in the first place. And that’s not hard to find out.” 네. 예전에요. 현재는 애초부터 갈색이 아닌 개를 키웠으면 위법이에요.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예전에 갈색이 아닌 개와 고양이를 키웠던 사람들도 체포되는 것이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스럽다. 그것이 ‘An offence against the State, 즉 정부에 대한 범법행위’라니. 마음은 불편했지만 그냥 넘어갔던 일이 이제는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되었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This was all getting out of hand.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되어 가고 있었다. 

The world was going mad.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And there I was thinking I was safe with my new brown cat. 난 나의 새 갈색 고양이와 안전하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이제는 잠을 잘 수가 없다. I couldn’t sleep a wink that night. 

시작부터 갈색법에 대한 의심을 했었어야 했다. I should have been suspicious of the Browns from the start. 

그때 뭔가 말했어야 했다. I should have said something then.      


왜냐하면 결국 나의 고양이였고 내 친구 찰리의 개였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말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Should have stood up to them. 맞서 대항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이 사람. 끝까지 핑계를 댄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전개되었다고 말이다. Anyway, we weren’t the only ones. 우리만 그런 거 아니라고. Everyone did the same thing. 모두가 똑같이 했다고. Kept their heads down.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왜냐면 그저 평화와 고요를 원했기 때문이니까. All we wanted was a bit of peace and quite. 그렇지. 모두 안전하고 조용하게 지내기를 원한다. 그것을 두고 누가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젠 누군가 내 문을 두들긴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마지막 문장은 매우 작은 글씨로 적혀있다. 속삭이듯이. I’m afraid. 두렵다고.    

                

평범한 밤이었다. 아이들은 떠들썩 하니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동시에 핸드폰들이 깜빡거리며 알람이 오기 시작했다. 계엄령이라고? 잘못 본 줄 알았다. 동시에 처음 든 생각은 ‘전쟁이 났나? 북한이 쳐 들어왔나?’하는 것이었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계엄령.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나도 다시 한번 공부하던 그 계엄령이라고? 서둘러 그 내용을 확인했다. 


잠시 후 헬기 소리가 들리며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은 애매했다. 어수선함을 반영이라도 하듯 정말 부연 갈색으로 보였다. 그날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헬기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슬프고 너무 어이가 없고 너무 부끄러웠다. 내일 무슨 얼굴로 반 아이들을 본다는 말인가. 국민만 수치스럽고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후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우습게도 계엄령은 해제되어 있었다. 고작 여섯 시간 만에 해제라니. 그 부분도 사실 우스웠다. 끝까지 가지도 못할 권위라니. 촛불을 들고 나설 예정이었던 나는 그나마 안도했다. 그 후에 일어난 일은 또 기가 막힌다. 정치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단체를 정당이라고 한다지만 투표에 참여조차 못하게 당론을 모아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니. 이 나라가 정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는다는 말인가. 자꾸 치솟는 눈물과 함께 마르틴 니믤러의 시가 떠올랐다.

     

First They Came 그들이 처음 왔을 때

                                – by Pastor Martin Niemöller


First they came for the Communists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을 때

And I did not speak out-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Because I was not a Communist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Then they came for the Socialists


다음으로 그들이 사회주의자를 잡으러 왔을 때

And I did not speak out-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Because I was not a Socialist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T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을 때

And I did not speak out-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Because I was not a trade unionist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Then they came for the Jews

그들이 유태인을 잡으러 왔을 때

And I did not speak out-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Because I was not a Jew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Then they came for me-

그리고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And there was no one left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To speak out for me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어 줄 그 누구도.


그 아픔의 역사를 겪었기에 우리는 나선다. 그 치열함의 역사를 겪었기에 우리는 나선다. 국민 모두가 아는 것을 소수만 몰랐다. 그럼에도 슬픔은 어쩔 수 없다. 왜냐면 어찌 되었건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수장이 그 정도의 가치관의 소유자임을 이런 방식으로 보여줄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어쩌면 그는 정말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 싫었나 보다. 우리에게 선을 넘지 말라(Don't cross the line!)고 명령한 그는 정말로 선을 넘었다. He crossed the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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