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4장 도전의 결과

by 쪼꼬

Chapter 50. 국적 성실함

고민의 끝에 한국행이라는 결정이 나오자 한국 기업들의 채용 시기를 확인해야 했다. 대부분의 대기업 하반기 공개채용이 9월경 시작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국에 들어갈 시기를 고민하게 되었다. 논문의 기존 제출기한은 9월이었지만, 도난 사건으로 두 달의 유예기간을 받았기 때문에 11월까지만 논문을 제출하면 된다. 11월까지 런던에 머물면서 논문을 쓰는 것이 집중하기에도, 주변의 도움을 받기에도 좋았지만, 공개채용 시기를 놓치게 되면 또다시 6개월 이상의 시간을 허비해야 할 수도 있기에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실 논문은 어디서든 쓸 수 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 좋아하던 음식도 맘껏 먹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실컷 만나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만 했으니까 이제 보상 좀 받아도 된다.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 친하게 지내던 남자 셋이서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여행이어서인지 그 감회가 남달랐다. 그 와중에도 논문 자료를 계속 읽어야 했고 저질 체력 덕분에 걷는 것이 힘들었지만 스페인 그라나다부터 해변이 아름다운 말라가, 스페인의 중심 마드리드까지. 남자 셋이 아름다운 스페인 미녀들에게 수차례 추파를 날려보기도 했지만 소득은 전혀 없었다. 동양인 남자에 관심이 없는 걸까?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둘 다인가? 아무튼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여행을 소화하고 한국행에 오를 수 있었다. 햇수로 5년 가까이 머물던 런던을 떠나는 일이라 여러모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영영 떠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정리했다. 짧은 정리를 마치고는 곧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처음 런던을 떠날 때와 비슷하게 아쉬움의 눈물이 흘렀지만 몰려오는 피곤함 덕분에 이내 눈이 감겼다.


