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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Dec 07. 2024

모아나 2 길을 잃어 볼 용기

눈부시게 반짝이는 푸르른 바다 위에 솟은 섬. 부드럽고도 힘이 실린 고둥 소리가 울린다. 햇살이 부드럽게 부서지는 평화로운 정경의 바다는 상상만 해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고립과 단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영국이나 일본과 같은 거대한 섬나라 라면 다르겠지만 태평양과 같은 거대한 대양 가운데 작은 섬들이라면 바다로 멀리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살면서 망망대해에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분명 여기에 두 발을 딛고 서 있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외롭다.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준비가 되었는지 확신도 서지 않는다.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기본적으로 안전함은 느끼지만 충분하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조금 더 준비를 해서 가야 할 것 같은데 그 준비가 언제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 모아나가 말한다. “For some things, we never feel ready.”  아이들과 즐겁게 보려고 간 영화관에서 나는 인생의 명대사들을 만났다. “준비가 되었다고 여겨질 때는 없어.”   

   

그렇다. 나는 늘 망설인다. 이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다 길을 잃으면 어쩔 것이고 가지고 있던 것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찌할 것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모험이고 불안정하다.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고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편하다. 그러니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길을 향해서는 한 걸음 내딛기 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그조차 과정이다. 길은 잃어봐야 길을 찾을 수 있다. “Get lost.” 길을 잃어보라니. 방황해 보라니. 꽃길만 걷기를 기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이다. 그냥 길을 걷는 것도 너무 힘든데 길이 아닌 길을 걷는 그 고통과 힘듦과 압박은 상상초월이다. 그럼에도 길을 잃어 보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는 늘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자라왔는데 그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하도 험하다고 걱정하시는 부모님은 딸들만큼은 정말로 제일 안전하고 올곧은 환경 아래 있기를 바라셨다. 세상의 나쁜 것들을 최소한으로 접하고 그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결혼하고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왜 그렇게 과하다면 과한 보호를 하셨는지. 직업조차 안정적이라는 공무원이다.


Remember there is always another way, even if you have to get lost to find it. 

그 누구도 내게 언제나 다른 길이 있다고,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길을 잃어봐야 한다고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혹여 그렇더라도 아마 젊은 시절의 내 마음에 깊이 박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두렵기 때문이었을 테니.     


하여 나는 방황은 하였으나 진정한 방황은 할 기회가 없었다. 특수목적대를 다녔으니 길은 명약관화. 치의대를 다니는 친구와 나는 늘 그것이 감사하면서도 고민이었다. 앞으로의 길이 너무도 분명하게 정해진 전공을 하고 있으니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고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다양하게 부딪쳐 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었다. 착한 아이. 착한 소녀. Goody two shoes, 혹은 goody goody라는 단어가 있다. 착한 일을 하면서 인정을 받는 소위 말하여 범생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감히 정해진 바운더리, 범위를 벗어나기엔 담이 너무 작았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과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러니 방황은 고민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도 오로지 과외만 했다. 부모님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나는 친구들처럼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일해 보지 않았다. 해외여행도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가 본 적이 없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회 학교 집을 규칙적으로 오갔다. 가끔 동아리와 동호회 활동을 조금 하는 정도로 끝났으니 스스로의 삶은 늘 정해진 규격대로 가는 표준의 삶이었다.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찾아보기 위해 길을 잃어볼 엄두도 못 냈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 부모님과의 관계 단절이 될까, 교회에 누가 될까,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어찌할 것인가.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나는 괜찮지만 그로 인해 우리 부모님이 받으셔야 할 비난의 시선과 고통은 어떨 것인가를 생각하느라 늘 전전긍긍이었다는 것을 마흔이 넘어서야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이 마흔에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남들이 가라는 안전한 길을 그대로 따라서 갔는데 가다 보니 마주한 것은 거대한 공허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방향성의 상실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그래서 공부를 한다. 처음에 비록 영어공부를 시작한 것은 상황에 따른 의무감 때문이었을지는 몰라도 한 번 시작한 공부와 책 읽기는 나를 들여다보게 했다. 나를 찾아가게 만들었다. "I cannot see where your story leads, but we never stop choosing who we are." 지금 내 삶이 어디로 이끌지는 정말로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사투를 벌이는 이 과정은 결국 나의 일부이고 나의 정체성이라는 사실이다.      


"I spent my whole life learning our people’s stories. Because of you, I lived one."

우리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마음에 담고 흘려보낸다. 그것은 그저 흥미를 좇아가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함이다. 내가 역사에 남을 그런 이름을 갖고자 함은 아니다. 그렇게 유명세를 날리는 것이 내 목적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것을 쌓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스스로 돌아보았을 때 유의미함이 있다면 바로 나는 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디즈니 영화가 그렇듯이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예전의 디즈니 영화들은 늘 이렇게 끝났다.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영화들은 sequel이라는 것이 많지 않았다. 신데렐라도 그렇고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야기도, 그 후속 편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정말로? 한 번의 시련을 거치고 결혼을 하면 그대로 영원히 행복이라고? 그래서 지금은 happily ever after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이야기를 그대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도 알고 제작자들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한 고비를 넘기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This is just the beginning."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그래서 삶은 또 아름답고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고 그래서 생동감이 넘친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말이다. 도달해야 하는 저 목적지가 때로는 끝없이 멀리 떨어져 보이는 것 같고 때로는 눈에는 보이지만 저 거대하고 격렬한 폭풍을 헤치고 가야 할 엄두가 나지는 않을지라도 결국은 끝이 있다. 그리고 그 후에 또 다른 도전이 있고. 그러니 삶은 사실 지루할 틈이 없다.      


이 고둥나팔을 잡고 고개를 올려 숨을 불어넣어 소리를 계속 내던 모아나는 기다림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찾아 나선다. 결국 숨겨진 섬을 찾아 그 존재를 드러내고 저주를 해체하여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길을 찾아낸다. 그러니 고둥을 불러 누군가 내 소리를 듣고 오기를 바라는 것도 좋지만 응답이 없을 때는 스스로 찾아가 본다.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은 길잡이.  Wayfinder. 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길잡이라는 말도 괜찮지만 finder라는 단어에 담긴 찾는 사람이라는 뜻의 어감이 나는 더 좋다. 영화 속에서는 그녀가 유일한 finder이지만 결코 혼자서는 길을 찾지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고 함께 고민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길을 찾고 만들어내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안 보인다고? 그래서 책이 있고 영화가 있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 수많은 wayfinder들과 함께 우리는 그렇게 길을 찾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나의 길. 당신의 길. 그리고 우리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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