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 song by 적재
적재 `CLICHÉ`, 그의 세 번째 정규앨범 제목이다.
`클리셰`라는 말의 의미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니 something that people have said or done so much that it has become boring or has no real meaning, 이걸 파파고로 번역해 돌려 보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말하거나 행동해서 지루해지거나 진정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조금만 공들이면 쉽게 정보를 찾아내고 앱이나, 프로그램, 번역기 등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이제는 쳇- GPT를 활용해 기본 틀을 잡고 작업하는 분야도 늘어 가고 있는 추세라 하니 나 역시 이 대세적인 흐름을 잠시 따라본다.
너무 빤하다는, 진부하다는, 예측 가능하다는 말 `클리셰`를 앨범 제목으로 넣은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적재. 나는 그를 아이유 콘서트의 밴드 멤버로, `별 보러 가자`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계기는 오래전 상담하던 여학생이 `적재`를 덕질 중이었고, 그가 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직관하며 받았던 인상을 나에게 전할 때였다. `추운데 너무 오래 서 있었다고 안 춥냐고` 인사를 건네주고 눈을 맞춰 주었다며, 너무도 설레어하던 그 소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뇌리에 남았다.
말과 행동에서 그 사람의 마음자리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사람 적재는 상대방을 참 다정하게 대하는 구나`라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그 시기에 적재에 대해 일부러 더 찾아보았다. 이유는 소녀와의 대화가 한층 더 깊어지기를 소망하면서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들여 함께 해주고 싶었던 마음에서였다.
적재는 박효신, 김동률, 정재형, 거미, 이소라, 윤하 등 다양한 가수들로부터 함께 일하고 싶은 뮤지션으로 지목되어 해당 가수들의 콘서트 밴드 멤버로 꾸준히 활동했었다. 하지만 나는 싱어송라이터인 그의 노래와 가사에 더 관심이 갔다. 일단 어렵지 않은 편안한 어휘와 잔잔히 말을 걸어오듯 담백하게 써 내려간 가사들이 편안함을 주었기 때문이다. 가사에도 다정함이 묻어 나온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이별을 대하는 방식에도 그의 다정함이 더해진다.
누군가를 만나서 특별한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이별해야만 하는 화자에 대해 가사로 써내려 간 그의 애도 방식.
충분히 자신을 위로하고 `그래도 된다`는 다정함이 있었다.
쉽게 하는 이별이 아닌, 시간이 더디 걸려도 그런 상태를 받아주고 `그래도 괜찮다` 말해주는 듯하였다.
생각나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좋은 기억이 나면 나는 대로 기억을 곱씹는,
`내가 그렇다`고 화자의 상태를 알아주고 있었다.
너와 같이 밥을 먹는 거 너와 밤을 같이 걷는 거
네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함께 웃는 거
오늘 하루 뭐 했는지 묻는 거 보고 싶다 말하는 거
당연했던 그날들이 참 그리워
우리 마주 보고 앉아서 우리 눈을 맞추고서
시시 콜한 내 하루 얘기 가만히 들어주는 너
오늘 기분 어땠는지 묻고선 힘들었겠다 안아주면서
토닥여주던 네 손길이 참 그리워
나 그리워하네 널 그리워하네 난 그리워하네 그때의 날 그리워하네
그저 잠시 떠오르는 것뿐야 내일이면 더 쉬워질 거야
그렇게 또 나를 속이며 난 오늘을 살아가
너 없는 난 오늘도 그리워하네 그리워하네
그때의 날 그리워하네 (`그리워` 가사 일부)
https://www.youtube.com/watch?v=W5D3I5FL1vA&list=RDW5D3I5FL1vA&start_radio=1
타이틀 곡인 `그리워 (Monologue)` 의 화자는 세 번째 정규앨범 이름과 같은 제목인 `클리셰`에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인연에 대해 되풀이되는 애도의 마음을 보낸다.
지나간 계절은 보내야 해
다 지나가면, 잊힐 테니까
잠시 불어온 바람일 뿐야
그래 말버릇처럼 꺼내는 듯해
그래야 내 맘 편해질 테니까
(`클리셰` 가사 일부)
적재는 이 앨범의 제목을 왜 `클리셰`라 정했을까? 이별 후 떠난 인연에 대한 미련을, 끝내지 못하는 마음을 진부하고 빤하다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지금 내 상태에 대한 관심과 위로를 쳇-GPT처럼 쉽게 풀어내거나, 검색창에 두드리면 바로 나오는 정보처럼 쉽게 취급하고 싶지 않은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
주변인들은 다소 진부하고 지루하게 보일지라도
스스로에게는 그 과정이 필요하다고 알아주는 다정함 말이다.
코로나 시절인 2019년 JTBC음악 예능 `비긴어게인`을 본방으로 애청했던 관계로, 고정 멤버이자 기타 세션을 맡았던 적재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매주 만날 수 있었다. 한 주를 걸러 방송되는, 그리고 그 당시 전국의 아름다운 야외장소를 찾아가며 투어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음악예능이었다.
가수이기도 하면서 기타 세션의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기에 함께 하는 멤버 중에 가장 고되고 긴장을 되었을 것이다. 묵묵히 그 역할을 해가던 중 최종회를 앞둔 가을날의 평온한 서울식물원 공연에서 자신의 팬의 응원이 건네진 뒤 흐르던 적재의 눈물이 인상 깊었다.
이후 어느 인터뷰에서 출연 당시 계속된 강행군에 손 마디마디가 쑤시고 지쳐간 시기가 있었노라고, 그러했던 순간 자신의 음악을 듣고 눈물 흘린 팬의 진심이 그의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전했다. `자신에 대한 다정함`이 있는 가수의 팬도 역시 다정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인생의 어느 시절,
그때의 경험을 통해 자라난 어떠한 감정이라도 도닥일 수 있는 다정함으로,
그렇게 나의,
당신의 마음이 편해지기를,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가수 적재와 그의 팬들이 그러했듯이 그렇게 말이다.
크리스마스와 한해의 마지막 주간이다.
예전엔 사람들이 몰리는 골목마다 울리던 캐럴은 저작곡 문제로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종교를 떠나
우리 모두가 올 한 해 힘들었고
고생했던 시절을 묵묵히 잘 견뎌내어 주어 고맙다고.
특별하고 근사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어도
나 스스로 올 한 해를 잘 살아내주어 기특하다고.
다정한 위로의 말을 나에게 건네어 주는,
작은 온정의 선물을 셀프로 선사하는,
잠깐의 여유라도
찾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