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맥도날드였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 맥도날드에서 일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맥도날드부터 찾는 나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이 많았다. 거리는 많이 북적이지 않았는데, 매장 안은 오히려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주문하는 것도 살짝 두렵긴 했지만 뭐라고 이야기할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줄을 섰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동양인 여자였는데 아마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였다. 명찰을 언뜻 보니 이름이 Kim으로 되어 있어 한국 사람인 것 같았지만 확신은 없었다.
"Um... Can I have one double cheese burger, please?"(더블치즈 버거 하나 주세요.)
마음속으로 연습한 문장 그대로 말했다.
"더블 치즈 버거 하나 드려요? 더 필요하신 거 없으세요?"
한국말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한국말을 들으니 매우 신기하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아 예예."
한국말이긴 했지만 상냥한 말투는 아니었고(맥도날드가 원래 좀 그렇다), 바쁜 매장이라 그런지 아주 귀찮은 듯한 말투로 대꾸를 한 그녀는 곧장 돌아서서 햄버거를 챙겨왔고, 나에게서 돈을 받아 계산을 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가 하는 일을 그저 응시할 따름이었다. 내가 먹고 갈지 가져갈지 묻지도 않은 채 그녀는 햄버거 하나를 포장해 잔돈과 함께 나에게 던져주듯 내밀었고 바쁘다는 듯이 "Next Please"를 외쳤다. 조금 당황한 나였지만 조용히 햄버거를 들고 매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행동은 홍콩 영화 '첨밀밀'을 연상하게 했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 반갑지 않은가?'
매장을 나온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는데 반가워하지는 못할망정 미소 한번 주지 않은 모습에 속이 상했다. 한국 맥도날드에서 일한 나로서는 그녀의 태도가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런던이다. 그녀를 이해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하루에도 수십 또는 수백 번씩 한국인을 마주칠 수 있는 그곳에서 그녀의 행동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한국 사람을 보기 드문 다른 곳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런던이나 뉴욕과 같은 International City에서 같은 국적의 사람이라 해서 반가워하거나 호의를 베풀 일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마 우리 주위에 사는 어마어마한 수의 중국인들이 서로 마주칠 때 반가워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이 때문에 외국 생활은 외로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의도치 않게 현지 언어를 빠르게 익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햄버거를 들고나온 나는 혼자 벤치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다시 여유를 찾았다. 도착했을 때보다는 맑아진 날씨에 기분 또한 좋아졌다. 그렇게 잠시 앉아 허기를 달랜 나는 숙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인라인을 타고 오느라 지쳤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첫 런던 버스였다. 당시 한번 버스를 타는 금액이 약 2,000원이었는데, 한국의 약 세배에 가까운 돈이었다. 하지만 이층버스를 보는 순간 금액은 중요하지 않았다. 2,000원이 아니라 20,000원이더라도 타고 싶었다. 이층버스 맨 앞자리에서 밖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대됐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어느 것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런던은 대중교통이 정말 잘 발달해 있었다. 각 버스 정류장마다 목적지별 버스 노선 안내가 나와 있었고, 버스별로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타야 하는지까지 지도와 함께 안내되어 있었다. 버스 노선이 복잡해서 행선지별로 정류장이 상이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그러한 정보를 읽어내기에 무리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6년, 대학 2년 초등학교 때의 교육까지 포함하면 10년 이상 영어를 공부했지만, 찬찬히 읽으며 독해를 하던 나에게 영문 정보를 정보 자체로 이해하는 것은 아직 몇 개월은 후의 영역이었다.
한참을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 노선 안내를 보던 나는 큰 문제를 발견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랐다. 분명 올 때는 킹스턴이라는 지역명을 듣고 찾아왔는데, 정작 내가 어디서 온 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난감했다. 지리적 조건도 전혀 모르고 심지어 어느 방향에서 온 건지도 헷갈리기 시작한 나는 그야말로 길을 잃은 아이같이 앞이 깜깜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보았지만, 내 난감함을 해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인라인을 타고 왔던 길을 돌아갈까도 고민했지만, 내가 왔던 길을 기억해 낼 자신 또한 없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당황하며 주위를 살피던 나는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뛰어가 한국말로 물었다.
"저... 한국분이신가요?"
"아, 네."
"저 혹시 한국 민박집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요."
"민박집이요? 여기 한국 민박집 엄청 많은데?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 민박집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줄은 몰랐다.
"저 좀 전에 인라인 타고 한 30분 정도 왔거든요. 방향은 아마 저쪽으로 온 것 같은데..."
내 이야기를 들은 한국 분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아, 뉴몰든에서 오셨구나."
뉴몰든! 그래 그 이름이었다. 공항에서 픽업을 도와준 분이 이야기했던 지명이 얼핏 생각났다. 뉴몰든은 런던 4존에 위치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한인 동네였고, 킹스턴은 그곳에서 약 20분 거리의 런던 6존에 있었다.
"여기서 114번 버스 타고 가시면 되세요."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버스 타고 얼마나 가면 되나요?"
