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독서:그림으로 화해하기 2

"화가들이 건네는 말"

by 에스더esther
[책 표지]
p.87. 마크 로스코,<로스코 예배당>, 1971

위의 그림은 마크 로스크의 예배당이다. 오직 로스코의 작품으로만 이루어진 곳이다. 검은

색감이 주는 신중함으로 절로 숙연해 진다.


마크 로스코는 누구인가. 갤러리에 자주 다니던

어느 날, 충격처럼 다가온 전시. 색채만으로도

강렬한 감동을 주는 경험이 짜릿한 순간이 되어

만난 작가. 로스코는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미국

이민자이다. 유대계 이민자로서 겪은 극심했던

차별과 고통이 그를 오히려 예술을 만나게 했고, 지금은 현대인의 감성을 울리는 현대미술계의 거장으로 거듭나게 했다.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람자가 자신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에 접근하고, 이 과정을 통해

순수한 인간성을 회복하길 바랐다. "(p.83)

p.89. 마크 로스코,<무제>, 1970

위의 작품은 로스코가 유서 한장 없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남긴 'RED'이다.

실제로 붉은 색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는 핏빛

암울함일 수도 있지만, 저자가 이 작품을 만났을 때는 오히려 심장의 펌프질을 통해서 살아 남는 선명한 생명력을 느꼈다고 한다. 활 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강인한 삶의 의지인 것이다. 화가는 비록

갔어도 그의 예술혼은 영원히 살아 붉게 숨 쉬고 있다는 의미이리라.



p.102. 카라바조,<성 마태와 천사>,1602

카라바조의 [성 마태와 천사]를 그린 두 개의 작품 이다. 한 작품은 마태를 더러운 맨발에 남루한 옷을

입은 어색한 모습으로 그렸고, 또 다른 작품에서는

성인답게 고상한 자태로 그렸다. 앞의 작품은 당시

성당 관계자들에게 퇴짜를 맞은 작품이고, 그들의

입맞에 맞게 다시 그린 작품이 뒤에 그린 것이다.

카라바조의 예술적 신념이 무시되는 이러한 상황

때문에 그는 차츰 난폭해 졌고 그러한 광기들이

작품 속에 투영 되었다.결국, 그는 이름도 없는

초라한 노숙자처럼 삶을 마친 불행한 천재화가로

기록되고 말았다.

p.108.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1610

카라바조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진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이다. 작은 돌팔매로 거인

적장을 물리친 다윗의 승리를 그린 것일테지만,

왠지 다윗은 깊은 연민에 가득차 보인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골리앗의 표정에는 슬픔과 회한이 가득차

있다. 놀랍게도 카라바조는 머리 잘린 골리앗의

얼굴을 당시 자신의 자화상으로 그려 넣었고, 다윗의 얼굴은 소년 시절의 자신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과연 카라바조는 시대를 초월한 예술가 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를 인정 받지 못한 채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을지도.


하지만 그는 처절한 내면의 싸움을 살다간 영웅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 많은 우리 안의 괴물들과 싸워 우리 스스로 이겨 내기를 바라는.

좀 더 나아진 삶으로 살아 나가도록 바라는 스승과도 같은 화가인 것이다.



렘브란트 <자화상>,1642, 1652, 1662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네덜란드 최고 번영기인 17세기를 살았으며, 그가 활동했던 시기를 일컬어 '렘브란트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대단한 화가이다.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서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첫 번째 자화상에서 풍기는 만족감은 바로 그런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그는 중년기를 무척

힘들게 살아야 했다. 젊은 날의 명성과 부도 사라져

버리고, 두 번째 자화상에서는 금빛 체인도, 화려한

옷도 입지 않았다. 렘브란트는 말년에 위 세 번째의 <제욱시스로서의 자화상>을 남긴다.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화가였던 제욱시스가 한 노파를 모델로

여신 아프로디테를 그리다가 웃음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그만 숨이 막혀 죽은 화가다. 렘브란트는

화가 제욱시스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이다. 명성이

높았던 과거의 자신과 늙고 가난한 노파의 모습이

겹쳐 졌을때의 회한이 느껴진다. 인간적인 사색이

가득한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p.150. 렘브란트, <돌아온 탕아>,1661-1669

희노애락을 모두 견디어 내고 렘브란트가 사망하던 마지막 해에 완성한 위대한 작품 <돌아온 탕아>는 또 어떠한가. 지극히 허랑 방탕했던 아들을 기꺼이 받아주고 다독이는 모습. 아버지에게 얼굴을 파 묻고 위로 받는 풍경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 겹쳐지는 것은 똑같은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이 쉽게 읽혀 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새 해는

시작 되었고, 무엇인가 새로운 각오를 해야할 듯

마음을 다잡는 의식이 겹쳐서 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후반부를 포스팅하는 일은 다음 번 회차로 넘겨야 하는 이유이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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