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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가게를 사랑하겠습니다

by 여울 Feb 04. 2025

밤새 페이지 수를 줄이는 작업을 하던 그 밤. 편리한 온라인 출판 업체를 이용하려면 그만큼에 해당하는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시간도 빠듯하지만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비용은 어떻게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문득 재작년에 급하게 부탁드렸던 동네의 작은 제본업체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영어문집을 발간하던 그 해도 역시 시간이 없었다. 105권이나 되는 책들을 인쇄하려니 비용도 비용인데 시간이 더 문제였다. 보통 사흘이면 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연말연시는 인쇄업체들이 정신없이 바쁜 시기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최소 4개의 대학이 있는 곳이니 그만큼 제본소와 인쇄소도 많았다. 하나씩 다 전화를 하면서 견적을 받는데 한 곳은 된다고 했다가 취소를 하는 바람에 더 힘들었다. 다행히 한 곳에서 받아주셔서 어찌어찌 진행을 했다. 급하다는 말에 다른 일보다 먼저 해 주신 곳이다. 표지도 깔끔하고 예쁘게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다만 현금으로 결제를 하려다 보니 일이 좀 복잡해지고 견적을 수동으로 받아야 하니 성가신 면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에 견적 문의를 했더니 5만 원 정도 더 저렴한 가격이 나왔다. 거리가 아주 멀지 않으니 차로 20분 정도만 가서 가져오기도 괜찮다. 배송비도 아끼고 1월 말이니 12월 말이었던 재작년보다도 더 여유로웠다. 그리고 심지어 카드 결제도 된다고 해서 갑자기 지불방법에 대한 일도 깔끔하게 끝나 버렸다! (생각해 보니 요새 세상에 카드 결제는 당연한 것인데 왜 굳이 현금으로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학교니까 세금계산서나 등록증 등의 서류로 계좌이체로 지불해야 한다고 했던 나의 고지식함을 탓한다.)


사흘을 내내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일은 훨씬 더 깔끔하게 끝나버렸다. 그래도 역시 아이들 도장을 만들어 줄 수 있을 정도의 예산은 나오지 않아서 그냥 케이크 만들기로 대신하기로 했다. 가끔 아이들 수업 재료나 간식을 주문할 때도 동네 가게나 빵집을 이용하면 조금 더 순식간에 휘리릭 가능하긴 했다. 가깝고 저렴하고 편리하고 신속한 동네 상권을 놔두고 굳이 멀리 파주까지 힘들게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들이랑 1월 이야기, 그리고 2월 이야기도 담아보는 건데 하는 뒤늦은 욕심까지 들지만 너무 나를 독촉하지 않기로 했다. 여유 있게. 차근차근 아이들 보낼 준비하기도 바쁜 시기인데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집에 대한 아쉬움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자.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계속 동네 상권에 애정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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