"아, 한 8정거장에서 10 정거장 정도 될 건데, 안내 방송으로 뉴몰든이라고 나올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스를 기다렸다.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온종일 헤매고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어로 길을 물어 실패한 경험이 있기에 한국인을 만난 것이 정말 다행인 것 같았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 지 약 10여 분 만에 버스를 탔다. 버스 운전석은 투명한 아크릴로 막혀 있어 삭막한 느낌이었지만, 버스기사에 대한 폭언과 폭행이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터라 진작부터 버스 운전석이 승객들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다. 버스비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버스 운전사가 불러 세웠다. 나를 부른 것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일단 뒤를 돌아보았다. 버스 운전사가 나를 불러 뭐라고 말을 하였는데, 아크릴에 가려져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가 가리킨 곳에는 영수증 종이가 출력되어 있었고, 직감적으로 영수증을 가져가라는 것을 알아챘다. 영국의 교통 요금 시스템은 다소 자율적이라고 할까? 아니면 허술하다고 할까? 요금 지불하는 것에 있어서 정확하게 지키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버스를 타면 영수증을 가지고 있어야만 자신이 요금을 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중간중간 inspector(점검자)가 올라타 티켓 확인을 요청할 경우 적절한 영주승을 제시하지 못하면 벌금을 물곤 했다. 처음 런던에 도착한 당시만 해도 이 벌금이 1회 적발에 15파운드(약 3만 원)이었는데, 소문에는 한 달에 한 번만 걸린다고 가정하면 한 달 통행료를 사는 것보다 이 값이 더 싸기 때문에 통행료를 결제하지 않고 이용하는 한국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나조차도 5년 동안 inspector를 마주친 것이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이니 말이다.
영수증을 받자마자 2층으로 올라갔다. 꿈에도 그리던 이층 버스다. 내가 런던의 이층 버스에 올라타 있다니...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다행히 2층에는 사람이 몇 없었고, 내가 앉고 싶던 맨 앞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2층 맨 앞 좌석으로 가 앉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경관 하며, 코너를 돌 때마다 느껴지는 스릴감이 가히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한국에도 많이 적용되고 있는 회전교차로(영어식 표현은 Round About이다)를 돌 때면 행여나 넘어지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런던의 버스 운전기사들은 진정한 운전의 베테랑들이었다. 좁은 골목들과 라운드어바웃을 몇 개 지나 약 20분 정도 이동하자 방송에서 '뉴몰든 파운틴(New Malden Fountain)'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버스에서 내리자 나름 익숙한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고민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나의 첫 도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마주하게 된 현지의 두려움은 이 첫 나들이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극복되는 듯싶었다.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나서 다음 문제를 풀 용기가 나는 것처럼 비용 문제만 해결된다면 조금 더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풀지 못할 문제가 분명히 남아있었다.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런던의 물가와 혼자라는 외로움이 그 문제였다.
버스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할 무렵 또 하나의 맥도날드를 발견했다. 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 맥도날드에 취업할 것을 생각했었던 나였지만 영어가 서툰 나를 선뜻 받아줄 리 만무했기에 들어갈 용기가 쉽게 나지 않았다. 더구나 어학연수를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냥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단식한다고 메뉴판도 보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상당히 큰 매장이었고 적당히 바빠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인디언(인도사람)처럼 보였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했었기 때문인지 인디언이 정말 많은 도시였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노려보듯 나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주문하겠느냐고 물었다. 살짝 위축되긴 했지만, 그가 먼저 눈인사를 건네자 갑자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에게로 걸어가 물었다.
"Can I have application form?"
왜 그랬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었으리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지만, 사실은 조금의 미련이 남아있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직업을 구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 시간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갑작스러운 희망으로 거대한 한 발자국을 띄게 된 것 같다.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도 그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몇 가지를 물었다. 질문은 대부분 나의 신상에 관한 것이었다. 이 동네에 사느냐, 학생이냐, 비자는 있냐... 그 정도의 질문이었다. 유창한 영어 속에서도 인디언의 발음이 살짝 스며 있었다. 마치 게임 속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것처럼 "Yes"를 연발했다. 그는 살짝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 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Application Form(입사지원서)과 함께 한 여성을 데리고 나왔다. 건장한 체구의 그녀는(사실 뚱뚱한) 나를 보더니 아주 진한 런던 사투리로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했다. 정확하게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적당히 알아들은 바로는 '지금은 사람을 뽑고 있지 않은데 이 form(지원서)을 채워서 오면 자리가 있을 때 연락을 줄게'인 듯했다. 오케이 땡큐를 외치고는 쿨하게 매장을 나왔다. 첫 도전임에도 나쁘지 않았다. 정말 막막했던 마음에 조금의 희망은 생기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오자 맥이 풀렸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잠이 쏟아졌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누나와 통화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살짝 원망 섞인 투정을 늘어놓기도 했다. 샤워 후 잠을 이겨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실 꼭 잠을 이겨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었다. 저녁 6시경 침대에 누워 한 시간만 자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잠이 들었고 깨어 보니 밤 10시가 지나 있었다. 거실로 내려가니 마침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밥상을 차리고 계셨다. 늦게 도착한 한국인 출장자를 위해서였다. 아주머니는 식사하겠냐고 물었고 배가 고픈 나는 대답도 전에 이미 식탁에 앉았다. 거실 TV 앞에는 영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몇 명의 유학생들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방학이면 기숙사가 문을 닫아 런던으로 다니러 온다고 했다. 나이 차이가 5살 이상 나긴 했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들과 급격히 친해졌고 외롭지 않게 시간을 보내며 나머지 2일에 대한 막막함을 서서히 벗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친해져 주말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영국의 초중고교 시스템과 영국이란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그들은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이곳에서 최소 6년 이상 거주중인 그들에게 비친 영국이란 나라는 내 생각만큼 희망차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그들과 주말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도중, 나를 픽업하러 나왔던 분이 찾아왔다. 지인이 방을 Share(런던의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집 하나를 빌린 후 방 하나씩을 유학생들에게 빌려주고 주방 및 화장실은 공유하는 방식)하고 있는데, 생각이 있으면 저렴한 가격으로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민박집에도 인터넷은 설치되어 있었지만 많은 사용자로 인해 내 것처럼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러웠고, 인터넷을 뒤진다고 해도 직접 발품을 팔아 집을 보러 다녀야 하는데, 교통편이나 이곳 지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좋은 집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월요일에 학원을 다녀온 후 결정하겠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