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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독서 : 니체읽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0

by 에스더esther

제2부 : 제1장. 여러 의견과 잠언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어 나가며

한 사람의 철학이 끼치는 엄청난 나비효과에 대한

실감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연보까지 포함해

거의 642페이지에 달한다. 제1부(1장~9장)와

제2부(1장~2장)로 구성되어 있고, 머리말과

서문 또한 중요한 맥락을 차지한다.


책의 제1부를 포스팅 할 때는 비교적 여러 차례로 나누어 접근함으로써, 세부적 몰입에 빠져 들었다. 반면에, 지금 읽고 있는 제2부는 보다 더 압축적인 읽기와 집중적 몰입을 통한 큰 그림 그리기로 시도

해 보려고 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 선다.


[머리글]

첫 문장이 참 좋다. 요즘 나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말이기도 해서 특히, 가슴에 폭 담기는 구절이다.


"침묵이 허용되지 않을 때에만 말해야 한다. 더구나

자신이 '극복'한 것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

(p.303중에서)


다시 말하면, 침묵해도 좋은 자리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다. 중언부언 너스레

섞인 얘기를 안해도 된다는 그 말이 무척 고맙다.


지금 읽고 있는 제 2부의 글들은 제1부가 쓰여진

후에 추가로 작업한 부분이다. 니체의 아포리즘적

글쓰기가 최고의 전성기를 향해 다가가는 중이다.


<갖가지 의견과 잠언>은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앞에서
말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자유 정신'을 위한 속편 및 부록으로 '따로' 간행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들은 하나의 정신
치료, 즉 낭만주의의 가장 위험한 형식으로
말미암은 일시적인 병에 저항하는 나의 건강한 본능이 스스로 연구하고 처방한
'반낭만주의적인' 자기치료의 연장이며
강화였다.

그러나 6년의 회복기를 거쳐 이제야 이러한
저작을 여기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제 2부로 합치게 된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그것들은 아마도 나란히 고찰할 때 더 강력하
고도 뚜렷한 가르침을 줄 것이다.
(p.306중에서)

특이한 점은 이 글 중에서 니체는 뜬금없는 어투로 바그너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적

동지이자 아버지와 같았던 바그너였는데 말이다.


"확실히 그 무렵이 '결별'하기에는 가장 좋은 때 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밝혀졌다. 겉으로 보기

가장 승리자로 보였던 리하르트 바그너도 사실은

부패한 절망적인 낭만주의자로서, 갑자기 의지할

데 없이 풀이 꺽여서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p.307)


아마도 바그너와의 결별은 니체의 인생에서 또 다른 분기점이 찾아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의 마무리에 적은 것처럼 '용기와 긍지, 또한

거대한 적을 바라는 욕구'를 발견하는 단계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1886년 머리말 중)


[제1장 : 여러 의견과 잠언]


이 장의 첫 부분은 철학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로 시작한다.


"지금까지 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를 믿어 온 그대들이 이제는 환멸을 느낀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면, 도대체 그것을 가장 비싼 값으로

팔아 버려야만 한단 말인가?"(p.313)


또한, 니체의 자유사상이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제시

되기도 한다. 적극적으로는 니체적인 뜻의 '자유

정신'을 포함하는 동시에 소극적으로는 종교적인

관용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사상이다.

자유사상의 진보 : 과거의 자유사상과 오늘날
자유사상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하려면, 다음
명제를 떠 올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것을 승인
하고 공언하기 위해 이전 세기에는 대담무쌍
함이 필요했지만, 오늘날의 견해에서 보면,
이것은 이미 대수롭지 않은 소박한 말로 전락
하고 만다. 내가 말하는 명제는 볼테르의 다음
같은 말이다. "친구여, 믿어다오, 오류에도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는 것을"(p.313~314)

니체는 그동안 심취해 왔던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에서 벗어나 철학가, 볼테르에게로 편향되고 있는

중인 듯 싶다. 허무주의의 극복을 향한 걸음이다.


재미있는 비유도 눈에 들어온다. '독은 맛이 없다'

라는 잠언을 읽고는 모처럼 유쾌한 소리를 내며

맘껏 웃었다. 위트 넘치는 니체의 발견이다.


"독은 맛이 없다 :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이 독을

마시지 않으려 했던 오직 하나의 결정적 논거는,

독이 사람을 죽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p.329)


니체의 해학이 느껴지는 또 다른 대목이 있다. 저승

여행을 자기가 직접 해 본 적이 있다는 고백이다.


니체는 이 글을 읽는 이들이 본인의 말을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그는 저승에 다녀온게 맞는 것일까?니체가 지금 바로

눈 앞에 있다면 진실을 묻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저승여행 : 나 또한 오디세우스처럼 저승에 다녀왔고, 앞으로 더욱 자주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몇 몇 죽은 자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숫양
을 제물로 바쳤을 뿐만 아니라, 나의 피조차도
아끼지 않았다. 산 제물을 바치는 나를 받아준
것은 네 쌍의 사람들, 즉 에피큐로스와 몽테뉴,
괴테와 스피노자, 플라톤과 루소, 파스칼과 쇼펜하우어였다. 이제까지 오랫동안 홀로 여행하면서 언제나 이 사람들과 토론해야 했다. 나는 그들이 서로 상대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을 귀로 듣고 싶었고, 그들로 부터 내 생각의 옳고 그름도 가르침 받고 싶었다. (p.450중에서)

제1장에서 언급하지 못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니체를 읽으면서 누적된 은근한 피로감이 머리로 읽은 잠언을 손으로 옮기는 것에 대하여 다분히 저항을 한다.


그 덕분에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기로 한다. 이제, 약간의 휴식을 즐기고 나면 다음 , 제2장의 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니체를 닮은 방랑자'가 되어 것을 기대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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