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예비사회혁신가란 이름으로 '제3회 사회성과인센티브 어워드'에 참여했다. SK가 추진하는 본 행사는 사회적 기업이 행하는 '착한 일'의 사회적 성과를 측정, 보상하는 자리이자 사회혁신을 꿈꾸는 청년이 현직 사회혁신가를 만나 멘토링을 통해 꿈을 키우는 기회의 장이다. 이를 위해 전국 각지의 130개 기업과 그들을 지원하는 또 다른 이들이 현장에 모였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 또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후 나는 사회혁신가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더욱 깊이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느 강연 때 추천을 받았던 책 《빅프라핏》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수익성과 사회적 가치가 함께 창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공헌과 경영전략의 연계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면서도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경영모델을 세우라는 마이클 포터 교수의 'CSV(공유가치창출; Creating Shared Value)'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두 저자 신현암 박사와 이방실 기자는 이윤창출과 지속경영을 기본으로 삼되 이윤창출의 궁극적 목적을 사회문제 해결에 두는 기업, 즉 CSV를 근간으로 '목적 있는 성과'를 추구하는 기업을 '빅프라핏(Big Profit)' 기업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포춘>,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기업 순위 책정 기준이 돈에서 가치로 점차 옮겨가는 현상에 근거해 빅프라핏 기업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덧붙인다.
책에 담긴 빅프라핏 기업의 사례는 약 40여 가지다. 나는 나름대로 설정한 나만의 기준에 따라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4가지를 골라 소개하고자 한다. 분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 2) 기업이 자신의 제품 및 서비스를 응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 3) 기업이 가지는 색깔과 부합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 4) 4차산업혁명 기술을 통한 제품 및 서비스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다.
첫 번째,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 존재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사례다.
위생적이지 못한 물이 일반화된 인도에서 정수기는 생필품이다. 그런데 인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소득층에게 정수기는 터무니없이 비싼 사치품이다. 물 부족 문제와 국민의 건강을 걱정한 인도의 타타 그룹(Tata Group)은 저소득층도 감당할 수 있는 1000루피(약 2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정수기 스와치(Swach; 힌두어로 깨끗하다는 뜻)를 출시했다. 이 야심작은 9.5L의 큰 용량과 5인 가족이 3L의 물을 200일 동안이나 마실 수 있는 긴 필터 수명을 자랑한다.
필터의 원리는 단순하다. 쌀겨로 불순물을 거르고 은 나노 입자를 활용해 박테리아의 번식을 막는 것. 필터 성능이 수명을 다했을 때 자동으로 급수가 중지되는 기능은 덤이다. 전력이 없어도 작동하며 아무 물이나 부어도 된다. 기존 상식에서 벗어난 R&D를 통해 원가절감에 성공, '검약적 혁신'을 이룬 타타는 이 정수기로 2010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아시아 혁신기업 최우수상을 받았다.
다음은 기업이 자신의 제품 및 서비스를 응용하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사례다.
IBM은 스스로를 '지구가 스마트해지도록 돕는 회사'라 부른다. '스마터 플래닛(Smarter Planet)' 전략을 기반으로 교통, 보건, 에너지, 유통 등 다양한 영역의 사회문제를 IT와 지능화된 컴퓨터 기술을 통해 '더 똑똑한' 시스템으로 혁신하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는 '스마트 시티 챌린지(Smarter Cities Challenge)'라는 사회공헌 사업을 열어 전 세계 도시 중 몇 곳을 선정해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2013년에는 우리나라 제주시가 선정되어 '지능형 ICT 도시로 바꿉니다'란 주제로 약 40만 달러 가치의 무료 컨설팅을 받았다.
이러한 나눔과 베풂의 중심에는 IBM 임직원들로 구성된 기업봉사단(Corporate Service Corp)이 있다. 제작년 추가 결성된 건강봉사단(Health Corps)은 의료 분야에까지 봉사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이로써 IBM은 '현지 지역사회 문제 해결', '조직원 리더십 함양', '비즈니스 발굴'이라는 세 가지 성장 요인을 모두 손에 넣은 셈이다.
세 번째는 기업의 색깔에 걸맞은 새로운 전략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사례다.
최근 기존 상품을 수리, 재단장, 재활용해 버려지는 자원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지속적 사용을 가능케 하는 구조의 '순환경제'가 떠오르고 있다. 이는 '폐쇄 루프(Closed loop)'라는 이름으로 패스트패션 산업 기업의 부정적 인식 탈피를 위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자 사회공헌 모델로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패스트패션업계의 선두주자 H&M은 2013년부터 헌 옷 수거 프로그램을 전 세계 매장에서 진행한다. 헌 옷이 꼭 H&M 제품일 필요는 없으며, 참여하는 소비자는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사용 가능한 5000원 할인 바우처를 받는다. 이렇게 수거된 옷은 상태에 따라 '재착용, 재사용, 재활용, 에너지원(패션의 폐쇄순환 구조; Closed loop)'의 용도로 활용된다.
해당 캠페인과 더불어 H&M은 산하 재단을 통해 매년 '글로벌 체인지 어워드(Global Change Award)'를 개최하여 패션의 폐쇄순환 구조를 혁신할 아이디어에 수상하고 있다. 올해는 미국 'Crop-A-Porter(크라파포르테)' 팀의 '작물 폐기물로 만든 바이오 섬유(Agraloop)'가 1등을 차지해 총 30만 유로의 상금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4차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제품 및 서비스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사례다. (저자가 4차산업혁명에 따라 진화하는 사회공헌 모델을 4부에서 따로 다루는 만큼, 나 또한 분류해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만드로'는 '돈이 없어서 전자의수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를 기본원칙으로 하는 국내 의수, 의족 제작 기업이다. 대표 이상호 씨는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일하며 처음 접한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저비용의 맞춤형 전자의수를 개발했다. 독일제나 영국제 전자의수는 품질면에선 흠잡을 데가 없지만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팔 한쪽이 4000만 원에 달하고 내구연한(사용기한)은 5년 정도다. 반면, 만드로의 3D 프린팅은 가격과 맞춤화에서 차별적 강점을 지닌다. 150만 원 내외로 비교적 저렴하고 고객 저마다의 전자의수 사이즈를 체형에 맞추어 제작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코이카(KOICA) 해외지원사업에 선정된 만드로는 올해까지 시리아, 요르단 등 중동 지역 난민에게 의수 500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오늘날 사회문제에서 사업 기회를 찾아내 '사회공헌, 기업가치, 이익증대'라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 기업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기업은 세상을 바꾸는 좋은 도구가 된다. 세상을 바꿀 기업의 선한 영향력은 공유가치를 위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이의 온전한 구축은 기업 최종 결정론자인 경영자와 그에 의한 모든 가치사슬(Value chain) 구성원, 즉 우리에게 달렸다.
끝없는 경쟁과 승부 속에서 1등부터 꼴찌까지 각자의 번호표를 달고 달리는 우리. 그 치열한 경주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홀로 가면 빨리 갈 순 있어도 멀리 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더 먼 곳까지 닿기 위해 사람과, 사회와 발맞춰 길을 닦아가는 것.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행의 첫걸음을 함께 내딛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