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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Sep 23. 2022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Chapter 5. 

첫날 도착하자마자 마주하게 된 현지의 두려움은 지난번 첫 런던 나들이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극복되는 듯싶었다.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나서 다음 문제를 풀 용기가 나는 것처럼 비용 문제만 해결된다면 조금 더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풀지 못할 문제가 분명히 남아있었다.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런던의 물가와 혼자라는 외로움이 그 문제였다.     

버스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할 무렵 또 하나의 맥도날드를 발견했다. 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 맥도날드에 취업할 것을 생각했었던 나였지만 영어가 서툰 나를 선뜻 받아줄 리 만무했기에 들어갈 용기가 쉽게 나지 않았다. 더구나 어학연수를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냥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단식한다고 메뉴판도 보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상당히 큰 매장이었고 적당히 바빠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인디언(인도 사람)처럼 보였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했었기 때문인지 인디언이 정말 많은 도시였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노려보듯 나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주문하겠느냐고 물었다. 살짝 위축되긴 했지만, 그가 먼저 눈인사를 건네자 갑자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에게로 걸어가 물었다.     

"Can I have application form?"     

왜 그랬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었으리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지만, 사실은 조금의 미련이 남아있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직업을 구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 시간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갑작스러운 희망으로 거대한 한 발자국을 띄게 된 것 같다.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도 그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몇 가지를 물었다. 질문은 대부분 나의 신상에 관한 것이었다. 이 동네에 사느냐, 학생이냐, 비자는 있냐... 그 정도의 질문이었다. 유창한 영어 속에서도 인디언의 발음이 살짝 스며 있었다. 마치 게임 속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것처럼 "Yes"를 연발했다. 그는 살짝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 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Application Form(입사지원서)과 함께 한 여성을 데리고 나왔다. 건장한 체구의 그녀는(사실 뚱뚱한) 나를 보더니 아주 진한 런던 사투리로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했다. 정확하게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적당히 알아들은 바로는 '지금은 사람을 뽑고 있지 않은데 이 form(지원서)을 채워서 오면 자리가 있을 때 연락을 줄게'인 듯했다. 오케이 땡큐를 외치고는 쿨하게 매장을 나왔다. 첫 도전임에도 나쁘지 않았다. 정말 막막했던 마음에 조금의 희망은 생기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오자 맥이 풀렸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잠이 쏟아졌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누나와 통화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살짝 원망 섞인 투정을 늘어놓기도 했다. 샤워 후 잠을 이겨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실 꼭 잠을 이겨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었다. 저녁 6시경 침대에 누워 한 시간만 자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잠이 들었고 깨어 보니 밤 10시가 지나 있었다. 거실로 내려가니 마침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밥상을 차리고 계셨다. 늦게 도착한 한국인 출장자를 위해서였다. 아주머니는 식사하겠냐고 물었고 배가 고픈 나는 대답도 전에 이미 식탁에 앉았다. 거실 TV 앞에는 영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몇 명의 유학생들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방학이면 기숙사가 문을 닫아 런던으로 다니러 온다고 했다. 나이 차이가 5살 이상 나긴 했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들과 급격히 친해졌고 외롭지 않게 시간을 보내며 나머지 2일에 대한 막막함을 서서히 벗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친해져 주말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영국의 초중고교 시스템과 영국이란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그들은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이곳에서 최소 6년 이상 거주 중인 그들에게 비친 영국이란 나라는 내 생각만큼 희망차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그들과 주말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도중, 나를 픽업하러 나왔던 분이 찾아왔다. 지인이 방을 Share(런던의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집 하나를 빌린 후 방 하나씩을 유학생들에게 빌려주고 주방 및 화장실은 공유하는 방식)하고 있는데, 생각이 있으면 저렴한 가격으로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민박집에도 인터넷은 설치되어 있었지만 많은 사용자로 인해 내 것처럼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러웠고, 인터넷을 뒤진다고 해도 직접 발품을 팔아 집을 보러 다녀야 하는데, 교통편이나 이곳 지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좋은 집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월요일에 학원을 다녀온 후 결정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나는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정보를 가지고 학원을 찾아 길을 나섰다. 최대한 비용을 아껴서 가야 했기 때문에 금액이 비싼 런던 1존의 교통 티켓은 사지 못했다. 런던 2존까지 기차를 타고 간 후 다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는 것이 가장 저렴하게 가는 방법이었다. 이전에 잠시 설명한 것처럼 런던은 1~6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심으로 갈수록 숫자는 낮아져 1존이 가장 중심이고 흔히들 센트럴 런던(Central London)이라 부른다. 교통카드의 경우 1~6존까지 이용 구간을 정할 수 있고, 기간에 따라 다시 One-day Travel Card, Weekly, Monthly의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특이한 점은 어떤 티켓을 구매하더라도 버스는 무료로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버스를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센트럴 런던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우선은 One-day Travel Card를 구매했다. 1존까지는 비싸니 2존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민박집에서 길을 알려준 사람들은 어느 역에서 몇 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하였지만, 지난번 경험한 것처럼 버스 정류장은 한두 개가 아니어서 버스의 방향과 번호를 정확히 찾기가 어려웠고, 특히 이른 아침 출퇴근 시간에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은 상당히 난감했다. 우여곡절 끝에 Vauxhall이라는 곳에서 88번 버스를 타고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에 도착했다. 피카딜리 서커스는 에로스 동상의 분수와 함께 런던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만큼이나 유명한 이곳은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과 출근 인파로 북적였고, 그 한가운데 마음속에 자랑이었던 삼성 광고판이 있어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외국인 중에는 삼성이 한국 브랜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학원으로 가기 위해 다시 한번 버스를 타야 했다. 알려준 버스는 14번. 이 14번 버스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버스인데, 우선은 런던의 투어버스와 거의 비슷한 노선으로 런던 시내 각종 유명한 관광 명소를 지나기 때문이었고, 또 한 가지는 오랫동안 역사가 깊은 구식 이층버스로 운행 중이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런던의 상징이었다.     

