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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다시 배우는 시간

일상에서 글쓰기7

by 해린

키워드 : 가족

우리 엄마는 나를 마흔한 살에 낳았다. 요즘 시대에는 그리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내가 태어났던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늦둥이였다. 그 덕에 나는 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엄마를 둔 아이였고, 자연스레 ‘할머니랑 다니는 아이’로 불렸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엄마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스카우트 활동에 대한 안내를 들었다. 1년에 두 번 2박 3일 캠프를 간다는 말에 나는 꼭 가입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등록비와 캠프비가 만만치 않았고, 엄마는 반대하셨다. 누구보다 고집이 셌던 나는 매일매일 떼쓰고 울며 심지어 단식투쟁까지 벌였다. 결국 엄마는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가입을 허락해 주셨다. 첫 캠프 첫날 밤, 친구들은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었지만, 나는 그들 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혼자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었다. 오히려 매일 운동하라고 잔소리하던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솔직히 그 시절 나는 엄마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애틋함보다는 불만이 더 컸다. 내가 원하는 만큼 놀아주지 않던 언니들, 무섭기만 한 아빠, 아들만 찾던 할머니까지 모두 지겹고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과 떨어질 수 있는 캠프는 내게 구세주처럼 느껴졌고, 엄마를 그리워하며 우는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특수학교의 특성상 등하교를 부모가 도와야 했기에 친구들의 엄마들을 매일 보게 됐다. 친구들 엄마는 화장도 하고 운전도 하며 세련된 모습으로 학교에 오곤 했지만, 우리 엄마는 꽃무늬 티셔츠에 몸빼 바지, 어쩌다 루즈를 대충 바른 게 전부였다. 운전도 못하셨다. 그런 엄마가 부끄럽고 왠지 싫었다. 또 엄마는 도시락도 늘 집에서 손수 싸주셨다.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깔끔하게 정돈된 인스턴트 반찬 도시락을 꺼내는데, 내 도시락은 투박하고 볼품없어 보였다. 한번은 친구가 인스턴트 돈가스를 싸온 걸 보고 부러워, 내 도시락과 바꿔 먹자고 했다. 친구는 기꺼이 바꿔주었고, 나는 친구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고 염치없는 짓이었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는 말이 딱 내 얘기였다.

어느덧 나도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가 되었고, 엄마와 떨어져 혼자 살아온 시간도 꽤 길어졌다. 그러면서 비로소 그때 내 감정과 생각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엄마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달라졌다. 엄마는 혹독한 시집살이와 불친절한 남편 사이에서 일곱 명의 딸을 낳고, 그 막내는 장애인이었다. 만약 내가 엄마였다면 진작에 손 털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묵묵히 버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돌보셨다.

이제 엄마는 여든이 넘은 진짜 ‘할머니’가 되셨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 번, 반찬을 한가득 싸 들고 우리 집에 오셨지만, 정작 좋은 말 한마디 못 들으시고 돌아가시곤 했다. "집에서 밥도 잘 못 해 먹는데 뭐하러 이렇게 많이 갖고 오셔!"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사실은 속이 상해서였다. 엄마가 아프다고 하시면 괜히 나 때문인 것만 같아서. 어릴 적, 내 장애를 고치기 위해 엄마는 매일 어깨로 나를 지탱하며 걸음 연습을 시키셨고, 용하다는 곳이라면 나를 업고 어디든 다니셨다. 그래서 엄마가 허리나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 자꾸만 죄책감이 밀려든다. 다 나 때문이지…

이제는 엄마가 우리 집에 올 수도 없다. 노화와 통증으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바쁜 직장생활 탓에 쉽게 찾아뵙지 못하고, 엄마 집은 단독주택이라 업혀 올라가야 하기에 그 상황도 싫어 잘 가지 않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엄마를 보지 못하다가, 얼마 전 언니들의 도움을 받아 엄마 집 근처 음식점에서 만나게 됐다. 엄마는 벌써 나와 계셨고, 그 모습을 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힘 하나 없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나를 보며 웃는 모습에 가슴 한쪽이 푹 꺼져내리는 듯했다.

나는 스스로를 독립심 강한 사람이라 여겼지만, 그날 엄마를 마주하고서야 내가 얼마나 엄마에게 의지했는지를 깨달았다. 늘 원하는 만큼 욕구를 채워주지 않았다며 투덜댔지만, 사실은 내가 뭔가를 원하면 결국 들어주시던 분이 엄마였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주셨던 분. 그런 엄마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너무 무섭고 두렵다.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잘해드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조차도 두렵다. 끝이 정해진 것 같아, 그 끝을 향해 가는 것 같아 어떤 특별한 행동조차 하기 어렵다. 엄마를 자주 뵙는 것도 두렵다. 뵐 때마다 사라지는 느낌이 점점 또렷해져서, 그 감각을 감당하기 힘들다. 아마도 나는 이제, 엄마에게서 ‘진짜로 독립하는 법’을 배워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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