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1장 도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

by 쪼꼬

Chapter 10. 반반의 마음으로 첫 등교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나는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정보를 가지고 학원을 찾아 길을 나섰다. 최대한 비용을 아껴서 가야 했기 때문에 금액이 비싼 런던 1존의 교통 티켓은 사지 못했다. 런던 2존까지 기차를 타고 간 후 다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는 것이 가장 저렴하게 가는 방법이었다. 이전에 잠시 설명한 것처럼 런던은 1~6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심으로 갈수록 숫자는 낮아져 1존이 가장 중심이고 흔히들 센트럴 런던(Central London)이라 부른다. 교통카드의 경우 1~6존까지 이용 구간을 정할 수 있고, 기간에 따라 다시 One-day Travel Card, Weekly, Monthly의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특이한 점은 어떤 티켓을 구매하더라도 버스는 무료로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버스를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센트럴 런던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우선은 One-day Travel Card를 구매했다. 1존까지는 비싸니 2존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민박집에서 길을 알려준 사람들은 어느 역에서 몇 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하였지만, 지난번 경험한 것처럼 버스 정류장은 한두 개가 아니어서 버스의 방향과 번호를 정확히 찾기가 어려웠고, 특히 이른 아침 출퇴근 시간에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은 상당히 난감했다. 우여곡절 끝에 Vauxhall이라는 곳에서 88번 버스를 타고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도착했다. 피카딜리 서커스는 에로스 동상의 분수와 함께 런던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만큼이나 유명한 이곳은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과 출근 인파로 북적였고, 그 한가운데 마음속에 자랑이었던 삼성 광고판이 있어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외국인 중에는 삼성이 한국 브랜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학원으로 가기 위해 다시 한번 버스를 타야 했다. 알려준 버스는 14번. 이 14번 버스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버스인데, 우선은 런던의 투어버스와 거의 비슷한 노선으로 런던 시내 각종 유명한 관광 명소를 지나기 때문이었고, 또 한 가지는 오랫동안 역사가 깊은 구식 이층버스로 운행 중이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런던의 상징이었다.


런던에는 세 가지 종류의 버스가 있었다. 한국의 저상버스인 단층 버스, 우리가 영화 속에서 흔히 본 이층버스, 그리고 버스의 두 칸을 하나로 연결한 이중버스이다.(각각의 명칭은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만들어냈다) 런던의 이층버스는 내가 영국에 갔을 무렵부터 리뉴얼에 들어갔다. 오래된 구식 버스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고, 아주 깔끔하고 세련된 이층버스로 점차 변경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마지막으로 런던을 방문했을 때조차도 14번 버스만큼은 예전 그대로의 구식 버스가 운행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런던의 구식버스는 아주 재미있으면서도 운치 있었다. 우선은 승/하차가 아주 자유로웠다. 별도의 문이 없었기에 버스가 서면 언제든 뛰어내릴 수 있었다. 신식버스에는 벨이 있어 벨을 누르면 다음 정거장에 멈추게 되지만, 구식버스에는 창문 위로 줄이 있어 줄을 당기면 운전석 옆의 종이 울리고, 종이 울리면 버스를 세워주는 그야말로 구식 알람이었다. 내리는 곳이 뒤편에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뒤편에는 요금을 받아주는 버스 안내원이 있었다. (사실 있을 때 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아주 가파르고 좁아서 더욱 런던 버스의 운치를 느끼게 했다. 영화 ‘노팅힐’에서 배우 그랜트가 달리는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처럼 많은 영국인이 이 버스를 아주 자유롭게 이용하였을 것이라는 상상만으로 설렘을 안겨주는 버스였다. 아쉽게도 지금은 거의 모든 버스가 신식으로 바뀌어 구식 버스를 이용해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학원 소개 책자에서 가르쳐준 대로 14번 버스를 타고 토트넘 코트 로드 앞에서 내렸다. 학원의 주소는 덴마크 스트릿이었는데, 책자의 오는 길 설명에서는 토트넘 코트 로드가 유명해서인지 그곳을 찾아오라고 적혀 있었다. 길눈이 어두운 편은 아니었지만, 덴마크 스트릿도, 토트넘 코트 로드도 지도만으로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길을 물어보는 것이 두렵긴 했지만 할 수 없이 다시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마침 저 앞에 경찰이 보였다.

"Excuse me, How can I get to 토튼햄 코트 로드?"(실례합니다. 토튼햄 코트 로드 어떻게 가나요?)