런던에는 세 가지 종류의 버스가 있었다. 한국의 저상버스인 단층 버스, 우리가 영화 속에서 흔히 본 이층버스, 그리고 버스의 두 칸을 하나로 연결한 이중버스이다.(각각의 명칭은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만들어냈다) 런던의 이층버스는 내가 영국에 갔을 무렵부터 리뉴얼에 들어갔다. 오래된 구식 버스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고, 아주 깔끔하고 세련된 이층버스로 점차 변경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마지막으로 런던을 방문했을 때조차도 14번 버스만큼은 예전 그대로의 구식 버스가 운행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런던의 구식버스는 아주 재미있으면서도 운치 있었다. 우선은 승/하차가 아주 자유로웠다. 별도의 문이 없었기에 버스가 서면 언제든 뛰어내릴 수 있었다. 신식버스에는 벨이 있어 벨을 누르면 다음 정거장에 멈추게 되지만, 구식버스에는 창문 위로 줄이 있어 줄을 당기면 운전석 옆의 종이 울리고, 종이 울리면 버스를 세워주는 그야말로 구식 알람이었다. 내리는 곳이 뒤편에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뒤편에는 요금을 받아주는 버스 안내원이 있었다. (사실 있을 때 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아주 가파르고 좁아서 더욱 런던 버스의 운치를 느끼게 했다. 영화 ‘노팅힐’에서 배우 휴 그랜트가 달리는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처럼 많은 영국인이 이 버스를 아주 자유롭게 이용하였을 것이라는 상상만으로 설렘을 안겨주는 버스였다. 아쉽게도 지금은 거의 모든 버스가 신식으로 바뀌어 구식 버스를 이용해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학원 소개 책자에서 가르쳐준 대로 14번 버스를 타고 토트넘 코트 로드 앞에서 내렸다. 학원의 주소는 덴마크 스트릿이었는데, 책자의 오는 길 설명에서는 토트넘 코트 로드가 유명해서인지 그곳을 찾아오라고 적혀 있었다. 길눈이 어두운 편은 아니었지만, 덴마크 스트릿도, 토트넘 코트 로드도 지도만으로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길을 물어보는 것이 두렵긴 했지만 할 수 없이 다시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마침 저 앞에 경찰이 보였다.

"Excuse me, How can I get to 토튼햄 코트 로드?"(실례합니다. 토튼햄 코트 로드 어떻게 가나요?)

"토튼햄 코트 로드? Well, I've never heard it before."(글쎄요. 들어본 적 없는데요.)

