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글쓰기2
두번째 제시어 '바다'
2년 전,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보자’는 결심을 했다. 20대 때의 나는 누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낄 때 못 끼고 빠질 때 못 빠지는 철부지 장애여성이었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뭐든지 덤벼들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의 나는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이 가장 편하고, 출퇴근조차 벅찬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덫에 걸린 채, 매일 똑같은 길을 오가고 어제와 같은 일을 반복하며, 이미 여러 번 본 영상을 또 보는 듯한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를 마치고 영상 콘텐츠를 찾던 중, 우연히 휠체어를 탄 한 장애여성이 혼자 여행하며 기록한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일렁였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보지 못한 것들에 도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 깊숙이 훅! 하고 꽂혔다. 마치 하늘에서 계시라도 받은 듯, 여행에 대한 갈망이 온몸으로 번졌다. 그렇게 생긴 열망은 ‘제주도 한달살이’에 대한 꿈으로 이어졌다.
마음을 먹고 재작년에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준비를 시작하자, 나는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직장을 한 달 쉬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여행은 ‘한 달 살이’에서 ‘이주 살이’로 계획을 바꿨다.
2023년 9월, 나는 제주로 향했다. 지인의 숙소에 머물며 매일이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지인이 물었다. “혹시 바다 수영해볼 생각 있어?”
9월 중순의 바닷물은 아직 따뜻하고, 수영 슈트를 입으면 괜찮다며 권유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수영을 좋아하는 나와, 장애인으로서 낄 때 끼고 빠질 땐 빠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단속하는 엄격한 나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여름, 단체 여행으로 제주에 왔을 때였다. 모두가 바다에 들어가 놀고 있었고,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나도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몇 명의 도움을 받아 물놀이를 하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나오는 순간부터였다. 모래와 바닷물로 엉망이 된 몸을 씻어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자원활동가들이 나를 씻기는 데 꽤 애를 먹었고, 나중에 우연히 들은 원망 섞인 말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 기억이 나서 쉽게 “하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망설이자, 주변 사람들이 슈트 입는 것도 도와줄 테니 일단 바다 앞까지라도 가보자고 설득했다. 나도 ‘가기만 하자’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겉으로는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바다 수영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나는 마음속에서 이미 첨벙첨벙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 마음을 읽어주었고, 결국 나는 슈트를 입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자, 마치 물을 그리워하던 물고기처럼 금세 적응했다. 추워서 입술이 퍼래질 때까지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살이는 재미있는 책을 하루하루 넘겨보듯 흘러갔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나누며 지낸 시간은 마치 시간이 반으로 줄어든 듯 빠르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