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3장 치열함이 가져다주는 것

by 쪼꼬

Chapter 49. 가지 고민

도둑님에 대한 원망과 감사는 털어버리고 논문에 집중해야 했다. 아주 처음부터 시작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자료가 증발한 상황이라 이를 복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 점은 잃어버린 자료들 대부분은 인쇄물이라는 것이다. 무거운 책들을 여행하는 동안 통으로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필요한 부분을 미리 인쇄해 두었고 그 인쇄물을 모두 도둑맞았다. 인쇄물을 다시 구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학교 도서관에서 자료만 찾아야 했다. 자료를 대부분 준비해 두어 이제 진득하게 쉬엄쉬엄 본문 작성만 하면 되었던 내 계획은 보기 좋게 리셋되었다. 대부분의 책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어떤 책들은 이미 대여가 되어서 며칠을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찾은 자료 중에서 내가 마크해 두었던 곳을 정리하는 데에 또 수일이 걸렸다. 혹시나 또 잃어버리는 일이 있을까 봐 별도로 페이지를 메모해 가면서 말이다.


지금 이렇게 짧은 글로는 그때의 내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이 힘든 과정이었다. 짜증과 내려놓음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가면서 적응하는 나를 발견하니 헛웃음도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아무튼 대충 자료 복구를 끝냈다. 사실 아주 새로운 내용으로 기존의 자료를 대신하기도 했다. 이제 다시 본궤도로 올라와 글을 써야 했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서 에세이를 써본 경험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일단 2만 단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에서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통 3천~5천 자 사이의 에세이를 적었으니 이를 4개~6개가량 써야 하는 것이다. 논문의 단어 수는 일반적으로 주어진 단어 수의 90%~110%까지 범위를 허용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18,000단어 ~ 22,000단어 사이에 논문을 마치면 된다. 하지만 평가에 있어서는 분량보다 내용에 우선순위를 주기 때문에 22,000자를 모두 채웠다고 하더라도 더 높은 점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구도는 어느 정도 잡혀 있고 자료도 대충 모았으니 쭉쭉 글을 써 내려다. 글을 쓴다는 것을 창작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글 쓰는 일을 중노동으로 분류한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일은 단순하지도 않아서 시시때때로 생각에 고민까지 겸해야 하니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진득한 엉덩이가 가장 중요한 스펙이고 농업적 근면성이 가장 필요한 미덕이다. 지금도 내가 좋아서 매일 아침 글을 쓰고는 있지만, 엉덩이가 아프고 손목이 저려온다. 논문을 쓰는 건 이보다 수십 배 수백 배는 더했다. 마감의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 그 압박감이 심할 수밖에 없었고, 적는 내용이 학문적 접근이다 보니 생각의 깊이도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도난 사건 덕분에 기한이 연기되긴 했지만, 여전히 시간에 쫓기고 있었고, 여전히 나에게는 2만 단어라는 분량이 숙제로 남아있었다.


며칠간의 밤샘 작업이 이어졌다. 정리한 자료를 구도에 맞게 분류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새로운 자료를 찾아 넣기를 무한 반복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초보가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나에게 맞는 자료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흐름으로 글을 쓰는데 뒷받침이 되어줄 만한 자료가 있으리라 생각해 여기저기 많은 책자와 저널을 뒤지지만 실제로 내가 원하는 자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시간이 무한대로 있다고 하면 못 찾을 것도 아니지만 우리에겐 한정된 시간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리 찾아놓은 자료에 맞게 글의 흐름을 만들고 논리를 정리해야 하고, 정말 필요할 경우에는 슈퍼바이저에게 요청해 관련 서적을 추천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물론 슈퍼바이저가 정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더 많은 글을 읽지 않았겠는가? 운이 좋으면 추천 서적에서 내가 원하는 자료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 시기에 내가 처해있던 또 하나의 고민 탓에 논문 작업은 더욱 더뎌졌다. 바로 취업이었다. 이제 대학원 졸업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고민이 안될 수 없었다. 런던에서 열리는 한국 기업들의 취업설명회에도 참석하며 향후 진로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사실상 논문보다도 중요한 건 그다음이니 말이다. 유학생 대부분이 하는 고민은 거의 똑같다. '현지 업체에 취업해서 현지에 눌러살 것인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 기업에 취업할 것인가?’ 물론 현지 한국 업체에 취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긴 하지만, 영주권이 없는 유학생이라면 아무래도 확률이 낮다. 현지에는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한국인 2세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들과 경쟁하기에는 비용적인 측면이나 언어적인 측면에서 유학생이 전혀 유리하지 않다. 수 천만 원짜리 비자도 가지고 있고 또 수 천만 원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어학실력도 가진 그들을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인맥을 포함해, 실력이 월등히 좋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서 유학생들은 앞서 말한 두 가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두 가지 옵션은 명확한 차이를 가진다.


