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s Tu(에레스 뚜) song by Mocedades(모세다데스)
한가한 주말의 오후, 딸아이가 거실에서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며 흥얼거리던 곡에 귀가 쫑긋해졌다. 1973년에 나온 낯선 외국노래를 어떻게 알고 부르지 싶어서였다.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단다. 참고로 이 곡의 번안곡은 학교 교과서인 비상교육 <음악>, 음악과 생활 <음악 연주>에 각각 실려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영화 `하모니`에서도, 그리고 학교에서도 합창곡으로 꾸준히 불려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과거를 소환시킨 이 노래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노래는 금세 잊어져 가지만 `Eres Tu`처럼 세대로 이어져 구전처럼 반복해서 듣고 부르는 노래도 참 많구나 하고 말이다.
이렇게 길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노래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 걸까?
1973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준우승 곡으로 이듬해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한 <Eres Tu>.
https://youtu.be/hHZhpRYzWpY?si=BLtMaZ_U_RwrnJAc
필자는 이 노래의 비밀을 국어책에서 연결 지어 보았다. 우리가 읽는 책, 드라마, 영화는 다수가 유행의 규칙인 듯한 기승전결을 만날 수 있다. 책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에서는 기승전결[ 起承轉結 ]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요약 : 글을 짜임새 있게 꾸미는 형식.
본래는 한시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기(起)는 시를 시작하는 부분, 승(承)은 그것을 이어받아 전개하는 부분, 전(轉)은 시의 의미를 전환하는 부분, 결(結)은 시를 끝맺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한시를 잘 짓지 않죠. 그래서 논설문이나 평론처럼 논리적인 구성을 필요로 하는 문장 형식에서 갖추는 짜임새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글을 시작하고 그 내용을 이어서 전개시키고 결론을 내리는 흐름을 말합니다.
<Eres Tu> 노래를 가사의미 없이 듣더라도 한 곡 안에서 기승전결이 모두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필자에겐 호기심 많았던 시절을 소환했고, 딸아이에게는 학교 음악시간의 합창으로 기억되었고, 또 어떤 이는 이 노래를 오랜만에 듣고 이유 없는 눈물이 나왔단다. 노래를 듣는 그 순간에 듣는 이의 컨디션, 삶의 궤적에서 오는 감정들,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경험들을 담고 흡수한 노래는, 어쩌면 말이 아닌 노래 가락으로 우리 곁에서 보이지 않은 위안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하지만 이 노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원곡의 가사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노라면 `나와 당신`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여러 차례 되뇌어 주고 있다.
당신은 나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
어느 여름날 아침처럼
당신은 나에게 해오름 같은 미소를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나의 모든 희망
내 두 손에 고인 신선한 빗물 같은 사람
강한 빛과 같은 당신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 바로 당신이랍니다
당신은 마음의 샘에서 솟아나는 샘물과도 같은 사람
바로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은 내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꽃
당신은 내 빵에 쓰인 밀가루와 같은 사람
당신은 한 편의 시와 같은 사람
밤하늘에 들리는 기타 소리와 같은 사람
당신은 내 맘의 지평선과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스페인 노래 Eres Tu 원곡 번역, 나무위키 참조)
가사 내용처럼 `믿음을 주는`, `미소를 주는`, `샘물 같은`, `한 편의 시 같은`, `빛과 같은` 사람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꾸준히 말해주고, `그런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응원하고, 한결같이 신뢰한다면, 어느 날의 내가 위축되거나 초라함이 느끼지는 순간, 그럼에도 나를 믿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우울과 무기력감으로 고통스러워했던 엄마들의 마음 돌봄 집단에서 나왔던 내용을 일부 나누고 싶다. 개인보호를 위해 일부는 각색한 내용임을 감안해 주시길 바란다.
`아들에게 잘해주다가도 이 녀석이 조금만 말투가 퉁명스럽거나 `엄마가 다 맞는 건 아니야. 내 친구들도 다 그래` 아이의 강단 있는 주장에도, 가끔 자신의 생각과 뜻과는 달리한다는 느낌이 들 때에도, `내가 얼마나 지를 생각하면서 노력하는데` 울컥해지고 나만 손해 보고 희생하는 것 같다는 A. 옆자리에 있던 B도 말한다. 어린 딸에게 별일 아닌 상황에도 쉽게 짜증 내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자괴감이 몰려오고 `왜 내가 이럴까?`곱앂다 보면 자신에게 모질었던 그녀의 친정엄마를 한번 더 증오하고 원망하게 되었단다.
이 대화 속에서 나는 엄마들의 아직은 덜 아문 어린 기억의 상처가 충분히 위로받아져야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을 돌보는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고, 자신을 깊이 이해하려 노력 중이고, 과거의 부모는 원하던 사랑을 주지 않았으나 현재의 자신은 내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엄마이고 싶은 소망이 있음을 알았다.
그날의 대화는 자신이 그렇게 받고 싶었던 사랑에 대한 결핍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대물림하지 않고 좀 더 자녀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은 성장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은 미완의 존재이다. 내가 상처받은 순간도 있지만 의도치 않게 다른 이에게 마음의 흉터를 남긴 일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우리의 엄마나 아빠도 완전한 부모로 태어나지 않았기에 보호자의 역할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내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들어본 적이 있나? 친정엄마의 꼬마였고 소녀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엄마의 현재가 더 많이 이해되었다.
본인이 경험한 만큼의 세상을 보는 분들의 자녀로 태어나, 익숙한 테두리에서 자라나 어른이 되었다.
만약 내 부모의 양육이 투박했다면 그 윗세대의 어르신들의 자녀 돌봄은 더 처절하고 황량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와 그녀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세대보다 조금이라도 성숙하고 발전된 양육방향을 찾아가는 모습이 반가웠다.
이제 다 자라 어른이 된 나에게
나이 들어 연로해진 내 부모에게
이미 지난 과거를 소환해 서로를 원망해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때 받고 싶었던 방식대로
나의 가까운 사람들과
믿음을 주는`, `미소를 주는`, `샘물 같은`,
`한 편의 시 같은`, `빛과 같은`
주고받음이 필요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내 인생의 기승전결의 과정을 채우고 마무리할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