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수업의 모든 과정을 마쳤다. 한국과의 차이가 있다면 종강이라고 술을 진탕 마시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학과마다 다를 수 있긴 하겠지만, 대학원은 수업이 모두 끝나고 시험을 치르고 나면 자연스럽게 논문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넘어간다. 논문을 시작하기 전 논문을 도와줄 슈퍼바이저가 지정 된다. 논문 준비를 시작하게 되면 주임 교수가 기존에 제출되었던 논문을 소개해 주는데, 이미 제출된 논문들을 토대로 목차를 정하고 구도를 잡으면 한결 수월하게 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구도를 모른 채 논문을 준비한다면 상당히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통의 석사 논문의 단계는
1) 주제 정하기
2) 논문 제안서 작성
3) 구도 잡기
4) 자료 모으기
5) 본문 작성
6) 요약본 작성
7) 제출
의 순으로 진행 된다. 이 중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부분을 본문 작성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자료 모으기에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주제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내가 선정한 주제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나와 정확하게 동일한 아이디어로 연구를 진행한 학자는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표절을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연구석사가 아니고서는 자료를 먼저 수집하고 그에 맞는 주제를 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연구석사는 새로운 주제와 가설에 대해 직접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설의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에 따른 데이터를 직접 만들어간다. 때문에 과정의 기간도 일반석사에 비해 길다. 일반석사의 경우에도 새로운 가설을 수립하고 그를 증명하는 것이 확실히 높은 점수를 받는데 유리할지 모르지만, 대개는 기존 가설에 대한 검증을 위주로 진행한다. 아무래도 논문의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입학 초기부터 논문 제안서를 제출하고 꾸준히 준비를 이어가기는 하지만 언제라도 논문 주제는 바꿀 수 있으니 초기에 정한 주제 때문에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2학기가 마칠 때쯤 슈퍼바이저로부터 논문제안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내가 정한 주제는 현시대의 첩보와 전략에 관한 내용이었다. 국제관계학이 주로 국제 정치와 사상에 대해 논의하는 과목이고, 전쟁이 이 학문의 기초가 된 만큼 전략과 정보에 관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논문 제안서(Proposal)를 낼 때는 북한과 관련된 정보전략의 내용을 다루고자 했지만, 슈퍼바이저는 한 국가의 사례에 깊이 몰입하게 되면 자료를 찾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구하지 못할 자료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영국이라지만, 북한과 관련한 연구가 그리 활발한 편도 아니거니와 많은 자료 중에서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만 추려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제안서의 가설을 입증하는데 있어서 굳이 한 국가에 집중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사례 분석이 용이하다는 뜻이다. 슈퍼바이저의 조언에 따라 북한과 관련된 내용은 사례 중 한 가지로 사용하기로 하고 전체 주제는 정보와 전략에 관한 내용으로 결정했다.
주제가 정해졌으니 본격적으로 논문 작업에 들어갔다. 새로운 주제가 주어진 만큼 논문의 Proposal(제안서)을 다시 작성해야 했다. 이를 슈퍼바이저에게 보내 검토받았고, 몇 번의 구성적 수정을 거친 후 승인을 받아 본격적 논문 작성이 시작되었다. 구도를 잡고 Chapter를 나눈 후 각 단락별 꼭지(주요 문장)를 잡았다. 이렇게 논문 작성의 준비 기간에만 무려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진짜 논문을 쓰는 일 보다 지금의 기초단계(Ground work)를 깔끔하게 마무리 해놓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참 후 논문을 제출할 때쯤 알 수 있었다.
준비단계가 길어지다 보니 집중도가 떨어졌다. 의욕적으로 주제를 지지해 주던 슈퍼바이저와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기가 힘들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일정이 바쁜 슈퍼바이저를 계속 괴롭히는 것이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숙사가 공부하기에는 유리한 듯하다.)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여하튼 논문의 구성이 완료되고 본격적 작업이 시작됐다. 일단 논문의 초안을 완성한 후 주변의 원어민 친구들에게 논문 검토를 부탁하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본문 작성을 서둘렀다. 하지만 후에 나의 이러한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는데, 원어민 친구들(이미 대학원을 졸업한 친구들)이라 할지라도 전공이 다른 석사 논문의 논리와 구조를 검증해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미리 이실직고 하자면 1차 논문에 대해서 재 작성(Retake) 결과가 떨어졌다.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