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에 가이드 일에 흠뻑 빠져있었다. 런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세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Stratford-Upon-Avon이나 처칠 생가가 있는 Blenheim Palace와 같은 곳을 돈을 받아 가며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내가 영국에서 살면서 알게 된 잡다한 지식들을 알려주며 나 자신의 여행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매번 같은 곳을 방문하면 지겹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갈 때마다 새롭고 볼 때마다 마음이 치유됐다. 함께하는 사람이 다르고, 보이는 풍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논문 준비가 소홀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 무렵 누나가 사촌동생 둘을 데리고 유럽 여행을 위해 런던에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누나도, 철없는 사촌동생들도 마냥 반갑기만 했다. 사실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을 한번쯤은 초대하고 싶었는데, 마땅히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던 차에 이렇게 누나가 방문해주니 마음적으로 반가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나는 4일간 런던에 머물면서 나의 공짜 가이드 투어를 받았다. 두 번이나 유럽 여행을 다녀왔지만 가이드를 받으며 여행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누나에게도 런던은 새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동생들을 데리고 먼저 파리로 떠난 누나와 보름 후 스위스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스위스에는 가보지 못했기에 이번 여행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갑작스레 여행을 준비하게 되어 설레기도 했지만 논문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마감일정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대충의 구도는 잡아두었지만 실제로 본문을 작성하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상당히 필요함을 예상하고 있었고, 논문에 인용할 자료를 완벽하게 모으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로 읽어야 할 자료가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가이드를 하면서도 늘 자료를 가지고 다니며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읽고는 있었지만 집중해서 읽기는어려웠고 중요한 부분에 체크를 하며 자료를 모으기도 어려웠으니 주로 저널이나 에세이 위주로만 읽는 양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 일도 스위스 여행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논문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조금은 있었다. 아마 중요한 시험 전날에도 친구들과 술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내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름의 시간이 지나고 누나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로밍서비스로 누나와의 전화연락은 가능했지만 비싼 통화요금 덕분에 자주 통화하기는 어려웠고, 통화를 하더라도 위치나 일정만 확인하고 금새 끊어야 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도입되기 전이니 SNS를 사용할 여건도 아니었다.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는 Easy Jet을 통해 저렴하게 구입해 두었다. 진작부터 저가 항공이 활발하게 이용되는 유럽이어서 미리 일정만 정하면 비행기 값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달 전에 예약하면 1파운드(우리 돈 1,700원)의 특가로도 좌석 예약이 가능했다. 물론 세금과 이것저것 합치면 3~4만 원 정도는 훌쩍 넘어가지만 그마저도 아주 훌륭한 가격이다. 단점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히스로 국제공항이 아닌 스텐스테드나 루튼 등 런던 외곽지역의 공항을 이용해야 하고 새벽 비행이 많았기 때문에 공항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무척이나 저렴한 가격이었기에 많은 유럽인들이저가 항공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이번 여행 역시 새벽 2시 비행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고 런던 시내 투어 일정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시내에서 저녁을 먹은 후 나이트 버스(24시간 운영하는 심야버스)를 이용해 루튼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가이드 일을 알려주었던 선배를 만나 소호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평범한 저녁 한 끼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고 차를 한잔 마시기 위해 근처 카페로 이동해 디저트를 먹었다. 누나가 런던에 올 때 내가 부탁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닌텐도라는 소형 게임기였다. 전자사전 대신 사용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그 게임기가 갖고 싶었다. 한국이었다면 이런 부탁 따위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기각됐겠지만, 먼 타국에서 고생하고 있을 동생을 위해 누나는 기꺼이 나에게 게임기를 선물해 주었다. 선배와 나는 카페에 앉아 닌텐도 삼매경에 빠졌다. 이미 유행이 조금 지난 후였지만 새로 접한 신문물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참을 둘이서 퍼즐게임에 열중하다가 이제 그만 일어나려 자리를 뜨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 가방이 없어진 것이다. 앉은 의자에 걸어둔 가방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한번도 의자에 가방을 걸어둔 적이 없었다.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유럽에서 하루 이틀 산 것도 아니었기에 항상 가방은 품에 안고 있었다. 헌데 이날은 왜 그랬는지 모른다. 가방을 의자에 걸어두다니...
“What the...”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유럽의 치안으로 말하자면 말 그대로 엉망이다. 집시들이 많은 곳은 특히나 더 그렇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집시들은 사유재산에 대한 개념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내 거다. 실제 친구가 겪은 예를 들면, 사진을 찍은 후 짐을 정리하기 위해 벤치 위에 살짝 놓아둔 사진기를 한 집시 여성이 아무렇지 않게 들고 간다. 이를 발견하고 그녀를 불러 세우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그냥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도둑질을 하는 것 같지 않게 태연히 물건을 들고 가는 여성을 불러 세워 '그거 내 거야.' 라고 이야기하면 그녀는 '아 그래?' 하며 사진기를 놓고 유유히 사라진다. 훔치는 일에 대한 죄책감도 미안한 마음도 전혀 없다. 그냥 가져가면 그만이다. 런던은 그나마 상황이 양호하긴 하지만 역시나 많은 유럽인들이 유입되어 있는 곳이기에 항상 긴장을 늦추면 안되었다. 그걸 잘 아는 내가 이런 실수를 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라?'하는 순간 아찔해졌다. 다음날 스위스로 출국할 예정이었기에 가방 안에는 내 귀중품들이 전부 들어있었다. 가방에 뭐가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 봤다.
그렇다. 스위스에서도 논문자료를 읽으려고 자료를 몽땅 가방에 챙겨두었었다. 단순히 읽을거리의 자료들만이 아니라 평소에 차곡차곡 준비해둔 인용할 자료들이 모두 들어있었던 것이다. 순간 짜증이 끓어올랐다. 정말 하늘이 원망스럽고 화가 치밀었다.
여권이 없으니 비행기를 탈 수도 없었고,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좌절하는 나를 위로라도 하듯 교통카드(Oyster Card)만 뒷 주머니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래도 그 순간에는 그게 뭐라고 또 감사하더라. 서둘러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자 로밍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결국 나는 스위스에 가지 못했다. 약 3주 전부터 준비해둔 스위스행 저가항공사 비행기 표는 금액이 싼 만큼 환불도 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스위스의 장엄한 자연경관을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지만 그보다도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누나와 사촌 동생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내가 가지 못해서 아쉬워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했다. 지금 나에게 닥친 최대의 과제는 논문이었다.
선배와 함께 런던 시내를 뒤지고 다녔지만 가방을 찾는 것은 불가능 했다. 혹시나 가방과 지갑만이라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았을까 싶어 온갖 쓰레기통을 다 뒤지고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가방 속 논문 자료만은 어떻게든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이나 신분증은 다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방에 들어있는 내 논문의 모든 자료. 그 자료들만이라도 되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훔쳐간 놈들이 그런 내 심정을 이해할 리 없었다. 그걸 이해했으면 가져가지도 않았겠지. 하는 수 없이 인근 경찰서로 향해 도난신고를 했다. 경찰관의 지시대로 Police Report(범죄 신고서)를 작성했다. 나의 개인 신상과 함께 도난당한 장소, 도난당한 시간, 도난품 등을 적어 접수했다. 그런다고 경찰이 바로 출동해 도난품을 찾아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경찰관은 물건을 찾게 되면 연락을 주겠으니 돌아가라고 이야기 했다.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간단하고 차갑게 응대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경찰서를 나왔다. 경찰서를 나와서도 한참 동안 카페 주변을 뒤지고 다녔다. 제발 가방만 쓰레기통에 버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