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사한 봄의 끝자락 5월, 서울 도심의 공기는 미세먼지로 가득했다. 아침부터 안개처럼 희뿌연 하늘아래 따가운 햇살이 유리창으로 맹렬히 파고 들어왔다. 하지만, 하린의 방 안은 여전히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스튜디오 한쪽 벽에 작업용 조명 하나만 달랑 켜져 있었고, 미완성 도면에 붉은 수정 표시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공모 마감이 다음 주라며? 에휴, 이번에도 밤샘이 길어지겠네.”
태현이 부스스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커피를 내려주며 그녀 옆에 다정히 앉았다.
“응. 이번엔 청년 공유주거형 모델로 정했어. 근데, 이게 뭐랄까… 계속 같은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야.”
“어떤 벽?”
“제도와 까다로운 조건이라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 그리고 사람들 머릿속의 결코 부셔버릴 수 없는 단단한 벽.”
하린은 도면을 가리켰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겹치지 않게 사는 구조를 만들면 그게 공유라고 생각하잖아. 근데 진짜 공유는 서로의 공간을 이해하고,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시점부터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
태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도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천천히 물었다.
“근데, 지금 그리는 집은 누구를 위한 거야?”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그 질문은 늘 자신에게 묻고 있던 말이기도 했다.
“글쎄…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 내 친구들. 어쩌면 매달 월세 내면서도 불안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
“그럼 결국, 너 자신이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자신일지도 몰라.”
그 순간, 그녀의 폰이 울렸다. 화면엔 ‘엄마’라는 이름이 떴다.
“오늘 저녁, 시간 되면 좀 들러. 아빠가 이야기 좀 하재.”
그 말투가 평소와 달리 단조로웠다.
“무슨 일일까…” 하린이 중얼거렸다.
태현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결혼 이야기?”
“아마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세상은 계속 재촉하네.”
저녁에 겨우 짬을 내어 마포의 오래된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대로변 뒷골목에 위치한 희미한 간판의 불빛이 꽤나 오래된 느낌의 식당이었다. 입구의 유리문은 빗물 자국인지 덜 닦인 자국인지 알 수 없는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불투명한 유리가 되어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고깃집 특유의 탄연기 냄새가 났다.
부모님은 미리 도착하셔서 주문을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테이블 위에는 막 끓기 시작하는 버섯전골과 노릇한 모둠전, 그리고 막 담은 겉절이가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다.
하린과 태현은 부모님 맞은편에 조심스레 않아 분위기를 살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