지금이야 토트넘이 손흥민의 축구팀으로 유명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토트넘이라는 곳을 몰랐기에 발음 나는 대로 토튼햄이라고 물었다. 하지만 경찰은 길 이름을 못 알아들었다. 내가 설명서를 꺼내 길 이름을 보여주자, 경찰은 ‘Oh! 톳음콧롯!’라고 하며 길 이름을 신명 나게 발음했다. 여기서 또 한 번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톳음콧롯? 이 경찰이 뭐라고 하는 거지? 내가 찾는 길이 맞나?'

발음이 어찌 이렇게도 다를까? Tottenham Court Road. 분명 '토튼햄 코트 로드'였다. 하지만 영국인들, 그중에서도 코크니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발음은 상당히 달랐다. 'Tottenham'의 tt발음은 묶어 없어지고, ham은 '음'으로 짧게 발음되어 토튼햄은 '톳음'으로 발음된다. 'Court'의 'r'은 받침이기 때문에 발음이 되지 않고 마지막 't'발음만 살짝 나서 '콧'이 된다. 마지막으로 'Road' 역시 'd'발음이 마지막에 살짝 붙어 '롯'으로 발음되어 결국 '토튼햄 코트 로드'라는 긴 단어는 '톳음콧롯'으로 짧게 발음된다는 것이다. 늘 그렇게 부르던 영국인들이 나의 정확한(?) 발음을 못 알아듣고 모르는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아주 선명한 영국식 발음의 경험을 치른 후에야 학원이 위치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문을 가진 학원이어서 학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같은 거리를 서너 번은 돌아다녀야 했다. 사실, 영국의 주소 시스템은 아주 단순하고 효율적이었다. 한국에서 2013년부터 시행된 도로명 주소의 시스템은 사실 영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것이다. 길을 중앙에 두고, 한쪽 편은 짝수 주소로, 반대쪽 편은 홀수 주소로 되어있어, 내가 찾고자 하는 주소가 짝수인지 홀수인지 확인하고 해당하는 라인만 찾으면 집을 찾는 것은 아주 수월했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학원 문을 몇 번이나 지나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학원 문은 가정집의 문처럼 아주 작아서 '설마'라는 생각으로 그 문을 그냥 지나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고, 실제로 문을 찾은 후에도 반신반의로 문을 열고 올라갔다.     

문은 곧장 2층으로 이어졌다. 2층으로 올라오니 겉으로 본 것보다는 넓은 공간의 Reception이 자리하고 있었고, 한쪽에는 간단한 먹을거리를 팔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우선은 한국인 담당자를 찾아야 했다. 내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간이었다. 한 이틀 정도 런던에 있으면서 막막함과 두려움은 상당 부분 수그러들었지만, 앞으로의 생활이 여전히 불확실했기에 솔직히 머물고 싶은 마음 반 떠나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한국인 담당자는 상당히 바빠 보였다. 잠시 기다렸다 상담을 받았는데, 그녀는 바쁜 일과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상냥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상당히 무뚝뚝하고 차가웠다.

"혹시 환불이 가능할까요? 제가 한국에 돌아가려고 생각 중이거든요."

"무슨 비자로 들어오셨어요?"

"학생비자요. 6개월만 받았어요."

"우선 학교에서 학생비자를 받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에 환불은 불가능해요. 비자를 못 받거나 입국이 거부당하면 환불을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비자도 받으셨고 입국도 하셔서 학원 입장에서는 환불해줄 수 있는 규정이 전혀 없습니다."

그랬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낸 학원비는 단순히 학원비만은 아니었다. 학원에 다니기 위해 입국을 허가하는 증빙(School Letter)을 내어준 대가가 포함된 것이다. 이 증빙으로 나는 비자를 받지 않았는가.      

"현실적으로 환불은 어렵고요, 만약에 원하신다면 지금 6개월 과정인데, 하루 6시간씩 수업 들으시고 3개월에 마칠 수 있게는 해드릴 수 있어요."     

그녀의 제안이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살 형편이 되지 않는 나에게 종일반 수업이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기다리는 학생이 또 있었기에 더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우선 자리를 일어났다. 잠시 생각에 잠기긴 했지만, 어차피 절반 정도는 머무를 생각도 있었기에 일단은 학원 수업을 받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환불이 되지 않는 상황이니, 가다가 중단하면 간만큼 이득이라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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