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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명절 다이어트를 하게 만든 원인은

by 여울 Jan 29. 2025

오늘은 설날. 이 날을 위해 미리 갈비찜을 준비했다. 핏물을 빼고 한 번 끓여내서 불순물을 솎아 내고 양념을 하고 다양한 종류의 야채를 깍둑썰기로 넣어서 장시간 약한 불에 푹 고아내었다. 점심에 잘 먹을 예정이니까 아침은 가볍게 먹기로 했다.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아서 마침 식탁에 놓인 우유를 한 컵 반 정도 따라 마셨다. 방학하고 처음 마시는 우유라서 그런지 조금 더 고소하고 맛있는 것 같았다.


시댁에 가서 한참 점심 준비를 하고 드디어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갑자기 배가 미친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큰 딸아이를 불러 행주로 상을 닦고 수저를 놓으라고 시킨 후 후다닥 화장실로 갔다. 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겨우겨우 볼 일을 보고 나왔다. 상 같이 차려야지. 정성을 다해 만들어 간 갈비를 옮겨 담는데 다시 배가 조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훨씬 심한 고통에 다시 후다닥 화장실로 갔다. 눈치 없는 셋째는 밖에서 자꾸 문을 두들겼다.


이 고통은... 음... 흡사 작년에 겪었던 노로 바이러스로 인한 그 복통 같은 그런 느낌이다. 내가 뭘 잘못 먹었나??? 어제부터 먹은 것을 되새겨 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 상한 음식을 먹지도 않았고 과식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아침에 먹은 우유가 문득 떠올랐다. 이거 혹시 유당불내증으로 인한 고통인가? 식구들은 이미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큰 아이에게 다가가 슬쩍 물어보았다.

"딸아. 혹시 우유 마시면 장이 끊어질 듯 아프니?"

딸이 고개를 끄덕인다. 큰 딸은 오래전부터 유당불내증으로 힘들어했다. 그래서 큰 딸을 위해서 소화 잘되는 우유 같은 유당이 제거된 우유를 가끔 사 두곤 한다. 그럼에도 버블티를 끊을 수가 없어서 배앓이를 감수하고 버블티를 마신단다. "아느 정도 마시다 보면 내성이 생겨서 견딜 만해요." 아니.... 못 견디겠는데... 이걸 어떻게 견딘다는 거야.


나는 치즈도 좋아하고 아이스크림도 좋아하고 요거트도 좋아한다. 그런데 갑자기 우유로 인한 유당불내증이라니??? 아마도 빈 속에 오랜만에 생우유를 그대로 먹은 탓일까. 항생제를 쏟아부어서 약해진 위장이 견디지 못한 것일까.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소화제 있으니까 그냥 밥 먹으라고 하시는데 이건 뭔가를 입에 넣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식구들이 맛있게 명절 음식을 소화하는 동안 나는 작은 방에 누워서 혼자 끙끙 앓았다. 집에 빨리 가고 싶은데 오랜만에 동생을 만난 신랑은 반가운 마음에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혼자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며 오후 시간을 견뎌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이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옆반 선생님도 몇 년 전부터 유당불내증이 생겨 우유가 들어간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못 드신다고 하신 기억이 났다. 나이가 들면 그럴 수도 있구나...... 하필 명절 당일 발생하다니.... 좀 많이 슬펐다. 의도치 않게 명절 다이어트를 한 셈인데 이렇게 다이어트하고 싶진 않았다. 진심으로. 나는 잘 먹고 잘 놀고 싶었단 말이다.


집에 오자마자 누워 2시간 정도 자고 나니 이제야 겨우겨우 조금 회복이 된 것 같다. 억울한 마음에 호박전도 몇 개 집어 먹고 남은 굴비도 조금 먹고 갈비를 집어서 입에 넣었는데, 갈비까지는 무리였나 보다. 결국 내가 만든 갈비는 그렇게 한 점 먹고 끝났다. 기운이 없고 배도 고픈 것 같아 오기로 저녁을 먹고 나니 다시 배가 꾸룩꾸룩 아프다. 내일은 친정 식구들이랑 더 맛있는 거 먹기로 했는데.... 눈물을 흘리며 친정 식구들을 위한 갈비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https://brunch.co.kr/@estarlit/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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