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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영화 속 장애인, 다시 보고 다른 질문하기②

2. 유 아 낫 유

by 해린

몇 년 전, 인생의 균열이 크게 벌어지던 시기가 있었다.
마음도 몸도, 관계도 버거웠던 때였다.
그래서 이 영화'유 아 낫 유'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 너무 닮았다는 이유로, 그 닮음이 나를 더 아프게 할 것만 같아서. 하지만 결국 용기를 냈고, 다 보고 난 뒤에는 ‘봐서 다행이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영화 속 장면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하나하나 내 삶의 조각과 겹쳐 보였다.
특히 활동지원과 관련된 부분은 마치 오랜 기억들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

영화 속 게이트는 유명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어느 날 루게릭병 진단을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수록 장애로 진행되는 속도는 빨랐다. 빠른 속도만큼 일상에서 보조를 받는 영역도 넓어졌다. 거의 모든 일상에 보조가 필요하개 된 게이트는 전문성을 갖춘 보조인을 거절하고 서툴고 조심성도 부족한 벡을 선택한다.
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게이트는 일을 맡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을 지켜줄 사람을 고른 것이라고, 장애여성에게 활동지원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다. 지원사의 말투, 표정, 작은 한숨 하나까지 나의 하루를 흔들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관계다. 가끔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상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 양가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장애여성 당사자가 아니면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이 영화는 그 복잡한 관계의 결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위로가 된다.


“보이고 싶지 않은 순간”을 같이 지나야 하는 관계

중증 장애를 가진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다.
피하고 싶은 순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몸, 내 가장 취약한 시간을 누군가에게 허락해야만 하는 현실.

이 장면들이 쌓이면 활동지원사는 어느새 친구보다 가까워지고, 연인보다 편해지기도 한다.
이건 의존이나 감정의 문제라기보다는, 함께 지나온 시간의 깊이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지원사에게만 유독 상처받는 이유도, 그 상처가 쉽게 낫지 않는 이유도, 사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장애여성의 몸, 그리고 사라져가는 욕망

영화 초반부, 게이트가 남편과 성관계를 시도하는 장면은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병이 깊어지면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여인’이 아니라 ‘돌보아야 하는 환자’로만 대하기 시작한다.

장애여성에게 종종 부여되는 ‘비성적 존재’의 사회적 굴레. 욕망 없이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시선. 영화는 이 불편한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게이트가 벡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우정의 감정을 넘어서 자기 존재가 다시 ‘여성’, ‘사람’, ‘주체’로
회복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영화는 결국 ‘죽음을 선택할 권리’로 이어진다.

게이트의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삶과 죽음은 어느 한쪽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깨닫게 된다. 장애인의 삶과 죽음이 종종 사회에서 ‘부담’이나 ‘책임’으로 말해지는 시대에

영화는 벡과의 관계 속에서 게이트가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죽음이 아니라, ‘나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 중심에 있다는 걸.


결국,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당사자와 지원사, 그리고 주변인....... 돌봄과 존엄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모든 관계들.

내가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본 이유도 어쩌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던(또는 흔들리게 했던) 모든 관계들을 다시 바라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활동지원 관계 때문에 흔들릴 때가 많다. 상처가 쉽게 아물지도 않고, 때로는 이유 없이 미워지고,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관계는 실패해도 된다고. 때로는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감정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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