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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Sep 23. 2022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Chapter 7.

약 1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맥도날드에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 분의 전화번호로 지원서를 써놨기 때문에 집주인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그 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올 수 있냐는 물음에 'Yes'라고 대답했다. 시간을 맞춰 맥도날드에 찾아가 알려준 이름을 댔다. 그녀는 지난번에 나에게 입사 지원 양식을 전해준 베버리라는 여자였다. 아주 뚱뚱한 여자가 사무실에서 나와서는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안내받은 테이블에서 잠시 기다리자 그녀는 어떤 동양인 남자를 데려오더니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 또한 오늘 나와 같이 면접을 보는 사람이었다. ‘첸’이라는 홍콩에서 온 남자아이였는데 나보다 두세 살 어렸고 성격은 조용한 듯했다. 베버리는 우리 둘을 앉혀놓고 면접을 진행했다. 첸은 옆에서 아주 유창한 영어로 베버리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그들의 대화 중 절반 이상은 알아듣지 못했다. 이제 내 차례가 되자 베버리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과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발음 때문인지 나의 듣기 실력 때문인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well' 과 'you know'다. 이 두 표현 뒤에 굳이 어떤 표현을 붙이지 않아도 내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서 'you mean......'을 포함시킨다. 이 세 가지 표현이면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나는 이 세 가지 표현을 번갈아 사용하며 나의 미천한 영어 실력이 들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무사히 면접을 마칠 수 있었다. 면접이 끝날 때쯤 베버리는 나와 첸에게 다음번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할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었고 수첩에 받아 적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친 후 직원 매뉴얼 북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 감격이 몰려왔다. 왠지 금방이라도 일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겨우 아르바이트, 그것도 맥잡이라 불리는 아주 힘든 일이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수입이라는 것이 생길 것 같았다. 수입의 정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매뉴얼 북을 펼쳐보자 또다시 영어라는 장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주 촘촘하게 적혀있는 매뉴얼 북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떤 내용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에 더하여 한 가지 더 고민이 생긴 것은 막상 일하러 가서 마주치게 될 어마어마한 장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며칠 후, 오리엔테이션 날이 돌아와 맥도날드로 향했다. 첸과 나를 비롯해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내 나이 또래의 여자 두 명이 함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한국에서 이미 맥도날드를 경험한 나였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다. 어느 것 하나도 익숙하지 않았고, 어느 것 하나도 자신 있지 않았다. '괜찮을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청각 교육이 시작되었고, 익숙한 화면이 흘러나왔다. 동영상 교육자료인데, 전 세계적으로 같은 포맷을 쓰는 듯했다. 다만 다른 점은, 한국처럼 더빙이 되어있지 않은 원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는지라 어떤 설명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영상이 끝나자 베버리는 또 한 번 두꺼운 책자를 나누어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대충 알아듣기로는 맥도날드에서 사용하는 약품들과 안전에 대한 것이었다. 나에겐 이미 익숙한 것들이기에 이것 또한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베버리가 무언가 질문을 하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런던에 온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의 발음을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의 질문이 끝나자 인도인으로 보이는 여자들부터 무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인디언 발음은 사실 코크니 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사실 영어가 맞는지도 모를 정도로 문화적 충격이 다가왔다. 대충이라도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겠지만,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나는 마냥 두려울 뿐이었다. 여자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첸의 차례가 왔다. 영어가 유창한 첸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야 했다. 첸은 같이 일하게 되어서 기쁘다, 최선을 다하겠다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입사 소감에 대해서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첸이 아주 짧고 간결하면서도 유창하게 이야기를 마치자 베버리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당황한 나는 약 2초간 'um......' 하며 뜸을 들였는데, 그 순간 마크라는 흑인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구해주었다. 누군가 베버리를 호출하여 가봐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베버리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방을 나갔다. 미안하기는커녕 내가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었다.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위기를 잘 극복했다. 물론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입사 계약서를 적는 것으로 오리엔테이션이 마치고 베버리는 첫 스케줄을 알려주었다. 드디어 일을 할 수 있게 된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길로 공중전화에 뛰어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 시각은 새벽이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기쁜 소식을 가족들과 나누고 싶었다. 가족들과 통화가 연결되자 또 한 번 울컥 울음이 쏟아졌다. 다 큰 남자가 공중전화에서 울고 있는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낭만적이지 못했다. 누가 봐도 내 모습은 초라함 그 자체였다.      

