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알람 소리가 옆집에서도 들릴만큼 귀를 찢듯 울려 퍼졌다. 매일 듣지만, 매번 짜증이 나는 소리다. 준호는 손을 더듬어 서둘러 스마트폰을 끄고 자세를 고쳐 누워 눅눅한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비좁은 원룸의 천장은 평균보다 낮았다. 형광등 옆쪽으로 벽지 한쪽이 알 수 없는 얼룩으로 번져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왜 몰랐지?' 다시 한번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창문을 열자마자 싸늘한 공기와 함께 옆 건물의 회색 벽이 불쑥 다가왔다. 햇빛은 단 한 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아직도 개봉하지 않은 택배 상자들과 각종 고지서, 그리고 어제 온라인 뱅킹에서 출력해 둔 월세 영수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55만 원. 매달 같은 숫자였다.
준호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번 달도 스치듯 줄줄이 빠져나갔구나….”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은 허공으로 흩날려버린 것 같았다. 만약 그게 대출 상환금이었다면, 적어도 내 집 한 칸을 향한 걸음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단지 ‘남의 집을 잠시 빌려 쓰는 대가’ 일뿐이었다.
준호는 대충 아침을 때우고 옷을 갈아입었다. 옷장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철제 행거에는 회사 셔츠 몇 벌이 구겨진 채 걸려 있었다. 거울을 보니 눈 밑은 퀭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열심히 살면, 서른이 넘으면 안정될 거라던 말, 다 거짓말이었구나.’
비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지하철역에 들어서자, 개찰구 앞에 길게 늘어선 줄, 계단을 따라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행렬, 그리고 이미 만원인 열차 그리고 스멀스멀 알 수 없는 냄새가 그를 맞이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준호는 겨우 몸을 밀어 넣었다. 사람들 사이에 구겨진 채로 꽉 껴서 서자마자, 낯선 체취와 눌린 어깨에 한숨만 나왔다. 도대체 무엇을 담고 다니는지 알 수 없는 철근 같은 배낭을 멘 남자가 지나가며 베낭으로 갈비뼈를 세게 후려쳤다. 아마도 일부러 저러고 다니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이 밴 겨울 코트 냄새,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 신문을 펼치려다 다른 사람 어깨에 걸린 아저씨의 짜증 섞인 한숨, 작은 키 여자의 머리 위에 얹힌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지저분한 가방... 이 모든 것이 한 공간에 있었다.
출근길은 늘 그렇듯 고통의 연속이었다. 회사까지는 왕복 세 시간이 걸렸다. 직장은 강남인데, 준호가 사는 원룸은 경기도와 맞닿은 서울 끝자락이었다. 교통비와 시간을 줄이려면 직장 근처로 가야 하지만, 거기서 방 하나 월세를 얻는 건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마저도 월세가 점점 오르는 현실에 매일 한숨 섞인 고민을 곱씹는다.
그 북새통에서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14억 원 돌파.”
준호는 피식 웃었다. '14억이라니. 내 월급으로는, 최소비용만 빼고 모아도 100년쯤 걸리겠네...'
그 순간, 옆 칸에서 누군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민수였다. 대학 동기이자, 몇 달 전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했다며 자랑하던 친구다. 그는 늘 현실적인 태도를 앞세우는 편이었다.
민수가 어느새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너도 봤지? 집값이 또 올랐대.”
준호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응. 근데 넌 요즘 속 편하겠다. 공공임대 들어갔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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