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미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아름다운 사람 song by 김민기

by 오정연


고 김민기 선생님의 전집 1 (1993년)에 수록된 `아름다운 사람`이란 곡이 있다. 2012년 10월에 방송된 EBS 지식채널 e의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편의 배경음악으로도 나오면서 이렇게 그분이 소개되었다. `아침이슬, 한계령, 학전. 청춘을, 소시민을, 아이들을 위해 노래하고 무대를 꾸며온 가수이자 연출자인 김민기. 그의 노래와 노랫말은 사람들을 위로한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lvIxi5ybTRM

`난생처음 가본 화실, 혼자 데생을 악했던 소년은 그만 주눅이 들었다.

낙담한 소년에게 선생님이 건넨 말

`네가 자꾸 지우는 것은 그리고 싶은 무언가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야`

미대 입학 후 물감 값을 벌기 위해 기타를 손에 잡고 시작한 노래 `그저 일기를 쓰듯 내 주변 이야기를 노래했다. 스물한 살 청년이 세상에 내뱉은 조용한 목소리` - 지식채널 e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중에서


그가 2024년 비 내리는 어느 여름날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왜 선한 영향력을 선물해 주시던 이 시대의 어른을 그렇게 일찍 데려갔나?` 여름비가 쏟아지는 하늘에게 묻고 싶었다.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과 수줍은 많은 청년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던 분, 하지만 예술인들에게는 방황하고 불안해하던 시절 그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주었던 `학전`을 이끌었고, 그가 만든 노래는 낮은 곳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또는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보통의 누군가에게 잔잔한 힘과 위로가 되었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의 *하나이 울고 서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으으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의 하나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으으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의 하나이 우뚝 서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으으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김민기 – 아름다운 사람 가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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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 가사를 하나씩 의미 새겨듣다 보면 가락에서 오는 안정감이 배가 되어서 인지 지금 내가 이곳에서 느끼는 마음 하나하나가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위로받는 것 같아진다.

어두운 비와 세찬 바람 속 이미지와 닮아 있는 저마다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들어내는 우리 *하나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에둘러 알아주듯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2024년 4월 21일부터 총 3부작에 걸쳐 방영된 'SBS 스페셜-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 나오듯 자신을 뒷 것이라고 낮춰 부르며 숨은 보석 같은 예술인들이 양지에서든 음지에서든 신명 나게 본인의 기량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큰 그릇의 어른`.

그가 연출한 지하철 1호선 창작 의도 `어쩌다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남한태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에서 읽히는 것처럼 그는 소외된 그리고 가려진 어느 곳에 있는 `하나이`들에게도 관심을 두었다.


카피라이터 정철님은 종이컵 하나도 관찰하고 관심을 두고 확장시켜 `종이컵에게`라는 글을 남겼다.

`너는 물이나 커피를 담는 싸구려 용기였다.

환경에 부담만 주는 허접한 용기였다.

그러나 너는 다시 태어났다. 촛불을 담는 용기로 다시 태어났다.

아빠 손에 들린 너는 저항이었고, 엄마 손에 들린 너는 기도였으며, 아이 손에 들린 너는 희망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네 이름 앞에 '싸구려'나 '허접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네 이름은 용기다`

- 정철의 `종이컵에게


김민기도 다들 내 앞길 가기도 바쁜 현실 속에서 자신만큼은 주변을 돌아보고 관심을 두고 관찰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만들고 예술 활동을 기획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 하나에도 위축되던 한 청년의 용기였던 것이다.


2018년 9월 14일 JTBC 뉴스룸에서 `혹시 이 작품(지하철 1호선)을 관통하는 어떤 주제를 잘 나타나는 대사라든가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소개해 주실 수 있는 게 있는지요?`라는 앵커의 질문에

“중간에 서울역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곰보할매가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극 중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어떤 정점으로 돼 있는 할매인데 그 할매가 부르는 노래 가사가 "그래도 산다는 게 참 좋구나 아가야"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속에서 버텨내는 어떤 그런 긍정적이라고 그럴까요. 그런 걸 대표하는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이미 반짝이는 사람들보다 힘겹고 어려운 이들에게 더 마음을 쓴 분의 생애 기록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그분의 인류애나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 `존중`, 과 `배려`가 돋보였다. 우리 주위에 누군가가 이렇듯 자신을 *배경으로 두고 나를 `아름다운 사람`이라 지칭하며 *전경으로 빛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준다면 어떤 역경에도 한 걸음 뗄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와이 군도 북서쪽에 자리 잡은 인구 3만 명의 섬 카우아이는 `쥬라기공원`, `킹콩`등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 쓰일 만큼 환상적인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1950년경 이 섬의 원주민들은 그곳이 벗어나고 싶은 지옥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대대로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고, 섬 주민 대다수가 알코올중독이나 범죄력이 있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한다. 학교 정규교육 마저 없어 청소년 비행도 심각한 상태였고 이 섬에서 출생했다는 자체가 불행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곳 카우아이섬에 1954년 미국의 소아과 의사,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등이 참여한, 훗날 사회과학 역사에서 독보적인 연구 중 하나였던 `카우아이 섬 종단연구 the Kauai Longitudinal Study`가 시작되었다.

연구의 목적은 한 아이가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자라면서 겪는 다양한 내부와 외부의 자극, 즉 건강 문제, 사건 사고, 가정이나 사회경제적 환경 등으로 인해 성인이 되기까지 어떤 영향을 얼마만큼 받게 되는 가에 대한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프로젝트였다. 이 연구가 유의미했던 것은 연구대상이었던 아이들이 30살이 넘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 참여하였으며, 무려 90%에 가까운 698명이 연구완료시기까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연구 자료를 주도적으로 분석하고 담당했던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대상자 중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던 201명을 특히 주목했다. 이들은 부모들이 빈곤, 이혼이나 별거, 알코올중독 또는 정신질환문제 모두 가졌으나 `고위험군`에 해당되었던 72명의 아이들은 자라온 환경이나 주 양육자의 위험성에도 큰 문제없이 건강하고 밝은 청년으로 자랐다 보고했다.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힘의 속성을 `회복탄력성`이라 지칭한 에미 워너는 `무엇이 역경이 있음에도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성장시켜 주느냐?`는 질문에 대한 추가 연구를 진행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 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 아이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주고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단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회복탄력성` 김주환 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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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고 단단한 회복탄력성이 되어주고서 자신은 먼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영향력이 이보다 클 수 있을까?


2025년이 가고 2026년 새해가 오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고 김민기의 숭고한 마음을 이어받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온기를,

사랑을,

관심을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싶다.


그리고 당신이 이미 성인이 되었다면 누군가로부터 응원과 지지와 사랑을 받고 싶었던 방식으로 스스로를 소중히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은 이미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하나이: 가사에 등장하는 '하나이'라는 대목은 흔히 '한 아이'로 오해되곤 하는데 작가 자신은 '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쓴 표현이다. (책 『김민기』에서)

*전경-배경[ figure-ground ]: 요약 경계선을 접하는 두 영역이 있는 한 장면에서 지각의 대상이 되는 부분을 전경이라고 하고, 그 밖의 나머지를 배경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경-배경 [figure-ground]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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