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을 읽고
중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등장한 ≪운수 좋은 날≫ 을 통해서 처음 현진건을 만났다.
그러나 10대였던 내겐 운수가 좋다는 것인지, 운수가 좋지 않다는 뜻일까 라는 물음만을 던지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 그저 시험을 보기 위해 읽고 참고서를 보고 외우던 글일 뿐이었다.
40여 년 세월이 지나 중학교 입학을 한 막둥이 아들이 가져온 국어 교과서에서 다시 만난
≪운수 좋은 날≫ , 아직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니 반가웠다.
50대 중년에 읽은 ≪운수 좋은 날≫에는 나라를 잃었던 그 시대를 살아나가야 했던 사람들의 처절한 상황과 가난했던 일상의 아픔이 담겨 있었다.
'운수 좋은 날'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외할머니의 화투다.
내가 10살 되던 해까지 몸이 약하셨던 엄마 때문에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외가에 가서 지내곤 했다. 대청마루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은 외할머니는 펼친 자그마한 군청색 미군 군용 담요 위에 화려한 색깔의 화투를 가로 세로줄 맞춘 뒤 뒤집기를 반복하시다 마지막에 한 장 남은 화투를 보셨다.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물음을 던졌다.
“할머니 그게 뭐야”
“응. 오간 떼는 거야”
“오간 이 뭔데”
“운수가 어떤지 화투로 알아보는 거야”
“운수가 좋다는 건 어떤 날인데”
“좋은 일이 생기는 날이지”
“할머니 오간 떼는 거 배울래, 나도 운수 좋을래”
“할머니는 오늘 운수가 좋아 ”
“그럼 우리 어여쁜 강아지들이 왔으니 운수 좋은 날이지” 하시며 얼굴에 큰 미소를 지으셨다.
할머니에게 우리가 오는 주말이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어린 나에게도, 늘 버선발로 맞아주시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정성스러운 12첩 밥상과 먹고 싶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만들어 주신 팥 가득한 찐빵과 식혜. 밤이면 나와 동생은 대청마루에 도란도란 앉아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구비 전승된 옛날이야기를 듣다 잠들 수 있던 주말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시집간 딸이 출가외인이라 일 년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주말이면 손주들까지 만날 수 있었던 외할머니는 들뜬 마음에 힘든 줄도 모르고 기뻐하셨으리라
이후 외가에 가면 할머니와 함께 오간을 떼곤 했었다. 화투로 오늘의 일진을 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방법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해 동안 치매를 앓던 외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첫 순간처럼, 급작스레 돌아가신 후 마치 기억이 삭제된 것과 같이. 어쩌면 그 당시 할머니에겐 화투가 소소한 내일의 기대하는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어제 보다 나은 내일이 오는 날, 좋은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일상의 소소한 시간들이 우리가 놓치는 운수 좋은 날이 아닐까.
창밖을 바라보니 집 건너편 대로에 1등 로또가 당첨됐다는 복권 방에 우산을 쓴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다가올 운수 좋은 날을 기대하고 있으리라. 평범한 일상 속에 살아가기에 우리 모두는 조금은 특별한 내일이 오기를, 운수 좋은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할머니의 화투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기대하는 희망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신문이나 검색 사이트에서 오늘의 운세를 재미 삼아 보았던 것처럼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속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원하고 희망했던 운수 좋은 날을 우리는 매일 누리고 있다. 가족들과 나누는 식사,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약을 사 먹는 지극히 소소한 일상들 큰 행운이 오는 것이 아니라도 로또가 당첨되어 인생 역전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하루는 모두 벅차게 운수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