눈을 뜨니 한국이었다. 영국 시각으로 저녁에 출발한 비행기 안에서 내내 잠만 잤다. 머릿속에 온통 논문에 대한 고민으로 몇 달을 지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피곤했나 보다. 한국으로 돌아와 시차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다시 곧장 논문 작업에 착수했고 이와 동시에 순차적으로 공지가 올라오는 대기업 공채 소식을 자주 확인해가며 시간이 날 때마다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도 작성했다. 우선 논문을 마칠 때까지는 취업에 온전히 신경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논문을 완성키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의 생활 패턴은 런던에 있을 때와 다름이 없었다. 시차 적응 때문에 좀비처럼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움직인다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같은 시기에 뉴욕에서 귀국한 누나가 구로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당분간 누나 집에서 얹혀 지내기로 했다. 덕분에 생활비도 숙식비도 해결되었다. 누나는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뉴욕의 유명 의류업체에서 일하던 사람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니 의아했다. 누나의 설명에 따르면, 해외에서 근무한 경력이 총 3년 가까이 되는데, 그중 학생 비자로 근무한 기간이 1년 이상이었다. 당연히 그 경력은 인정받지 못한다. 문제는 그 이후의 경력인데, 한국 의류 업계에서는 대부분 해외 근무 자체를 경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때문에 누나가 받던 급여 수준을 맞춰주기가 어려웠다. 몇몇 대기업 의류회사를 제외하고는 미국의 의류 업계보다 급여 수준이 낮은 것이 현실이었다. 근래에 이슈가 된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문제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누나의 일은 누나의 일이다. 나는 얼른 논문을 마쳐야 했다.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글쓰기 작업을 절반 이상 해두었기 때문에, 나머지 절반만 한국에서 진행하면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약 8천 단어 이상을 더 적어야 했고, 중간중간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고, 읽은 것을 발췌하여 본문에 삽입해야 했기에 작업은 꼬박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사실 실제로 글을 쓰는 시간만을 고려한다면 약 1~2주 정도면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의 논리적 전개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채워 넣다 보면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더구나 가지고 있던 모든 자료를 도둑맞은 상황이었고, 그것들을 100% 복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생각해 두었던 자료를 넣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어딘가에 분명히 내용이 있는 것 같은데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할 일이다. 그럴 때면 과감하게 내용 전체를 포기해야 했다. 전개에 있어 꼭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자료를 찾는데 한참의 시간을 소비한면, 자료를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시간만 허비하고 의욕까지 상실된다. 대체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논문에 대해 스스로 확신이 떨어졌다. 런던에서는 무언가 전개가 막힐 때마다 나를 도와줄 친구들이 있었고, 슈퍼바이저를 찾아가 물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온 후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영국과 한국의 시차 덕분에 슈퍼바이저에게 메일을 보내도 답변을 받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한국에서 내 논문을 함께 검토해 줄 친구를 찾을 수도 없었다. 시간은 자꾸만 재촉해 오고, 진도는 나가지 않자 스트레스가 쌓였다. 머리가 빠지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느려진다. 밥을 먹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일단 체력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런던에 있으면서는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운동을 자주 했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축구나 농구를 하러 다녔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인 한국에 들어온 후로 운동할 시간도, 운동하러 갈 장소도, 심지어는 운동을 함께 할 친구도 없었다. 런던에서 나름대로 인싸였던 내가 한국에 온 순간 찐따 오타쿠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덕분에 몸은 계속 아팠고 논문의 진도는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엉덩이 통증이 심해졌다. 한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엉덩이도 근육이기 때문에 자주 움직여줘야 하는데,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글을 쓰니 엉덩이가 아프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다. 논문을 쓰는 내내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글을 써야 했고, 그런데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으면 글쓰기를 그만두고 일어나 걸어야 했다. 함께 사는 누나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글쓰기의 답은 진득한 엉덩이이다. 시간을 들이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한자라도 써진다. 주변에 방해할 만한 것이 없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한국에 오자마자 왕따가 된 덕분에 논문 말고는 딱히 할 것도 없었다. 한 달 가까이 밤낮없이 써 내려간 논문이 완성되고 런던에 있는 친구에게 피드백을 부탁했다. 영국인이었고 대학원을 진학한 친구였기에 그가 어느 정도 문법적, 논리적 오류를 봐줄 수 있으리라 판단해서였다. 공짜로 부탁을 하면 제대로 봐주지 않을 것 같아 50파운드(우리 돈 8만 원이 이상)라는 거금을 주고 부탁을 한 터였다. 이틀이 지난 후 친구에게서 메일에 대한 답장이 왔다. 몇 가지 문법적 오류는 수정하였고, 이 정도 논문이면 통과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수정한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생각보다 수정한 곳이 적었다. 조금 불안했지만 어쨌든 검토까지 받았으니 바인딩(제본)을 한 후 우편으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끝났다. 이제 취업만 하면 된다.


적지 않은 시간을 논문에 투자했고 드디어 그 끝을 보게 되었다. 대학원을 진학하는 친구들이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이 논문이다. 논문 그 자체가 가진 엄청난 중압감과 무게감을 부담스러워한다. 절대적, 물리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그럴 만도 하다. 실제로 주변에서 논문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한 사람을 많이 봐 왔고, 그들에게 적절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내가 그들에게 하는 조언은 다름 아닌 한국적 성실함이다.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에 대해서는 누구든 많이 들어봐서 알고 있다. 파독 간호사들의 성실한 성공담이 많은 생명을 구한 이야기나 하와이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성실함만으로 성공을 이뤄낸 이야기 등은 마치 전설과도 같아서 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모두 당신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이다. 신기하게도 대한민국 사람들의 근본에는 성실함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이는 아마 우리의 부모님이나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미덕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성실함을 당신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고, 이를 부정하지 않는 것에서 도전은 시작된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국적 성실함을 부정하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인내와 경험이 필요한 모든 일은 해낼 수 있다. 논문이라는 결과물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지 타고난 머리나 재능의 싸움은 아니다. 논문에 필요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으로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사실 논문뿐 아니라 노력이라는 것이 포괄하는 모든 결과물이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것이 모두에게 아주 간단할 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만한 지적 능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결국은 절대적 시간과의 싸움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당신이 한국이라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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