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song by 최유리
최유리의 곡인 `숲`을 처음 만난 것은 2023년 6월 16일 방송된 `KBS2 더 시즌즈 최정훈의 밤의 공원` 이였다. 곱게 손을 무릎에 올려 천장을 향해 편안하게 놓고, 철학자처럼 또는 긴장을 감추려는 수줍은 소녀처럼, 담담하게 읊조리듯 부르던 영상의 그녀가 참 예뻤다.
크게 가사를 곱씹어 듣지 않았기에 이미지로만 남았던 그 방송 이후, 최유리라는 가수에게 관심을 두면서 동시에 이 노래의 가사 또한 따로 찾아보게 되었다. 그저 가볍게 듣기엔 시처럼 은유적인 느낌이 강해서 인지 그냥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 싶어서였다.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파 난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나
나의 눈물 모아 바다로만
흘려보내 나를 다 감추면
기억할게 내가 뭍에 나와 있어
그때 난 숲이려나`
숲이 되고 싶었던 키 작은 나무가 자신의 옆을 둘러싼 큰 나무들로 인해 절망하며 눈물을 쏟아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살피고 난 후에는 또다시 키 큰 나무들과 어우러져 살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이야기 같았다. 되어지고 싶은 자기를 단호함이 아닌 부드러움으로 들어내는 듯한 이 곡을 2022년 8월 24일 발매된 최유리의 싱글 6집 `유영` 의 소개과 1번 트랙 숲의 곡 설명으로 참고하니 좀 더 이해되었다.
`사람 혹은 삶에 대한 집착, 좋게 이야기하면 관심과 사랑. 나무는 숲, 땀과 눈물은 바다가 되고 싶어 한다. 그게 우리의 삶이라면 나는 바다이자 숲이지 않을까. 서로의 바다와 숲이 되어 삶을 유영하는 아름다운 상상을 해보길 바라며.` -최유리 싱글 6집 `유영 소개글
01. 숲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고작 키 작은 나무에 불과했다. 너무나 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 꼭 큰 나무 같아서 나 또한 그렇게 생긴 나무라 착각했다. 키가 작은 내가 흘린 눈물은 금방 내 발에 닿아 꼭 바다처럼 느껴졌다. 나도 키 큰 나무가 되어 남들과 함께 숲이 되고 싶다. 그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고 싶다.
https://youtu.be/cu9VVH9cSWc?si=eAaAFTsCQm6vkMif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고통과 힘겨움 속에 있는 분들 중 다수가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만 이 모양이에요`.
`이 고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좀 더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시도해 본다 해도 결국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아요`
등의 절망 혹은 무망함 속을 유영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였다.
물에 가라앉는 듯 한 무력감의 끝에서, 살아오면서 자주 꺼내 쓰던 생존전략대로, 혹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던 목소리가 내면화되어, 아니면 나도 모르던 무의식적의 패턴대로, `숲` 노래의 나무처럼 눈물만 흘리고 있다면 심연의 바다속으로 결국은 잠식되리라.
다행히 최유리가 노래한 `숲`의 나무는 부러움과 질투를 넘어선 열등감, 자괴감, 속상함, 한심함, 막막함, 불안함의 어느 하나이거나 두세 가지였을 감정들을 눈물과 함께 실체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내었다. 그리고 충분히 마음의 흐름을 느끼고 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 감정들을 흘려보낸다. 그런 후에 다시 뭍으로 가만히 나와 숲으로 되돌아가는 *회복탄력성을 보여준다.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감정에 휩싸일 때, 빨리 회복되길 바라는 것은 과도하게 이상적인 기준으로 나를 몰아세우고 있거나 내 안의 조급함이 일어서 일 것이다. 내 경험이 불편하고 힘들었을 때 `아닌 척`, `괜찮은 척` 내 감정을 속이고 눈 감으려 할수록 내 안은 메마르고 쩍 쩍 갈라져 버린다. 오히려 `나무가 숲이 되고 싶었지만 키가 너무 작아 슬펐구나`라고 그 과정 안에서 스물스물 올라온 내 감정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충분히 위로해 주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감정의 위로가 충분해지면 이제 다시 떠오를 차례이다. 내 감정이 말하는 얘기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무엇을 알았을까`,
`나에게 그 순간 무엇이 필요했을까?`,
` 앞으로 그 문제가 어떻게 풀리길 바랄까?`
`나는 어떤 상황이길 원했을까?`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내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주체가 된 질문들을 통해 소망했던 것, 그리고 앞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마음 안에서 정리해 가 보자. 그런 후에 스스로 움직여 볼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소망과 원하는 바대로 선택하고 행동해 보는 것이다.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Serenity Prayer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의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처럼 지금 당장 키 큰 나무가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가지고, 그럼에도 키 큰 나무가 되어 숲의 한 일원이 되고 싶은 소망대로 해볼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숲이 되고 싶었던 키 작은 나무가 옆에 선 키 큰 나무처럼 당당한 숲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이제 눈물로 연민하기보다 부지런히 햇빛을 보고 땅의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무럭무럭 자라날 결심을 하는 것처럼.
힘든 날이 있으면 우리의 삶의 또 다른 페이지에는 달달한 날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현재의 고통은 반드시 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의 무게가 힘겹다면 잠깐이라도 `아름다운 유영`의 순간을 상상해 보자. 그 누구보다 애써 지켜내고 있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넘어서도 일어서는 내 삶의 오뚝이를 믿어보자. 우리의 회복탄력성은 쓰면 쓸수록 더 정교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PS: 회복탄력성은 영단어 ‘resilience(리질리언스)’에서 가져온 개념인데, ‘되돌아온다’, ‘다시 튀어 오른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resilir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무공을 바닥에 던지면 다시 튀어 오르는 것처럼, 회복탄력성은 역경에 주저앉지 않고 바닥을 딛고 다시 솟아오르는 특성이다. 회복탄력성은 2011년 3월 출간된 동명의 책에서 김주환 교수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한 내용으로 ‘역경을 경험했거나 경험하면서도 이전의 적응 수준으로 돌아오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능력,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난 뒤에 오히려 더 강해지고 성장하는 능력인 회복탄력성이 환경, 문화, 사회, 경제, 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점차 복잡해져 가는 이 시대에 특히 나 더 절실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