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들어와 준비를 시작했다. 들어온 시점은 졸업식이 막 끝난 후인 2월 말경이었다. 약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에서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교수님들의 추천서를 받아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선은 고향으로 돌아가 대학 졸업장과 성적 증명서를 출력했다. 고향에 계시던 부모님은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머물고 계셨기에 당시 고향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인 집에서 2주간 아무런 간섭 없이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텅 빈 집에서 1주일가량 시차 적응을 핑계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시간이 맞으면 옛 친구들을 만나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취업한 친구들은 나를 한량이라 부르며 부러워했지만, 사실 무엇 하나 이룬 것 없는 나는 그들의 생각만큼 고민이 없지 않았다. 저마다 각자의 현실이 가장 비극인 듯했다. 나로서는 취업한 친구들이, 그들에게는 아직도 공부 중인 내가 서로 부러울 따름이다. 당시에는 하루라도 빨리 회사에 취업해 금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회사원이 되고도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지금은 그래도 공부할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친구들은 이미 이와 같은 부러움을 느꼈으리라.
시차적응을 얼추 마치자 본격적으로 대학원에 필요한 서류를 챙기기 시작했다. 졸업식이 끝난 후였기 때문에 성적증명서와 졸업증명서는 모두 학교 내에 설치된 무인발급기로 발급할 수 있었지만 대학원 입학에 필수적이었던 2장의 추천서만큼은 교수님들을 직접 찾아뵙고 요청해야 했다. 미국 정치학 전공 교수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평소 아주 엄하고 날카로우신 교수님이셨지만, 동시에 항상 의욕적이고 질문이 많던 나를 예뻐해 주시던 교수님이시기도 했다.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추천서를 써 주시겠다 하셨고, 다른 한 분의 교수님 또한 나를 지지하며 기꺼이 추천서를 작성해 주셨다. 사실 다녔던 대학에서 추천서를 받는 일은 아주 문제 학생으로 찍히지 않은 이상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 그리고 추천서가 해결되자 입학을 위한 준비는 이제 영어성적만이 남아있었다. 사실상 가장 큰 벽이었다. 영국에서 보낸 시간이 1년 반이나 됐지만, 시험 경험은 단 한 번이었고, 그나마도 대학원을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성적을 받았다. 1년 동안 신선놀음만 하던 내가 시험에 자신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 진짜 영어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대부분의 영어시험이 한국에서 응시했을 때 점수가 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적 평가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채점자들은 응시자들의 수준을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의 응시생들끼리 경쟁하면 해외에서 체류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조금은 유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의 IELTS 시험은 시험일정이 맞지 않았다. TOEIC이나 TOEFL은 영국 대학에 진학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해당 학교에서 요구하는 시험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하고 그 시험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시험의 난이도 때문이 아니라 그 유형으로 인해 점수가 달라지니 말이다.
한국에서 약 보름의 시간 동안 필요한 서류와 생필품을 구입한 뒤 다시 영국으로 향했다. 영국으로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퀸메리대의 입학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입학에 필요한 영어성적을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인터넷에서 알려준 점수와 동일한 7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다시 메일을 보내 Pre-sessional 코스에 관해 물었다. 조금이라도 낮은 점수가 유리했다. 인터넷에서 알려준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학과의 입학정원 상황에 따라 Pre-sessional입과가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담당자는 전공 교수들에게 확인하여 답을 주기로 하였다.
답변을 듣는 것과 관계없이 영어시험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일정 수준의 기본 실력이 시험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시험을 위한 공부는 별도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시험이기 때문에 기출문제가 무엇이냐, 감독관이 누구이냐 혹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준비하면서 시험은 결국 유형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 바 있다. 해당하는 시험에 대한 준비는 결국 그 시험을 많이 치러본 사람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그토록 많은 모의고사를 치렀던 것 같다. 누가 더 많이 풀어보았는지, 누가 더 그 질문에 익숙한지, 누가 더 그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는지가 시험의 성패를 결정한다. 그래서 절대적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시험이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영국으로 들어온 후 문을 걸어 잠갔다. 전화기도 꺼놓았다. 그 좋아하던 온라인 게임도 끊었다. 2월 말부터 시험성적을 제출할 수 있는 5월 말까지 오롯이 시험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그사이 내가 치를 수 있는 시험은 고작 두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두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그나마 준비했던 대학원도 날아갈 판이었다. 당연히 핀치에 몰릴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집중해야 했다. 말 그대로 두문불출이었다. 한편으로 Pre-sessional을 위한 점수가 전혀 불가능한 점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무한정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영어시험에 올인하기로 한 이상 대충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첫 번째 시험에 원하는 점수를 받아야 다음 시험에 부담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