다음날 학원에서도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맥도날드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다들 잘 되었다며 응원해 주었다. 한국이었으면 별일 아닌 이야기들도 타지에 나와 외국어로 이야기를 하니 근사한 주제가 되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에 막혔던 말문이 술술 뚫리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주위에서 누군가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알려준다. 억지로 말을 만들고 문법을 맞추고 어휘를 늘리는 대신,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말로 만들어내라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한국말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한다. 우선 내 머릿속에 이야기의 습관이 생겨야 말이 나온다.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언어이기 때문이다.     

첫 출근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어떠한 직장도 첫날부터 내 집처럼 편안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의 첫 직장이니 그 정도가 더 심했고, 내 영어 실력이 들켜서 쫓겨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잠마저 설쳤다. 스케줄에 맞춰 적당히 늦지 않게 매장에 도착했다. 나를 안내해준 사람은 다시 한번 베버리였다. 베버리는 나를 직원용 라커룸으로 데리고 가서는 갈아입을 옷과 모자를 챙겨주었다. 넓은 라커룸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 규모를 통해서 이곳의 직원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 맥도날드의 직원 공간(크루룸이라고 부른다.)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듯했다. 옷을 갈아입고 베버리를 따라 손을 씻은 후 주방으로 갔다. 베버리는 나를 어떤 동양인 남자에게 소개해주었는데, 베버리와 그의 대화를 한마디만 들어도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한국인 특유의 발음을 그는 아주 정확하고도 정교하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국분이시죠?"

"아! 네! 안녕하세요." 

살짝 긴장된 목소리로 내가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저보고 알려주라네요. 내가 뭐 아나?"

서글서글한 웃음에 경상도 사투리를 가진 남자는 아주 친근하게 이야기했다. 준우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이었는데, 나에게는 너무나도 뜻밖의 행운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매장 내부를 설명해 주었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다. 경주가 고향이었던 그는 나와 공통점이 많아서 처음부터 나를 편하게 대해 주었다.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머나먼 타국 땅에서 모국어로 일을 배울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바로 이 사람을 만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준우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또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근무하던 흑인 두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외모만큼이나 말투도 아주 거칠고 성격도 난폭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친해진 후에는 형제처럼 지내게 되었지만. 준우 형 덕분에 첫날의 어색함과 두려움을 절반 이상 떨칠 수 있었다.

준우 형을 따라다니며 영국식 맥도날드 시스템을 익혔다. 한국의 시스템과 상당히 비슷했기에 기기를 다루는 데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제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였다. 주방에서 일을 가르쳐주는 준우 형은 능숙하게 카운터의 주문을 받고 그들과 의사소통을 했다. 큰 소리로 물어보고 큰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 또한 영어 실력으로는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가지려고 했지만, 현실은 아주 냉정했다. 영어를 큰 소리로 말해본 적이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영어로 소리를 칠 상황이 있을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최소 8년은 영어를 공부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큰 소리로 영어를 쓸 일은 거의 없다. 영어 실력을 떠나서 소심함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준우 형은 카운터의 주문에 따라 햄버거를 만든 후 앞으로 전달하며 'Regulars on top!'(레귤러 햄버거 나왔어요.)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그의 말을 들은 카운터에서는 햄버거를 포장해 고객에게 제공했다. 준우 형은 나에게도 한번 해보도록 권유했다. 햄버거를 만드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말문이 막혀있었다. 영어를 언어라고 생각했다면, 이 상황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아직 영어는 나에게 학문이었다. 발음, 문법 모든 게 신경 쓰였고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다.

"Regulars on top."

나름 용기를 내어 이야기했지만 카운터에서는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준우 형은 친절하게도 카운터의 직원을 불러 내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학원이나 학교에서의 영어와는 180도 달랐다. '아, 이런 게 실전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또 한 번 '이런 데서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아니, 그 생각은 순식간에 커져서 곧 ‘안 되겠다. 그냥 한국으로 들어가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이번엔 이러한 고민이 첫 근무를 마칠 때까지 계속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준우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좀 많이 어색할 건데 쫌만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

그는 주눅이 들어 있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의 말대로 약 4시간의 첫 근무에서 스스로 빠르게 적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준우 형이 있었기에 두려움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몇 명의 한국인을 더 만났다. 저녁 출근인 사람들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 8명이나 되었고, 그중에 4명은 나와 동갑내기 친구들이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한 이야기였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타지 생활은 사람이 전부다.' 맥도날드에서 이들을 만난 후 이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너무도 든든하고 큰 힘이 되는 친구들이 있어 무엇이든 해 볼 용기가 생겼다. 그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먼 타국에서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사람이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힘든 타지 생활을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본래의 목적인 영어 실력을 얻을 수 없게 될지 모르므로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얻어진 인연은 해외 생활에서도 그리고 귀국 후 한국에서도 아주 소중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가족과도 같기에 소중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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