"토튼햄 코트 로드? Well, I've never heard it before."(글쎄요. 들어본적 없는데요.)

지금이야 토트넘이 손흥민의 축구팀으로 유명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토트넘이라는 곳을 몰랐기에 발음 나는 대로 토튼햄이라고 물었다. 하지만 경찰은 길 이름을 못 알아들었다. 내가 설명서를 꺼내 길 이름을 보여주자, 경찰은 ‘Oh! 톳음콧롯!’라고 하며 길 이름을 신명 나게 발음했다. 여기서 또 한 번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톳음콧롯? 이 경찰이 뭐라고 하는 거지? 내가 찾는 길이 맞나?'

발음이 어찌 이렇게도 다를까? Tottenham Court Road. 분명 '토튼햄 코트 로드' 였다. 하지만 영국인들, 그중에서도 코크니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발음은 상당히 달랐다. 'Tottenham'의 tt발음은 묶어 없어지고, ham은 '음'으로 짧게 발음되어 토튼햄은 '톳음'으로 발음된다. 'Court'의 'r'은 받침이기 때문에 발음이 되지 않고 마지막 't'발음만 살짝 나서 '콧'이 된다. 마지막으로 'Road' 역시 'd'발음이 마지막에 살짝 붙어 '롯'으로 발음되어 결국 '토튼햄 코트 로드' 라는 긴 단어는 '톳음콧롯'으로 짧게 발음 된다는 것이다. 늘 그렇게 부르던 영국인들이 나의 정확한(?) 발음을 못 알아듣고 모르는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아주 선명한 영국식 발음의 경험을 치른 후에야 학원이 위치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문을 가진 학원이어서 학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같은 거리를 서너 번은 돌아다녀야 했다. 사실, 영국의 주소 시스템은 아주 단순하고 효율적이었다. 한국에서 2013년부터 시행된 도로명 주소의 시스템은 사실 영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것이다. 길을 중앙에 두고, 한쪽 편은 짝수 주소로, 반대쪽 편은 홀수 주소로 되어있어, 내가 찾고자 하는 주소가 짝수인지 홀수인지 확인하고 해당하는 라인만 찾으면 집을 찾는 것은 아주 수월했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학원 문을 몇 번이나 지나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학원 문은 가정집의 문처럼 아주 작아서 '설마'라는 생각으로 그 문을 그냥 지나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고, 실제로 문을 찾은 후에도 반신반의로 문을 열고 올라갔다.


문은 곧장 2층으로 이어졌다. 2층으로 올라오니 겉으로 본 것보다는 넓은 공간의 Reception이 자리하고 있었고, 한쪽에는 간단한 먹을거리를 팔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우선은 한국인 담당자를 찾아야 했다. 내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간이었다. 한 이틀 정도 런던에 있으면서 막막함과 두려움은 상당 부분 수그러들었지만, 앞으로의 생활이 여전히 불확실했기에 솔직히 머물고 싶은 마음 반 떠나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한국인 담당자는 상당히 바빠 보였다. 잠시 기다렸다 상담을 받았는데, 그녀는 바쁜 일과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상냥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상당히 무뚝뚝하고 차가웠다.

"혹시 환불이 가능할까요? 제가 한국에 돌아가려고 생각 중이거든요."

"무슨 비자 받으셔서 들어오셨어요?"

"학생비자요. 6개월만 받았어요."

"우선 학교에서 학생비자를 받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에 환불은 불가능해요. 비자를 못 받거나 입국이 거부당하면 환불을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비자도 받으셨고 입국도 하셔서 학원 입장에서는 환불해줄 수 있는 규정이 전혀 없습니다."

그랬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낸 학원비는 단순히 학원비만은 아니었다. 학원에 다니기 위해 입국을 허가하는 증빙(School Letter)을 내어준 대가가 포함된 것이다. 이 증빙으로 나는 비자를 받지 않았는가.


"현실적으로 환불은 어렵고요, 만약에 원하신다면 지금 6개월 과정인데, 하루 6시간씩 수업 들으시고 3개월에 마칠 수 있게는 해드릴 수 있어요."

그녀의 제안이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살 형편이 되지 않는 나에게 종일반 수업이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기다리는 학생이 또 있었기에 더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우선 자리를 일어났다. 잠시 생각에 잠기긴 했지만, 어차피 절반 정도는 머무를 생각도 있었기에 일단은 학원 수업을 받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환불이 되지 않는 상황이니, 가다가 중단하면 간만큼 이득이라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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