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고 오래 볼` 관계에 대하여

`인연` song by 이선희

by 오정연


어느 이른 아침, 일정의 일부가 취소되어 집에서 내려온 원두커피를 한 모금씩 음미하며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함께 일하는 분들을 다 만나지 못한 상태였는데, 연구원 선생님 한 분이 `계약 기간이 끝나 오늘까지 근무해요` 라며 예쁘게 포장한 쿠키를 작별 인사와 함께 전해주셨다.

한 번도 안면을 트지 못한 분이라 놀랍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이 컸다.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어 그제야 여쭤보고 기억해 두었다. 나중에 어디서든 만나면 잘 챙겨 드려야겠다는 마음이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에서 이런 경우가 드물고 특별해서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선희 곡 `인연`이라는 노래엔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라는 가사가 있다.

https://youtu.be/xAkomfYKYHU?si=J9ciL_DdJXiIa-7R

[DJ티비씨] 수현(Akmu Suhyun) - 인연 ♬ #비긴어게인2 #DJ티비씨

짧은 만남에도 빗장을 열어 자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비록 오래 함께 하지 않더라도 기억이 소중해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떠올리다 어느덧 내 기억은 덜 자란 중학 시절의 언저리를 향했다. 버스로 통학했던 나는 착각으로 인해 귀가 방향과 전혀 다른 차에 올랐다. 아차! 하고 내린 후 하나 남은 통학토큰이 사라졌다는 절망감은 비상금 마저 그날따라 소지하지 않았다는 자각이 들 때 최고조에 달했다. 한참을 덜 덜 떨면서 고민하다 옆에 서 계신 아주머니께 모기 만한 목소리로 `저 집에 가는 버스 잘못 타서 토큰이 없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을 띄웠고, 나를 안심시키며 지폐 한 장을 흔쾌히 내어 주셨던 이름 모를 그분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장면은 20대 중반인 내가 있다. 배낭여행 중에 기차를 놓쳐고, 당황해서 다음 편을 타게 된 바람에 너무 늦은 시간 파리 북부역에 도착했다. 한밤의 우범지역 같은 어수선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곳에 덩그러니 서서, 주시하는 무언의 눈빛들, 다가오는 발걸음 속에 두려움에 휩싸인 순간, 히어로처럼 나타나 하룻밤을 묵어 가도록 친절을 베풀었던 푸른 눈의 그녀. 자신의 자취방에 이방인을 들이고 안전한 밤과 든든한 아침까지 챙겨준 그녀의 집엔 한국에서 사 왔다는 부채와 하회탈이 걸려 있었다. 서툰 대화였지만 서울에서의 좋은 기억이 있다고, 자신 역시 고모의 집을 잠깐 빌려 쓰고 있다했다. 귀국하자마자 그녀에게 감사의 편지와 작은 선물을 소포로 보냈으나 아쉽게도 인연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더불어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나도 떠올랐다. 친정엄마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병원 근처 할머니 집에서 엄마 찾겠다고 집을 나섰던 무모한 6살 꼬마였다. 거리를 헤매던 기억은 사라졌지만 멋진 제복을 입고 있던 경찰 아저씨가 가볍게 한 손으로 나를 앉아 들고 엄마가 계신 입원실까지 데려다주셨던 그 순간만큼은 또렷이 남아 있다. 찰나의 기억들이라 분명 스쳐갈 인연이지만 내 안에 살아있는 귀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이선희의 `인연` 가사처럼 그렇게 내 생애에 선물 같았던 짧은 인연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큰 사건 사고 없이 오늘을 살아갈 수 있었구나 싶어 감사한 마음이다.

살다 보면 나를 이용하나 싶어지는 누군가를 만나기도, 심심풀이 땅콩처럼 필요할 때만 찾은 이들도 만난다. 때론 의미 있게 여겼던 상대가 우리의 관계를 가벼이 여겼다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한때는 자주 만났던 이들이나 친하다 말했던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거리를 두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들꽃의 시구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며 경험하다 보면 세상에는 따스한 선물 같은 인연이 찰나로 오기도, 오래 남을 단단함으로 오기도 한다.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노래를 귀로 즐기며 현재의 시절인연들을 잔잔하게 떠올려 본다.

함께하며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같이해서 한결 가벼워지는,

곁에 있으면 편안한,

그런 관계들이 꾸준히 지속되기를 바라며,

주변의 좋은 인연들과의 단단함을 위해

내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시절인연 #만남과 혜어짐 #쿠키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감사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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