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에게 다시 물어보니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은데 아마도 몸이 약해진 탓에 조금 더 심하게 겪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게 생긴 일을 영어로 설명을 해 보는 버릇이 있다. 그동안은 나와는 딱히 상관이 없는 일이라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유당'을 영어로 어떻게 설명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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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당을 설명할 때는 'sugar'라는 단어를 쓴다. 그래서 '무가당'이라는 말을 할 때는 'sugar free', 'sugarless', 'no-added-sugar' 등의 단어를 쓴다. 물론 '달지 않은'이라는 뜻의 'unsweetened'라는 단어도 쓰인다.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단어를 쓰면 된다. 포도당만 해도 글루코스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grape sugar이라는 단어가 있고 (건포도에서 추출해 낸 당이라고) 혈당 역시 blood sugar이라고 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유당은 우유의 당이니까 milk sugar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땐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유당'이라고 하니까 바로 milk sugar이라고 나오는데 그 옆에 lactose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아하. 이제 생각났다. 큰 딸아이를 위해서 종종 사던 소화 잘되는 우유를 '락토프리(lactose free)'우유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정확하게는 락토오스 프리 밀크지만 줄여서 락토 프리라고 해도 다 통용된다.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 락타아제가 없거나 적어서 생기는 증상을 유당불내증 혹은 젖당불내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불내증은 뭐라고 할까. 불내증이라고 하니 엄청 어려운 단어가 나올 것 같지만 의외로 우리가 아는 단어이다. intolerance. 이 intolerance는 접두사 in을 떼고 tolerance만 생각하면 접근하기 쉽다.
'tolerance'는 '용인, 관용, 아량' 등의 뜻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홍세화 작가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책에 등장하는 똘레랑스 정신을 기억하실 것이다. 영어로는 톨러런스인 이 발음이 프랑스어로는 똘레랑스로 소리 난다. 그 똘레랑스를 생각하면 tolerance 역시 이해가 쉽다. 동사형은 tolerate 인데 '참다, 용인하다, 견디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tolerance는 '용인, 관용'이라는 뜻 외에 '내성, 저항력'이라는 뜻도 있다. 참고 견디다 보면 내성도 생기고 저항력도 생기는 것이다.
그 앞에 영어 접두사 in-이 붙으면 보통 부정(not), 반대(opposite), 부재(without)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물론 in-은 다른 뜻도 있다. '안으로'의 의미도 있고 어떤 것을 조금 더 강조할 때 붙이는 경우도 있다.) 우리에게 제일 친숙한 단어는 미션 임파서블의 impossible일 것이다. 아니, 여기는 접두사가 im-인데 어떻게 in-과 같이 묶이냐고? 우리나라의 구개음화처럼 뒤에 오는 단어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b, m, p'앞에서는 'im-'으로, 'l' 앞에서는 'il-', 'r' 앞에서는 'ir-'로 된다. imbalance (불균형), immortal (불멸의), imprudent (경솔한), illegal (불법적인), irregular(불규칙적인) 등의 단어에서 이 접두사 im-, il-, ir-을 떼어버리면 우리말의 '불'을 뗀 것과 같은 뜻이 된다. balance (균형), mortal (필멸의), prudent (신중한), legal (합법적인), regular (규칙적인)의 뜻이 되는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더 다양한 뜻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나 대체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당불내증을 뜻하는 lactose intolerance는 유당에 대한 내성이 없거나 저항력이 없다는 뜻이다. 참고로 '나는 유당불내증이다'라고 말할 때는 'I am lactose intolerant.'라고 intolerate의 형용사형을 쓰면 된다. intolerant는 특정한 식품이나 약품에 대해서 과민증이 있어서 먹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글루텐을 못 드시는 분들은 I am gluten intolerant라고 하시면 된다. 하지만 다른 뜻으로는 '편협한, 옹졸한, 너그럽지 못한, 편협한, 다른 의견을 용납지 않는' 등의 뜻이 있으니 상황에 맞게 쓰면 된다. 부정적인 단어보다는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가끔은 이 부정적인 단어도 적절한 곳에 적절하게 쓰이면 또 효과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나의 이 유당불내증이 일시적인 것이길, 아니면 차차 또 좋아질 수 있는 것이길 희망해 본다. lactose tolerant이길 말이다. 유당불내증을 끌어안고 살기엔 세상엔 유제품이 베이스로 들어간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다. 유당내성 lactose tolerance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링크도 첨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