현지 업체에 취업하는 것은 모든 유학생이 꿈꾸는 일이다. 한국의 기업들보다 페이도 좋을뿐더러 근무 조건이나 환경이 월등히 좋기 때문이다.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이 꿈꾸는 바와 같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은 역시나 비자다. 지금은 유럽 연합의 많은 나라에서 넘쳐나는 이민자들 때문에 관련 법이 상당 부분 수정되었지만, 당시 대학원을 졸업하면 2년간 영국에 머물며 취업할 수 있는 비자가 주어졌다. 그런데 이 비자가 끝날 때 문제가 생긴다. 현지 업체가 비자 연장에 동의하지 않을 때는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함정이다. 업체가 비자 연장에 동의하려면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다른 경쟁자와 비교해 엄청나게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는데, 취업 후 비자가 끝나는 2년 이내에 월등한 퍼포먼스를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신입은 어리버리해야 마땅하다. 마지막 순간에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하지만 도전해 볼 만은 하다. 만약 전공이 전문직이나 기능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 성실함으로 도전하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능력이 인정되면 비자는 자동으로 따라온다.


한국에서 취업하는 것은 일단 확률이 높다. 유학을 통해 흔히 말하는 스펙이 쌓였으니 당연하다. 더구나 한국에는 내 말을 알아듣는 기업이 넘쳐나지 않는가? 비자 걱정도 없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낼 필요도 없다. 해외에서 영영 살아볼 요량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한국에서 정착하는 것도 좋다. 게다가 일단 취업을 하고 난 후 해외 영업이나 주재원으로 해외 경력을 계속 쌓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유학 경험이 있으면 회사에서 적임자를 찾을 때 우선적 고려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수없이 좌절하고 실망할지도 모르고, 그동안 영어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성공한 경험이 있으면 금세 따라잡을 수 있다. 나는 적어도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 역시 이 두 가지 옵션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논문 작업이 진행되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러한 고민은 더욱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런던이었지만,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소위 말하는 못 볼 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들어가기는 왠지 모르게 손해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달려온 런던 생활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주 5일, 그것도 오후 5시 이전이면 모두 퇴근하여 집으로 향하는 런더너들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했던 것을 생각하면 런던 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도 아쉽기만 했다. 당시 한국은 주 5일제도 겨우 정착이 되어가고 있던 시기다.


하지만 어떠한 결정도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왔고 나의 결정은 한국행이었다. 한국행을 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족들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탓에 마음이 지친 것도 있었고, 영국에 정착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약간의 실망을 한 것도 있었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높은 연봉 수준을 자랑하는 영국이었지만 살인적인 물가 덕분에 항상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아 보였다. 대부분은 하우스 쉐어를 통해서 비용을 절감해야만 했고, 영국의 집은 적게는 50년에서 많게는 100년이 넘은 것이 많아 생활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집을 쉐어하며 겪어야 했던 속 시끄러운 잡무도 이젠 지쳤다.


또 한 가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직업이었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면서 NGO와 같은 국제기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런던에 있으면서 영국 암 연구소(Cancer Research UK)의 한국어 통역과 번역을 도와준 경험이 있었다. 자원봉사는 아니었고, 일정의 페이를 받기는 했지만, 그 수준은 상당히 낮았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 나에게는 그들만큼의 순수한 열정이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국제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기에, 그 기본에는 순수한 열정과 박애 정신이 필요했다. 솔직하게 나 자신을 판단하건대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나에게 우선순위는 지금 당장 내 삶의 행복이었고, 이는 곧 물질적 안정으로 이어져야 했다. 맞다. 난 속물이다. 난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안정적 취업이라는 목표를 두고 생각해 보았을 때, 나에게 더 매력적이었던 것은 한국 기업이었다. 우선은 언어적인 면에서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 영국 기업에서 근무하게 되면 나에게 언어는 플러스 요소가 아니라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마이너스 요소 정도가 아니다. 그 이하다. 그들 입장에서 아무 연관성 없는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것 어떠한 플러스 요인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경쟁을 생각하면 영어 실력은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모국어로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다면, 영어로는 그 능력의 80%밖에 자신이 없었다. 80%의 능력으로 네이티브들과 경쟁한다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국어를 100% 발휘하면서도 종종 한계에 부딪히곤 하지만...


한국행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선택한 VISION 이었다. '취업을 한 후에는? 다음은 뭐지?'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나에게 세워진 목표는 지역 전문가였다. 특정 지역의 주재원으로 오랜 시간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를 쌓게 되면 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대학 시절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의 강의를 들은 경험이 있었는데, 한국 정부가 해당 지역과의 교류를 위해 기업인으로 오랫동안 주재원 생활을 한 그에게 많은 조언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반인 신분으로 국가적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경제적 안정과 개인의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나는 주재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정했고, 그 후로 회사 내에서 나의 목표는 항상 '유럽 법인장'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일단은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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