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200번째 글 올리기 :추억 시 한편으로 자축

"그대, 행여 서울에 오시려거든"

by 에스더esther

2020년 8월에 브런치 작가로 첫 걸음을 내딛었던 감격이 아직도 짜릿하고 생생하다. 그런데, 어느새 200번째 글이라니 스스로도 기특하고 대견하다.


자축하는 의미로 몇년 전 지리산에서 만난 시인의

시를 패러디했던 추억을 즐겁게 소환해 보려 한다.

물론, 원본 시의 저자에게 허락을 득한 패러디이다.

지리산, 사성암 운무(pho to by esther)

원본 시는 지리산에 사는 이원규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다.

지리산, 사성암에서(esther)

그대, 행여 서울에 오시려거든


에스더 지음


to. 낙장불입 시인과 고알피엠 여사께


그대, 행여 서울에 오시려거든

그냥 빈 걸음 오지 마시고

지리산 옛길 청아한 물소리

초록잎새 한 귀퉁이 적셔 오시라


서산대사 걷던 길

오르막 한 숨, 내리막 두 숨

골짜기마다 고운 바람도

허리춤 은밀한 곳 채워 오시라


나풀나풀 끼 부리는 금낭화

속살가득 연애본능 살짝 훔쳐서

메마른 도시 까칠한 심장마다

큐피트 화살처럼 쏘아 주시라


그대, 행여 서울에 오시려거든

그냥 빈 걸음 찾지 마시고

주막집 심천수 넉넉한 인심

조롱박 한 바가지 담아 오시라


마약보다 더 황홀한

지리산 흙 냄새

황토 빛 따스한 위로 한 자락

숲길 어깨 춤 추듯 함께 오시라


탱자나무 울타리 얽힌 매화 꽃

어울렁 더울렁 사랑으로 하나 된

그네들 설레이는 소문까지도

재미지게 한바탕 이고 오시라


그러나, 그대 굳이 서울 오시려거든

섬진강 십오리 외로운 꽃 길 위에

애절한 이별가 한 꼭지 부르다 남을

허스키한 첫 순정일랑 두고 오시라


혹시라도 그대, 견딜만하거든

지리산 흙 길의 빈 집 평상에 누워

달콤한 낮잠으로도 만족할 요량이거든

굳이 서울일랑 오지 마시라


다래랑 머루랑 새들 벗 삼아

신나는 버들치 밴드 작당들

하염없이 놀아도 지치지 않을

지리산 행복학교 지켜 주시라


from. esther



p.s. 2015년 4월의 어느 날, 운이 좋게도

지리산에 사는 이원규 시인과 동행하면서

지리산 자락을 꾹 꾹 밟고 다녔었다. 지금, 행운처럼 다가왔던 그때가 너무도 그립다.

(원본 시 저자의 허락을 득한 패러디 시를

남긴 것도 지금 와서 보니 엄청난 특혜다.)

지리산, 시인의 정원 풍경(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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