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있는 집은 안다. 절대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장난감 박스 뒤편이 있다는 사실을. 하루 날 잡아서 치워놓아도 어느 사이엔가 조금씩 흘러내린 장난감들로 인해서 상상도 하기 싫은 장난감들의 계곡이 생기게 된다. 두 달 정도 외면하고 살았는데 오늘은 안 되겠다.
박스와 창문 사이에 끼인 너프건 총알, 레고 병사들, 블록들을 꺼내다 보니 여기만 치워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 플라스틱 통을 가져와서 막둥이에게 포켓몬 카드들을 다 담으라고 했더니 펄쩍 뛴다. 나름의 분류를 해 놓았다는 것이다. 중요한 카드와 덜 중요한 카드, 그리고 아예 안 중요한 카드들이라고. 중요한 카드와 덜 중요한 카드를 일단 가로와 세로로 구획을 나누어 담고 안 중요한 카드는 모두 갖다 버리게 했다.
먼지를 닦아내면서 보니 박스 하나가 또 눈에 들어왔는데 딸들이 가지고 놀던 미미 인형들이다. 몇 개는 버려서 4개 정도 남아 있고 인형 옷들도 꽤 많았다. 버리자니 좀 아깝다. (인형 옷들은 생각보다 고가임.) 2살 배기 막내딸을 키우는 동생에게 톡을 보냈다. 혹시 필요해?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둘째가 인형의 집도 베란다에서 꺼내왔다. '인형의 집도 있어.' 동생은 잠깐 망설이는 것 같더니 2~3년 가지고 있다 딸에게 주겠다고 했다. 둘째와 부지런히 인형의 집을 닦았다. 베란다에 있어서 겉 부분에 먼지가 좀 묻어 있었다. 닦으면서 추억도 반추하고 그리고 이참에 인형 옷들도 입혀보았다. 둘이서 이야기하면서 이리저리 해 보는 시도들은 꽤 재미있었다. 다 엉켜버린 머리카락도 나름 스타일리시하게 올려주고 묶어주고 해 주니 나쁘지 않았다. (둘째는 트리트먼트까지 시도해 봤지만 억센 머리카락은 풀어지지 않았다... 하하) 나중에는 학원에서 뒤늦게 돌아온 큰 딸까지 합류해서 정리해 주었다. 그렇게 정리 끝!
인형놀이는 재미있다. 그래서 아마도 어른들도 구체관절인형을 사고 다양한 소품들과 의상들을 사서 꾸며주고 소중히 하는 것일 것이다. 저 인형 박스도 지난겨울 일부 정리하고 딸들이 '그래도 좀 가지고 있자'라고 해서 버리지 않았는데 그렇게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쳐다도 안 보았으니 정리하는 것이 맞다. 아이들이 크면 나이에 맞춰서 장난감들을 정리하게 된다. 재작년 즈음에는 타요와 폴리 같은 작은 장난감들을 많이 보냈다. 큰 옥스퍼드 블록과 중간 사이즈 블록도 많이 정리했고, 곧 몰펀과 카프라도 정리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레고는 일부 남겨놓을 것 같은데 (사실 내가 좋아함) 그렇게 되면 아이들의 장난감 박스도 거의 정리가 되는 셈이다.
15년째 장난감 박스들과 살고 있으니 제발 이 자잘함의 홍수 속에서 헤어나고 싶었는데 막상 보내는 이 맘은 조금 아리송하다. 오늘은.... 마치 딸아이들과의 추억의 한 장을 마무리하는 기분이다. 애지중지하며 가지고 놀던 인형의 집과 인형들을 아쉬움 없이 어린 사촌동생에게 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 이렇게 또 한 시기가 지나간다. 정리해서 시원한 기분과 함께 엄마가 제일 좋다던 어린 딸들의 재잘거림이 귀에서 아른아른거리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그렇게 들었다. 혼자가 아니라 딸아이들과 함께 잘 정리해서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