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4장 도전의 결과
Chapter 51. 불안한 취준생
한국으로 돌아올 때의 목표는 국내 3대 대기업이었다. 원대한 포부를 품은 만큼 목표 또한 높았다. 아버지가 H사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H사는 가장 가고 싶은 회사 중 하나였다. H사를 포함해 국내 3대 대기업에 취업을 도전해 보고 안 되면 런던으로 돌아와도 좋다는 심산이었다. 런던대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아무 곳에나 되는대로 취업하고 싶지는 않다는 호기인지 객기인지 기고만장한 자만감이 내 머릿속에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귀국과 동시에 내 생각은, 아니 내 마음이 180도 달라졌다. 지금은 더하다 하지만 취업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여기저기서 취업이 어렵다는 뉴스가 시시각각 흘러나와 구직자들의 마음을 좌불안석하게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스스로 자신감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고, 원하는 기업으로의 취업이 아닌 ‘취업’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귀국 초기에 가지고 있던 자만심은 스위치라도 달린 듯 한 순간에 겸손함으로 바뀌었다. 가고 싶은 회사를 가는 사람보다 갈 수 있는 회사를 가는 사람이 더 많다. 현실이 그렇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점점 초조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가고 싶던 회사와 하고 싶던 직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고, 기대했던 회사가 아닌 곳에 취직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 한국에 최소 몇만에서 몇십만 명이나 되니 나 또한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학을 다녀오면 남들보다 우위에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영국에서의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이만 먹었다.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을 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니 마음이 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누나와 단둘이 지내게 되면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취업을 준비하는지 알 길도 없었다. 왠지 논문 때문에 나만 혼자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혹시나 이번 시기를 놓치게 되면 적어도 6개월 이상은 누나 집에 얹혀살며 밥만 축내는, 언제 누나가 던져줄지 모르는 용돈만을 기다리는 백수가 된다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불안해졌다. 용돈을 받게 되면 안 그래도 갑을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누나의 온갖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그런 상황은 애초에 만들면 안 된다. 사람이 참 단순하다고 생각된 것이, 런던에 있었다면 이런 초조함은 전혀 없었을 것 같았다. 6개월 정도의 시간은 편하게 알바나 하면서 여유를 즐겼어도 괜찮았을 거다. 나라는 사람은 똑같은데 단순히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초조함을 느낀다는 것이 참 우습기도 했다.
대기업 공채 소식이 하나둘 열릴 때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필사적으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적어 제출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대기업의 인사 DB는 서로 공유된다는 소문과 함께 자기소개서를 똑같이 적어서 제출하면 필터링에 걸린다는 루머가 돌아 각각의 회사마다 자기소개서를 새로 작성해야 했다. 개인 신상이나 학력 등 이력서를 적는 일은 답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했지만, 자기소개서는 그야말로 고3 수학선생님이 내어준 죽어도 반복하기 싫은 삼각함수 숙제와도 같았다. 나라는 사람은 하나인데 지원하는 회사마다 다른 나를 소개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건지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매번 성심껏 지원서를 작성했다.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수십 곳의 대기업에 원서를 접수했다. 더 이상 지원하는 회사의 사업 분야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 회사에서 요구하는 인재상과 지원 요건을 확인하여 결격사유만 없으면 닥치는 대로 원서를 넣었다. 아마 지금의 취준생들이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전공을 살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지라 대부분 경영지원이나 기획 쪽으로 지원했는데, 당시엔 기획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사실 기획업무를 3년 넘게 한 후에도 잘 모르겠더라. 영어로는 Planning Team인데 뭘 계획한다는 건지... 원서를 넣는 곳이 수십 곳에 이르니 이제는 지원 직무도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곳에 지원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고, 어디든 한 곳만 걸려주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원하는 곳마다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는 것이었다. '왜일까? 무슨 문제일까? 결국은 SKY만 되는 건가?' 서류 전형 탈락 소식이 늘어날수록 내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원서를 쓴 기업 중에는 종종 중견기업도 섞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면접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불합격 소식이 이어지다 보니 귀국할 당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자신감과 희망은 이내 분노와 공포로 변해있었다. 불안감이 쌓여갔지만 원인을 알려 줄 사람도, 도움을 받을 만한 곳도 나에게는 없었다. 해외에서 막 귀국한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답을 알려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학파 왕따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서류전형 불합격의 이유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지원했던 업체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취업 후 내가 판단한 나의 문제점은 쓸데없는 고스펙이었다. 처음부터 영국살이의 목표가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취업을 위해서 스펙 개발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평범한 지방대 학생에서 런던대 유학생이 되었으니 일취월장,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대학원을 진학한 주목적이 취업이었던 만큼, 졸업만 하면 더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저변에 깔려있었다. 한데 이런 내 스펙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격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석사가 학사보다 우대받을 것 같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통상적으로 석사의 수학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경우가 많아 일반 학사 졸업생보다 연봉도 높게 책정되고, 승진도 1~2년은 빠르기 마련이다. 물론 회사마다 시스템이 달라 이를 반영하지 않는 회사도 많다. 그런데 석사 졸업자라고 해서 학사학위자보다 일을 훨씬 더 잘할까? 그들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지원하는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인 직무에서는 그렇지 않다. 학사건 석사건, 심지어 박사라 할지라도 신입사원은 신입사원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까먹고, 어리숙함으로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일은 못해도 패기는 있어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에는 또 솔선해서 덤벼들다 실패하기를 거듭한다. 가만히 좀 있으라는 말이 단전에서 끓어넘친다. 어느 회사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그들을 굳이 3~4백만 원을 더 주고 데려올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그래서 추가 진학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최근에는 고스펙의 구직자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대학원 졸업자에게도 별도의 프리미엄은 제공되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채용에 우선권을 주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다. 추가 진학을 하면 취업할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대학 시절 한 교수님께 어쩌다 교수가 되셨는지 질문했을 때 들었던 대답과 같다. 교수님께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셨다. 열심히 공부하면 돈을 많이 벌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갈 수 있는 길이 좁아졌다고 한다. 학사와 석사를 거쳐 박사를 하고나니 그다음은 선택의 폭이 줄어들어 결국 교수가 되셨다고 했다. 그 말씀이 사실이었다. 학력이 높아질수록 갈 수 있는 길이 제한적이다. 쉽게 예를 들어, 어렵게 석사를 마치고 공사판에 뛰어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말이다. 고용되는 사람도 기대하는 바가 있을 테지만, 뽑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업무의 정도에 상응하는 교육을 받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추가 교육을 받을 때는 이러한 점을 사전에 예측해서 나와 같은 불안함에 놓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공부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좁아진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몇몇 회사가 있었지만 각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인·적성 평가 또한 나에게 닥친 난관 중 하나였다. S사, D사, H사 등 대부분 대기업에서 자체 개발한 직무 능력 검사를 시행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지원자가 대학 졸업 이전부터 회사별 인·적성 평가의 기출문제를 풀어보며 이를 대비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인·적성 평가가 있는지조차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정보력도 없다. 고사와도 같은 이 시험에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아 공무원시험을 방불케 한다는 사실을 귀국 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심지어 과락이 있는 시험도 있었다. 특정 부분에서 기준 미달은 뽑지 않겠다는 말이다. 대학 졸업장만으로 우리가 지성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