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몇몇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캠퍼스를 바쁘게 걸어가는 나를 마주 오던 한 남성이 불러 세웠다.
"저..."
깜짝 놀란 나에게 그는
"한국인이세요?"
더 깜짝 놀란 나는 네라고 짧게 대답했고, 그는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사뭇 가수 성시경을 연상케 하는 외모를 가진 그는 퀸메리대 한인학생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학교 내 한국인들을 찾아다니며 한인회에 가입을 권유하고 있었다. 한인회라는 말에 순간적 거부감이 들었지만, 먼 타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는 나에게 한인 학생들만의 개강 파티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 자리에 참석하기를 권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공부만 하겠다고 다짐했던 나지만, 노는데 내가 빠지면 섭섭하지 않은가?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맥이나 사람 관계도 그만큼 중요하다. 간혹 거기까지 가서 한국 사람들이랑 어울릴 필요가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생각의 차이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한국인들과 담쌓고 사는 사람들도 숱하게 보았지만, 외국인은 말 그대로 외국인이다. 우리와 정서가 다른 친구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반면 영국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된 한국인 친구들과 아직도 종종 연락하며 지내는 것을 보면 힘든 시절 같은 정서를 공유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보면 결국 남는 것은 추억이다. 열심히 공부한 추억은 혼자만의 것이지만 함께한 시간은 나눌 수 있는 기억이다. 최근 라디오에서 들은 문구가 이와 일맥상통하다.
'진정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추억이 많은 사람이다.'
회장이 알려준 개강 파티는 금요일이었고 본격적인 학기 시작은 그다음 주부터였다. 나는 그가 알려준 대로 모임 장소에 나갔다. 약 20명 정도의 한인 학생들이 모여서 식사와 술을 함께 했다. 이미 2~3학년이던 몇몇 학생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지 반가운 회동을 즐기고 있었고, 나를 포함한 새내기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에 앉아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대부분이 영국에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라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이 먹어 이런 자리에 나온 나 자신이 조금은 초라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 중에 내가 나이도 제일 많고 영어도 제일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자리가 정리되자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정말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중에는 나보다 두 살 위인 학부 2학년생 형과 나와 동갑인 친구들, 심지어 이제 막 20살이 된 어린 친구들까지 학년도 나이도 정말 다양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까지 다양한 과정의 친구들도 섞여 있었다. 부담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다.
마음이 편안해 진 나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특유의 친화력도 발휘됐다. 파티에서는 향후 학생회의 운영방안에 관한 안내가 있었다. 학생회의 주요 목적은 한인 학생들 사이의 네트워크 형성으로 좀 더 효율적인 학교생활에 있었지만, 주요 활동은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바로 체육대회와 파티였다. 앞서 설명했듯이 런던대는 여러 개의 개별 대학들이 연합하여 형성된 연합대학이고 어느 학교 학생이든 모두 런던대로 통합되어 졸업장을 받기 때문에 한인회 역시 연합활동을 하고 있었다. 1년에 한 번 연합 농구대회와 축구대회를 개최하고 학교별 파티에 서로 초대해 총 10회 이상의 클럽 파티를 진행한다고 했다. 노는 것과 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활동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기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이를 통해 형성된 한인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Pre-sessional과 오리엔테이션을 보내면서 1학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감이 생겼다. 게다가 1년 동안 함께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영옥이누나도 만났고, 학교생활이 지루하지 않게 해줄 한인회 친구들도 생겼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비자 신청도 마쳤으니 모든 것이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열심히 하는 일만 남았다. 순수한 학문에 대한 열정도 아니고 전공을 살려 NGO나 정치 활동을 할 것도 아니었다. 일차적인 목표는 fail 없이 졸업하는 것이었다. 입학보다 졸업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좋은 성적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Pre-sessional 과정으로 맛보기는 끝난 셈이니 공부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학교에서 이끌어주는 대로 잘 따라가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졸업에 성공할 것만 같았다. 물론 나의 이러한 안일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